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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순간은 온다.

金 敬 峯 2007. 7. 29. 23:21
 

 

 

 위대한 순간은 온다

 

유학 중 내가 살던 기숙사의 경비 아저씨 토니는 한 예순쯤 됐는데 전직이 콜택시 기사였다. 

 

파바로티와 동향이라는 그는 노래 부르기를 좋아해서 아침이면 그가 밖에서 일하며 부르는

 

<, 솔레미오>소리에 깨곤 했다.

 

그가 언젠가 자신이 기사시절 크리스마스이브 새벽에 겪은 한 일화를 얘기해준 적이 있었다.

 

 

 

그날 밤 당번이었던 그는 시내 어떤 주소로 가라는 연락을 받았다. 

 

가서 한참을 기다렸으나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보통 때 같으면 경적을 한두 번 누르고

 

가 버렸겠지만 그날 밤 그는 일부러 차에서 내려 벨을 눌렀다.

 

 

 

잠깐 만요.”    아주 작고 힘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한참 있다가 문이 열렸고 거기에는 마치 40년대 영화에서 막 걸어 나온듯한 복장에 모자  까지

 

정히 쓴 아주 나이 많은 할머니가 서 있었다.

 

그 뒤로 보이는 방에는 가구가 모두 흰색 천으로 덮  있었다.  

 

집을 나서면서 할머니는 문간에 놓인 사진틀과 앨범이 가득 담겨있는 상자 앞에서 잠깐 망설였다.

 

할머니 그것도 가져가실 거예요?”    할머니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그냥 두고 갈 테야.”

 

 

 

차에 타자 할머니는 주소를 주면서 시내를 가로질러 가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 돌아서 가는 건데요, 할머니

 

괜찮아요. 난 시간이 아주 많아. 호스피스 병원으로 가고 있는 중이거든 

 

식구가 없고.  의사선생님 말씀이 이젠 갈 때가 얼마 안 남았다우.”

 

어둠 속에서 할머니 눈이 이슬에 반짝였다.

 

 

 

토니는 요금 미터기를 껐다.

 

그로부터 두 시간 동안 토니와 할머니는 함께 조용한 크리스마스 새벽 거리를 드라이브했다.  

 

녀가 젊은 시절 엘리베이터 걸로 일하던 빌딩,  처음으로 댄스파티를 갔던 무도회장, 

 

신혼 때 던 동네 등을 천천히 지났다

 

 

 

때로는 어떤 건물 앞에 차를 세우고 그냥 오랫동안 어둠 속을 쳐다보기도 했다. 

 

어슴푸레 날이 밝아오자 할머니는 이제 피곤해, 그냥 갑시다라고 말했다.

 

침묵 속에서 토니는 할머니가 준 주소로 차를 몰았다.

 

 

 

간호사들이 할머니를 맞아 휠체어에 앉혔고,   토니는 자기도 모르게 할머니를 안아

 

작별인사를 . 

 

자네는 늙은이에게 마지막 행복을 주었어. 아주 행복 했다우.”  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니를 두고 토니는 건물을 나왔고, 뒤로 문이 찰�하고 닫혔다. 

 

그건 마치 삶과 죽음 사이의 문이 닫히는 것 같았어. 

 

난 그날 밤 한참 동안을 할머니를 생각하며 돌아 다녔지. 

 

그 때 내가 그냥 경적만 몇 번 울리고 떠났다면?  그래서 크리스마스 날 당번이 걸려 심술 난

 

다른 기사가 할머니에게 불친절하게 대했더라면… ,  

 

돌이켜 보건대 난 내 일생에 그렇게 위대한 일을 해 본적이 없어. 

 

내가 대통령이었다 해도 아마 그렇게 중요한 일은 하지 못 했을지 몰라.”

 

 

 

우리는 보통 우리의 삶이 아주 위대한 순간들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위대한 순, 내가 나의 모든 재능을 발휘해 위대한 일을 성취할 날을 기다린다.

 

내게는 왜 그런 기회가 오지 않느냐고 안타까워하고 슬퍼한다.

 

그렇지만 그 위대한 순간은  우리가 모르는 새 왔다 가는지도 모른다.  

 

남들이, 아니면 우리 스스로가 하찮게 생각하는 순간들 속에 숨어있는지도 모른다.

 

무심히 건넨 한마디 말,  별 생각 없이 내민 손, 스치듯 지은 작은 미소 속에

 

보석처럼 숨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순간은 대통령에게도, 목사님에게도,  자동차 정비공에게도,

 

우리 모두에게  골고루 온다.

 

장 영희(서강대 교수)

 

< 네이버블로그 나무가 나무에게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