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마을

쓸슬하고 장엄한 노래여 / 기형도

金 敬 峯 2008. 2. 24.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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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라,
      어느덧 황혼이다
      살아 있음도 살아 있지 않음도
      이제는 용서할 때.
      구름이여,
      지우다 만 어느 창백한 생애여
      서럽지 않구나 어차피 우린

      잠시 늦게 타다 푸시시 꺼질
      몇 점 노을이었다

      이제는 남은 햇빛 두어 폭마저
      밤의 굵은 타래에 참혹히 감겨들고
      어둠 뒤편에선 스산한 바람이 불어온다

      우리는 그리고 차가운 풀섶 위에
      맑은 눈물 몇 잎을 뿌리면서
      우리는 落下하리라

      그래도 바람은 불고 어둠 속에서
      밤이슬 몇 알을 낚고 있는 흰 꽃들의 흔들림

      가라, 구름이여,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해
      이제는 어둠 속에서 빈 몸으로
      일어서야 할 때.

      그 후에 별이 지고 세상에 새벽이 뜨면
      아아, 쓸쓸하고 장엄한 노래여,

      우리는
      서로 등을 떠밀며 피어오르는
      맑은 안개더미 속에 있다.

        출처 : 블로그> 꿈.깡.끼.꾀.끈.꼴 / 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