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훈이 있는 이야기
이야기 목록
1. 15분의 소망
2. 배고픈 설움
3. 중국의 어느 버스안에서 일어난 실화
4. 사고의 전환
5. 다른 사람을 위하여
6. 정승을 구한 아이의 지혜
7. 고난의 벽을 넘어선 화가 마티스
8. 너는 너를 얼마짜리로 생각하느냐?
9. 한 순간도 헛되이 살 수 없는 까닭
10. 정원사 미켈란젤로
11. 고개를 숙이면 : 맹사성의 일화
12. 청년과 지혜로운 임금님
13. <이놈>과 <선생>의 차이
14. 뜻을 이루는 지름길
15. 아름다운 인연
16. 스테이지 15에서 생긴 일
6. 정승을 구한 아이의 지혜
조선의 정치가, 좌의정 김종수가
죄를 입어 남쪽 지방으로 귀양을 갔다.
그는 그곳 고을 이방의 집에서
한 여름을 나게 되었는데, 하루는 김종수가
책을 읽다가 깊은 낮잠에 골아 떨어져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자고 있었는데
어디서 난데없이 나타난 독사 한 마리가
자고 있는 김종수의 배 위에 기어 올라간 것이다.
이것을 본 사람들은 기겁을 했다.
본인을 깨우면 필경 몸을 움직이게 되어
독사에게 물릴 것이 뻔했다. 그렇다고
독사만 잡아들일 방법도 없었다.
모두들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고만 있었다
이 때 이방의 어린 아들이 이 모습을
잠시 지켜보더니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는 개구리를 한 마리 잡아왔다.
아이는 살금살금 독사 곁으로 다가가
개구리를 독사 앞에 던졌다.
개구리는 폴짝폴짝 뛰어 달아났다.
이것을 본 독사는 개구리를 잡아먹으려고
재빨리 김종수의 배 위에서 내려왔다.
김종수는 영특한 아이의 지혜 덕분에
위험을 벗어날 수 있었다.
- 글 : 수필가 이창범
7. 고난의 벽을 넘어선 화가
고난의 벽을 넘어선 화가
프랑스의 화가 앙리 마티스는 ‘색채의 해방’을 슬로건으로 20세기 초에 일어난 미술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야수파의 거장이다. 일흔아홉 살의 마티스는 관절염과 씨름하느라 하루의 대부분을 침대에 누워서 지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그림 그리는 일을 거르지 않았다. 카파는 셔터를 누르는 동안 말할 수 없는 감흥에 빠졌다. 벽의 한 면을 채우는 커다란 캔버스를 앞에 놓고 뚱뚱한 몸매에 흰 수염을 기른 마티스가 힘겹게 작업을 하고 있었다. 관절염 때문에 팔과 손가락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던 그는 기다란 대나무에 연필을 묶어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마티스는 절망하지도 포기하지도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그림을 그리고 있지 않은가. 고난의 벽을 넘어선 마티스야말로 위대한 화가였다. 카파는 왜 마티스가 ‘대가’의 반열에 올랐는지 알 것 같았다. 대나무에 묶인 연필로도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는 절망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생각해 냈다. 바로 색종이 오려붙이기였다. 그의 색종이 그림은 84세로 숨을 거둘 때까지 계속됐다.
- ‘행복한 동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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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너는 너를 얼마짜리로 생각하느냐?
동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던 제자가 있었다.
실의에 빠진 그는 어느날 스승을 찾아갔다
"스승님! 저는 견딜수가 없습니다.
동료들이 저를 따돌리는데, 아무래도 저는 너무나 보잘것없는 존재인 모양입니다.
죽고 싶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스승은 벽장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다름아닌 주먹만한 돌이었다.
스승은 제자에게 돌을 건네주며 말했다.
"지금 당장 시장에 가서 여러 사람들에게 이 돌의 가치를 물어보고 오너라
시장에 나가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오너라."
스승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제자는 시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제일먼저 채소장수에게 물었다.
채소장수가 화난 투로 말했다.
"아니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요? 돌덩이가 무슨 가치가 있다고!"
그 다음은 정육점에 갔다. 정육점 주인은 찬찬히 돌을 살펴보며 말했다.
"보통 돌은 아닌 것 같고... 돼지고기 두어근 값은 쳐 주겠소!"
이번에는 방앗간에 갔더니
"내가, 돌을 볼 줄 아는데... 이 돌은 보통 돌이 아니군! 쌀 한말 값은 나가겠어!"
마지막으로 그는 돌아오는 길에 보석가게에 갔다.
보석상 주인은 무심결에 한번 흘낏 쳐다보다가 깜짝 놀라 돌을 정밀감정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이마에 땀을 흘리며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받고 싶은 액수가 얼마요. 얼마를 부르든 내가 다 주고 사리다.
이 돌은 사실은 가격을 메길 수 없을 만큼 엄청나고 희귀한 보석이요.
부르는 게 값이요. 1억? 10억? 100억?..."
스승이 제자에게 말했다.
"보아라! 네 동료들이 너를 돼지고기 두어근이나,
쌀 한말, 아니면 하찮은 돌덩이 취급을 했느냐?
돌의 가치를 모르는 이가 말하는 너의 가치에 좌절하고 있느냐.
너는 너를 얼마짜리로 생각하느냐?
너의 가치는 네가 값을 메기는 그대로다."
- 김태광, 대한민국 20대, 열정에 미쳐라
9. 한 순간도 헛되이 살 수 없는 까닭
아소카 대왕은 인도를 최초로 통일시킨 사람이다.
그런데 그에게는 방탕한 동생이 하나 있었다.
어느 날 동생이 국법을 어기자 왕은 동생에게 말하였다.
"일주일 뒤에 너를 사형시키겠다.
그러나 특별히 너를 불쌍히 여겨 일주일 동안만이라도 왕처럼 즐길 수 있도록 배려를 하겠노라.
”왕은 곧 후궁들로 하여금 동생을 시중들게 하는 한편 좋은 음식을 원하는대로 주었다. 그런데 동생이
산해진미와 멋진 여자들을 즐기는 동안 험악하게 생긴 장사는 매일 아침 동생 앞에서 이렇게 외쳤다.
"죽을 날이 엿새 남았소이다! 죽을 날이 엿새 남았소이다!”
이튿날 아침 또 외쳤다.
“죽을 날이 닷새 남았소이다! 죽을 날이 닷새 남았소이다!”
이렇게 나흘, 사흘, 이틀을 외치게 하였으므로 동생은 하루가 지날수록 불안감이 더해갔다.
마침내 사형을 집행할 날 아침이 되었다. 그러자 장사는 또 외쳤다.
“죽을 때가 열두 시간 남았소이다!”
이렇게 열한 시간, 열 시간을 차례차례 헤아려 마침내 사형 집행 시간이 되었다.
드디어 아카소 대왕은 동생을 불러 물었다
“그래 일주일 동안 잘 즐겼느냐?”
동생이 말했다.
"저 장사가 험악한 표정으로 눈을 부릅뜨고 죽을 날을 세고 있는데 어떻게 즐길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자 아카소 대왕이 말하였다.
“동생아! 다만 장사가 눈에 보이느냐 보이지 않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저승사자가 곁에 서서 죽을
날짜를 헤아리고 있단다. 그러니 어찌 한시인들 헛되이 보낼 수 있겠느냐?”
동생은 왕의 질책을 듣고 크게 느낀 바가 있어서 행실을 바로 잡았다고 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하여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한 순간도 헛되이 살 수 없는 까닭이 아닐까
- 출처 : 다음 블로그 아빠의 일기
<정원사 미켈란젤로>
한 가난한 정원사 청년이 있었습니다.
틈만 나면 그는 나무 화분에 열심히 조각을 했습니다.
청년은 퇴근시간 이후에도 정원에 남아 조각에 몰두했습니다.
그의 손길이 스쳐간 나무 화분들은 멋진 조각품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어느 날 주인이 청년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정원만 가꾸면 된다.
조각을 한다고 임금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수고를 하느냐."
청년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저에게는 이 정원을 아름답게 꾸밀 의무가 있습니다.
나무 화분에 조각을 하는 것도 저의 업무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청년의 투철한 책임감에 탄복한 주인은 청년에게 장학금을 주어
미술학교에 입학하도록 했고 결국 청년은 세계적인 화가로 성장해서
명성을 얻었습니다.
이 가난한 정원사의 이름은 미켈란젤로입니다.
성실하고 근면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도약의 기회'가 옵니다.
당신의 일을 사랑하고 그리고 몰두하십시오.
작은 물이 모여 시내를 이루듯 오늘이 모여 미래가 됩니다.
당신의 오늘에 몰두하십시오.
- 김장환, '새 비전을 가지고 삽시다' 중에서
열아홉의 어린 나이에 장원 급제를 하여
스무살에 경기도 파주 군수가 된 맹사성은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느 날 그가 무명 선사를 찾아가 물었다.
"스님이 생각하기에 이 고을을 다스리는 사람으로서
내가 최고로 삼아야 할 좌우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오?"
그러자 무명 선사가 대답했다.
"그건 어렵지 않지요. 나쁜일을 하지 말고 착한일을 많이 베푸시면 됩니다."
"그런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치인데 먼길을 온 내게 해줄 말이 고작 그것뿐이오?"
맹사성은 거만하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러자 무명 선사가 녹차나 한잔 하고 가라며 붙잡았다.
그는 못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스님은 찻물이 넘치도록 그의 찻잔에 자꾸만 차를 따르는 것이 아닌가.
맹사성이 소리쳤다.
"스님,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망칩니다."
하지만 스님은 태연하게 계속 찻잔이 넘치도록 차를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는 잔뜩 화가 나 있는 맹사성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고,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것은 어찌 모르십니까?"
스님의 이 한마디에 맹사성은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어졌고 황급히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다.
그러다가 문틀에 세게 부딪히고 말았다.
그러자 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히는 법이 없습니다, 곡식도 때가 차면 고개를 숙이지요."
- 맹사성의 일화 -
※ 孟思誠 : 충남 온양 출신, 1360년~1438년, 고려말~조선초의 재상
청년과 지혜로운 임금님
하는 일마다 실패하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절망에 빠져 있던 그에게 마을 사람들은 지혜로운 임금님을 찾아가 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청년은 그 길로 임금님을 찾아가 인생에서 성공하는 비결을 가르쳐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임금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잔에 찰랑거릴 만큼 포도주를 따라 청년에게 건네주고는 병사를 불러 명령했습니다.
˝이 청년이 포도주 잔을 들고 마을을 한바퀴 도는 동안 너는 그 뒤를 따르라.
그러다 만약 청년이 포도주를 한 방울이라도 떨어뜨리면 그 자리에서 목을 베어라!˝
지혜를 구하러 왔다가 오히려 죽을 위기에 처한 청년은 포도주 잔을 들고,
식은땀을 흘리며 마을 한 바퀴를 겨우 돌아 임금님앞에 섰습니다.
다행히 포도주는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습니다.
임금님이 위엄있는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그래. 자네는 시내를 도는 동안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었는가?˝
청년이 대답했습니다.
˝예? 아...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했습니다.˝
임금님이 성난 듯 큰소리로 다시 물었습니다.
˝정녕 거리에 있는 거지도 장사꾼도 못보고, 아이들이 노래하는 소리도 못 들었단 말인가?˝
˝예. 포도주에만 정신이 팔려서....˝
청년은 잔뜩 겁에 질려 말끝을 흐렸습니다.
그러자 임금님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렇다. 바로 그것이 성공의 비결이다.
오직 한가지 일만 생각하느라 다른것에 신경 쓰지 않는 집중력이 바로 그 뜻을 이루는 지름길이니라.˝
========= 이 우화가 시사하는 바와 같이 한가지 일에 집중하면 못 이룰 것이 없습니다.=========
- 출처 : 문학과 사람들
<이놈>과 <선생>의 차이
옛날에 나이 지긋한 백정이 장터에서 푸줏간을 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백정이라면 천민 중에서도 최하층 계급이었다.
어느날 양반 두 사람이 고기를 사러 왔다.
첫 번째 양반이 말했다.
"야, 이놈아 ! 고기 한 근 다오."
"예, 그러지요."
그 백정은 대답하고 고기를 떼어주었다.
두 번째 양반은 상대가 비록 천한 백정이지만, 나이 든 사람에게 함부로 말을 하는 것이 거북했다.
그래서 점잖게 부탁했다.
"이보시게, 선생. 여기 고기 한 근 주시게나."
"예, 그러지요, 고맙습니다."
그 백정은 기분 좋게 대답하면서 고기를 듬뿍 잘라주었다.
첫 번째 고기를 산 양반이 옆에서 보니, 같은 한 근인데도
자기한테 건네준 고기보다 갑절은 더 많아 보였다.
그 양반은 몹시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며 따졌다.
"야, 이놈아! 같은 한 근인데, 왜 이 사람 것은 이렇게 많고,내 것은 이렇게 적으냐?"
그러자 그 백정이 침착하게 대답했다.
"네, 그거야 손님 고기는「놈」이 자른 것이고, 이 어른 고기는『선생』이 자른 것이니까요?"
- 작자미상
14. 뜻을 이루는 지름길
영국 런던에 살던 한 청년이 시골로 여행을 떠났다. 청년은 어느 조용한 마을에 도착하는 순간, 도시에서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호수를 발견하자 너무도 기쁜 마음에 호수로 달려갔다. 그러다가 뜻하지 않게 미끄러지며 물에 빠지고 말았다. 헤엄도 칠 줄 몰랐던 이 청년은 계속 물속에서 허우적거렸고,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영락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급박한 처지가 되고 말았다. 이때 마침 호숫가를 지나던 한 시골 소년이 호수로 뛰어들어 청년을 구출해 주었다. 정신이 든 도시 청년이 자기를 구해준 시골 소년에게 말했다. “정말 고맙다.” “아니요,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이렇게 해서 그들은 서로를 알게 되었지만 다시 헤어져야만 했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나, 도시 청년은 10여 년 전의 그 일을 잊지 못하고 자기를 구해 주었던 시골 소년을 다시 찾아 갔다. 이들은 처음에 서로의 얼굴도 잘 알아보지 못했지만, 몇 마디 말을 나누면서 이내 다시 친숙해졌다. 도시 청년이 이제는 청년이 된 시골 소년에게 물었다. “너는 꿈이 뭐니?” “나는 의사가 되는 게 꿈이에요. 하지만 집안이 가난해서 대학에 갈 수가 없어요.” 이 말을 들은 도시 청년은 부자인 자기 아버지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그 시골 청년에게 의사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하여 그 시골 청년은 마침내 런던의 의과대학에 입학하기에 이르렀고, 결국은 의사가 되었다. 그 시골 청년이 바로 페니실린을 발명한 알렉산더 플래밍이고 그 도시 청년이 영국 수상이 된 윈스턴 처칠이다.
그 후 1940년 5월, 영국이 독일군의 침공 앞에 놓여 있을 때, 수상이 된 처칠은 전쟁의 상황을 살피기 위하여 중동 지방을 순시하러 갔다가 뜻하지 않게 폐렴에 걸리게 되었다. 그 당시로는 폐렴에 대한 그 어떤 치료약도 개발되어 있지 않은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이 때 고열에 시달리며 심한 고통 속에서 꼭 죽을 줄 알았던 처칠을 구해 준 사람이 바로 알렉산더 플레밍 박사였고, 이 때 발명된 약이 바로 페니실린이었다.
진정 아름다운 인연은 서로가 서로에게 위안이 되는 만남이 아닐까? 우리는 이런 엄연한 사실을 종종 망각하며 산다. 오히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잊고 사는 우리의 삶을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갖자. 그리고 이 시간 당신을 지켜보며 미소를 머금고 있지만, 너무나 평범하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친구에게 전화라도 한 통 넣는 것은 어떨까?...
*『행복은 물한잔』 중에서...
16. 스테이지 15에서 생긴 일 사람의 힘이나 동력을 이용한 탈 것이 개발되면 대부분 이 탈것으로 경기가 치러지고 경기를 통해 그 성능이 향상되고 기술발전이 이뤄진다. 자전거 역시 그랬다. 1863년 페달이 달린 자전거가 탄생하고 5년 뒤 프랑스 파리에서 최초의 자전거 대회가 열렸다. 이후 자전거가 대중화되면서 도시와 도시를 잇는 100km 이상의 장거리 대회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1896년에는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었고, 같은 해에 지금도 치러지고 있는 착명 높은 대회 ‘파리-루베’경기가 시작되었다. 7월 한 달 간 프랑스를 일주하는 ‘뚜루 드 프랑스’는 자전거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들어보았을 법한 유명한 대회다. 세계대전으로 중단된 것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열려 올해 98회를 맞는다. 올해의 코스는 총 3,471km로 21일간 경기가 치러지며 하루 평균 165km를 달려야 한다. 평지도 있지만 험준한 알프스와 피레네를 넘는 산악 구간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뚜르 드 프랑스’같이 수일 이상 지속되는 경기를 ‘투어’라고 하는데, 투어 경기는 각 스테이지(구간)의 우승보다도 종합 순위가 중요하다. 성적이 들쑥날쑥한 것보다는 꾸준히 좋은 성적을 기록해 총 주행시간이 가장 짧은 선수가 종합 우승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기 중 가장 빠른 기록을 가진 선수만이 노란 상의(옐로 저지)를 입을 수 있는데, 이 노란 상의를 지키기 위해 또는 빼앗기 위해 각 팀의 선수들은 작전을 구사하고 공격할 타이밍을 노린다. 2010년, 뚜르 드 프랑스. 경기가 중반을 지나 후반으로 향하는 스테이지 15. 옐로 저지를 입은 앤디 쉴렉이 언덕을 오르다 체인이 빠져 멈춰 섰다. 이때 전년도 우승자이자 종합순위 2위였던 알베르토 콘타도르는 쉴렉을 지나쳐 속도를 냈다. 쉴렉은 이 언덕에서 13초 그리고 스테이지에서 총 39초를 잃어 옐로 저지를 넘겨줘야 했다. 팬들은 콘타도르를 거세게 비난했다. 옐로 저지를 입은 선수가 넘어지거나 기계 고장으로 멈춰 서면 추월해서는 안 된다는 선수들 간의 불문율을 어겼기 때문이었다. 경기가 끝나고 콘타도르는 사과했지만 스포츠맨십보다 승리에 집착한다는 평가를 들었다. 여섯 개의 스테이지를 더 달려 최종 승자는 콘타도르로 결정되었는데, 2위인 쉴렉과의 차이는 그 때 벌어진 39초였다. 그 때 콘타도르가 멈춰 선 쉴렉을 추월하지 않았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이와 상반된 장면도 뚜르 드 프랑스의 역사에 확실하게 기록되어 있다. 랜스 암스트롱은 1999년부터 2005년까지 뚜르 드 프랑스 7연패라는 전무후무한 대 기록을 세운 미국의 사이클 영웅이다. 그는 1993년 세계챔피언에 올랐다가 3년 뒤 고환암 판정을 받았다. 암 세포가 이미 폐와 뇌까지 전이된 상태라 생존 확률은 극히 낮았다. 하지만 그는 몇 차례의 대수술과 항암치료를 이겨내고 1999년 뚜르 드 프랑스로 돌아왔다. 2003년 그는 옐로 저지를 입고 피레네를 오르던 중 응원 나온 아이가 들고 있던 비닐 봉지에 핸들이 걸려 넘어지고 만다. 뒤따르던 선수는 얀 울리히. 여러 해 동안 랜스 암스트롱에 가려져 만년 2위에 머물렀기에 승리가 목말랐을 터였다. 넘어진 랜스를 지나쳐 앞으로 나선다면 순위가 뒤바뀔 수 있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얀 울리히는 그 자리에 멈춰섰고, 랜스 암스트롱이 일어나 다시 출발할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팬들은 그 순간 2년 전의 장면을 연상했다. 2001년 얀 울리히가 피레네산맥의 내리막을 달리던 중 도로를 이탈해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졌을 때, 랜스 암스트롱은 그를 걱정하며 다른 선수들에게 서행하며 그를 기다리자고 제안했다. 다행히 얀 울리히는 크게 다치지 않았고 자력으로 서행하던 대열에 합류했다. 2년 뒤에는 얀 울리히가 랜스 암스트롱을 기다려준 것이다. 공교롭게도 콘타도르가 멈춰선 쉴렉을 추월해 간 것과 울리히가 암스트롱을 기다린 일 모두 스테이지 15 언덕에서 일어났다. 추월한 한 명은 우승을 차지했고, 스포츠맨십을 을 발휘해 기다려 준 한 명은 시상대의 두 번째 자리에 만족해야 했다. 흔히 승자만이 역사에 남는다고 한다. 그러나 팬들은 1위보다 위대한 2위 선수의 이름과 행동을 영원히 기억하려 한다. / 한동욱 월간 자전거 생활 편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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