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모음

인연

金 敬 峯 2009. 5. 27. 14:49

 

인연

 

 

 


 

 

지난 4월, 춘천에 가려고 하다가 못가고 말았다. 나는 성심여자대학에 가보고 싶었다. 그 학교에, 어느 가을학기, 매주 한 번씩 出講(출강)한 일이 있었다. 힘드는 출강을 한 학기 하게된 것은, 주 수녀님과 김 수녀님이 내 집에 오신 것에 대한 예의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사연이 있었다.

 

수십년전, 내가 열일곱 되던 봄, 나는 처음 도쿄에 간 일이 있다. 어떤 분의 소개로 사회교육가 M선생 댁에 留宿(유숙)을 하게 되었다. 시바쿠(芝區)에 있는 그 집에는 주인 내외와 어린 딸, 세 식구가 살고 있었다. 하녀도 書生도 없었다. 눈이 예쁘고 웃는 얼굴을 하는 아사코(朝子)는 처음부터 나를 오빠같이 따랐다. 아침에 낳았다고 아사코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하였다. 그 집 뜰에는 큰 나무들이 있었고, 一年草 꽃도 많았다. 내가 간 이튿날 아침, 아사코는 스위트 피를 따다가 화병에 담아, 내가 쓰게된 책상위에 놓아 주었다. 스위트 피는 아사코같이 어리고 귀여운 꽃이라고 생각하였다.

 

성심여학원 소학교 1학년인 아사코는 어느 토요일 오후, 나와 같이 저희 학교에까지 산보를 갔었다. 유치원부터 학부까지 있는 가톨릭교육기관으로 유명한 이 여학원은, 시내에 있으면서 큰 목장까지 가지고 있었다. 아사코는 자기 신장을 열고, 교실에서 신는 하얀 운동화를 보여 주었다.

 

내가 도쿄를 떠나던 날 아침, 아사코는 내 목을 안고 내 뺨에 입을 맞추고, 제가 쓰던 작은 손수건과 제가 끼던 작은 반지를 이별의 선물로 주었다.

 

그 후, 10년이 지나고 3~4년이 더 지났다. 그 동안 나는, 국민학교 1학년 같은 예쁜 여자아이를 보면 아사코 생각을 하였다.

 

내가 두 번째 도쿄에 갔던 것도 4월이었다. 도쿄역 가까운데 여관을 정하고 즉시 M선생 댁을 찾아갔다. 아사코는 어느덧 청순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令孃(영양)이 되어있었다. 그 집 마당에 피어있는 목련꽃과도 같이. 그 때, 그는 성심여학원 영문과 3학년이었다. 나는 좀 서먹서먹했으나, 아사코는 나와의 再會(재회)를 기뻐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 어머니가 가끔 내 말을 해서 나의 存在(존재)를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그 날도 토요일이었다. 저녁 먹기 전에 같이 산보를 나갔다. 캠퍼스를 두루 거닐다가 돌아올 무렵, 나는 아사코 신장은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무슨 말인가 하고 나를 쳐다보다가, 교실에는 구두를 벗지않고 그냥 들어간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갑자기 뛰어가서 그 날 잊어버리고 교실에 두고온 우산을 가지고 왔다. 지금도 나는 여자 우산을 볼 때면, 연두색이 고왔던 그 우산을 聯想(연상)한다. <쉘부르의 우산> 이라는 영화를 내가 그렇게 좋아한 것도 아사코의 우산 때문인가 한다. 아사코와 나는 밤늦게까지 문학 이야기를 하다가 가벼운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새로 출판된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세월> 에 대해서도 이야기한 것 같다.

 

그후 또 십여년이 지났다. 그동안 제2차 세계대전이 있었고, 우리나라가 해방이 되고, 또 한국전쟁이 있었다. 나는 어쩌다 아사코 생각을 하곤 했다. 결혼은 하였을 것이요, 전쟁통에 어찌 되지나 않았나, 남편이 전사하지나 않았나 하고 별별 생각을 다하였다. 1954년, 처음 미국 가던 길에 나는 도쿄에 들러 M선생 댁을 찾아갔다. 뜻밖에 그 동네가 고스란히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리고 M선생네는 아직도 그 집에 살고 있었다. 선생 내외분은 흥분된 얼굴로 나를 맞이하였다. 그리고, 한국이 독립이 되어서 무엇보다도 잘 됐다고 치하하였다. 아사코는 전쟁이 끝난 후, 맥아더 사령부에서 번역 일을 하고 있다가, 거기서 만난 일본인 2세와 결혼을 하고 따로 나가서 산다는 것이었다. 아사코가 전쟁 未亡人이 되지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그러나 2세와 결혼하였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만나고 싶다고 그랬더니, 어머니가 아사코의 집으로 안내해 주었다.

 

뾰족 지붕에 뾰족 창문들이 있는 작은 집이었다. 20여년전 내가 아사코에게 준 동화책 겉장에 있는 집도 이런 집이었다.

 

“아! 이쁜 집! 우리, 이담에 이런 집에서 같이 살아요”

 

아사코의 어린 목소리가 지금도 들린다. 10년쯤 미리 전쟁이 나고 그만큼 일찍 한국이 독립되었더라면, 아사코의 말대로 우리는 같은 집에서 살 수 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뾰족 창문들이 있는 집이 아니라도. 이런 부질없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 집에 들어서자 마주친 것은 백합같이 시들어가는 아사코의 얼굴이었다. <세월> 이란 소설 이야기를 한 지 10년이 더 지났었다. 그러나 아직 싱싱하여야할 젊은 나이다. 남편은 내가 상상한 것과 같이 일본사람도 아니고 미국사람도 아닌, 그리고 進駐軍(진주군) 장교라는 것을 뽐내는 사나이였다. 아사코와 나는 절을 몇 번씩 하고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오는 週末에는 춘천에 갔다오려 한다. 소양강 가을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



피천득(皮千得), <인연>, 2000년판, 샘터사

 

 

 

 

 

금아 피천득
수필가, 시인, 영문학
호는 금아(琴兒). 191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중국 상하이 공보국 중학을 거쳐 호강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한때 교사로 근무했으며 광복 직후인 1946년 경성대학(지금의 서울대) 예과 교수를 거쳐 1974년까지 서울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며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1954년엔 미국 국무성 초청으로 하버드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연구하기도 했다. 1930년 <신동아>에 '서정소곡'(시)을 발표하며 문필 생활을 시작, 첫 시집 <서정시집>(1947)을 통해 자연과 동심이 살아 있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시라는 호평을 받았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소재를 특유의 섬세하고 간결한 언어로 표현하여 남녀노소 모두에게 고른 사랑을 받고 있는 그의 수필들은 대표작인 '인연'을 비롯하여 '수필'과 '플루트 플레이어' 등이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유명 작가로 평생을 살았으되, 검소하고 소탈한 생활인으로 더 유명한 그는 장식품 하나 없는 작은 아파트에서 책과 더불어 조용하게 살고 있다. 펴낸 책으로는 대표 수필을 모은 유일한 수필집 <인연>과 시집 <생명>이 있으며 번역서로 <내가 사랑하는 시><셰익스피어 소네트 시집> 등이 있다.

 

 

 

 






출처 : 금강하구사람  |  글쓴이 : 금강하구사람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