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ssic·가곡

J.S.바흐 - 바이올린과 하프시코드를 위한 소나타 제3번 E장조

金 敬 峯 2012. 5. 26. 11:10

 

 
바흐 / 바이올린과 하프시코드를 위한 소나타 BWV1014~1019
이 여섯곡의 소나타는 완전한 자필악보가 현존하지 않는다. 이 6곡의 악보가 처음 인쇄 된것은 바흐가 세상을 떠난 후의 일이었다. 6곡의 소나타가 언제 작곡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작품들은 쾨텐시대(1717~1723)인 1718년 부터 1722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있다. 바흐의 연구가 깊어가면서 5번과 6번을 제외한 나머지 4곡은 1720년 경의 작품이라고 추정되었다.
이 6곡의 작곡되던 시기의 바흐는 음악을 좋아하는 쾨텐의 영주 레오폴드 제후의 초청으로 궁정악장으로 취임했고 쾨적한 생활을 보낼 수 있었으며 이 궁정이 예배에서 음악을 그다지 중요시 하지 않는 칼뱅파에 속해 있어 바흐는 종교음악으로부터 멀어지게 되었으며 대신 교회와 관계가 없는 작품, 그것도 기악곡으로 새 경지를 개척해 나갔다. 1720년까지 바흐의 생활이 얼마나 충실했으며 행복으로 가득차 있었는지는 그 무렵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BWV1046~1051]을 비롯한 많은 작품(단조라 할지라도)이 낙천적이고 구김살 없는 양상을 보이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런데 1720년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그해 5월에 바흐는 칼스바트(지금의 체코 영토인 카를로비바리)에 보양하러 가는 레오폴드 재후를 따라 쾨텐을 떠났다. 그가 떠나고 없는 7월7일, 바흐는 사촌 누이이며 사랑하는 아내인 마리아 바르바라와 갑자기 사별하게 되었고, 더우기 바흐는 쾨텐에 돌아와서야 아내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 4명의 아이가 있었던 바흐는 큰 충격을 받았다. 6곡의 소나타 중에서 4번과 5번이 다른 4곡과는 내용이 달라서 비통함이나 단호한 의지, 혹은 종교적인 체념이 보이고 있는 것은 아내의 죽음과 관계가 있다고 짐작하고 있다. 제 1번의 내면적인 슬픔과 고요, 격정과의 대비는 그 전년도인 1719년에 넷째 아들을 잃은 것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바흐의 바이올린 소나타는 무반주(파르티타 포함)의 것[BWV1001~1006)], 통주저음이 딸린 것[BWV1021, 1023], 그리고 악보에 음표가 명 확히 기입되어 있는 쳄발로와 협연하는 것들 세종류가 있다.
그 중에서 바이올린과 쳄발로를 위한 소나타는 6곡이 남아 있다. [BWV1014 ~ 1019] 이 6곡은 음악사적으로 대단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통주저음이 딸린 낡은 스타일의 바이올린 소나타에서 근대적인 2중주 소나타로 넘어가는 교량 역활을 하는 것이 이 소나타이기 때문이다.
바흐는 각각 세곡씩으로 되어 있는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BWV1001~1006]로도 알 수 있듯이, 바이올린의 매력을 선율 악기로만 살리는데 만족하지 않고 대위법적인 창의를 중시하여 화성적인 바이올린에 흥미를 보였다.
이렇한 것은 바흐가 독주악기와 통주저음을 위한 소나타를 의외로 적게 남겼다는, 당시로는 보기드문 현상이 있다. 현재 바흐의 작품 으로 간주되고있는 이 종류의 소나타는 [바이올린과 통주저음을 위한 소나타 BWV1021, BWV1023] 두곡과, [플루트와 통저주음을 위한 소나타 BWV1034,1036]두곡 뿐이다.(BWV1033은 바흐의 작품이 아니라는 설이 있슴) 바흐는 챔발로라는 악기가 앙상블에서 차지하는 지위를 향상시키려 노력하여 쳄발로를 통주저음에만 그치지 않도록 한 최초의 대표적인 작곡가였다.
그런만큼 바흐는 쳄발로 연주자에게 대폭적이 자유를 주는 대신, 정확하게 기보된 악보로 제약하기를 원했다. 바흐의 [바이올린과 쳄발로를 위한 소나타]는 트리오 소나타의 형태를 한층 합리적으로 만들었고, 통주저음을 폐지한 형태에 가깝게 만들었다. 즉 바흐는 쳄발로의 왼손과 오른손에 각각 하나의 성부를 부여하고, 거기에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성부를 추가하여 3성부로 했다. 여기서 쳄발로는 본질적으로 통주저음과 관계가 없다. 이것은 바흐의 [플루트와 쳄발로를 위한 소나타 BWV1030,1032]도 마찬가지이다.(BWV1031은 바흐의 작품이 아니라는 설이 있슴)
단 이렇한 3성의 진행은 원칙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언제나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쳄발로만으로 이루어지고 4성,5성, 6성이 되기도 한다. 즉 무반주 바이올린에서처럼 바이올린 자체가 대위법적인 음악을 연주하는 경우도 있어 성부가 늘어나기도 하며 바이올린에 독주적인 지위를 부여하기도 한다. 이 때 쳄발로는 바이올린에 대한 화음적인 반주를 하거나 오른손으로 바이올린의 선율에 동조한다.
이 여섯곡의 소타 나는 6번(5악장)외에는 모두 '느리게-빠르게-느리게-빠르게'하는 이탈리아 교회소나타의 악장배치를 하고 있다. 그러나 바흐는 이 태두리 안에서 이탈리아3부 아리아의 구성을 전용해 보거나 론도에 가까운 형태로 협주곡에의 접근을 꽤하거나, 샤콘느, 혹은 파사칼리아에 가까운 것을 배채하기도 했다. 이와같이 바흐는 통주저음이 달린 소나타와 트리오 소나타에서 쳄발로의 기능을 살려 바이올린과 쳄발로를 위한 소나타를 창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