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 전남 신안에서 출생한 김환기는
일찍이 동경에 유학하여(일본대학 예술학부) 1930년대 후반
일본화단의 전위적 단체인 자유미술가협회전 창립에 참여함으로써
본격적인 모더니즘 운동을 전개했다.
해방 후 1947년에는 유영국, 이규상과 더불어 신사실파를 결성하여
모더니즘의 계보를 형성하는 한편
서울대학, 홍익대학에서 후진을 양성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쳐 보였다.
1956년에는 프랑스로 진출하여 약 3년간 체류했으며
1959년 귀국 후는 홍익미대 학장, 미술협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는 등 미술계 중심에서 활동했다.
1963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한국 대표로 참석했으며
그 해 미국 뉴욕에 정착한 이후 1974년 작고하기까지 뉴욕 화단에서 활동하였다.
김환기의 예술세계는 초기인 동경시대와 중기인 서울, 파리시대,
그리고 후기인 뉴욕시대로 나누어진다.
초기인 동경시대는 입체파, 구성파의 영향을 거쳐 추상미술에 도달하였으며
해방 후는 추상적 바탕에 자연적 이미지를 굴절시킨 독특한 화풍을 펼쳐 보였다.
특히 이 시기 김환기가 많이 다룬 소재는
달, 산, 항아리, 학, 매화 등 고유한 정서를 담은 것이었다.
자연을 노래하고 자연에 귀의하려는 동양인의 의식을 근간으로 하면서
우리 고유한 정서를 양식화한 점에서 그의 예술은 많은 공감을 얻은 것이 되었다.
그의 기조색으로서의 청색 역시 몽환적이면서도 한국의 자연을 대변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963년 뉴욕에 정착하면서 김환기의 예술은 또 다른 변신을 보인다.
구체적인 자연대상은 지워지고 선, 점, 면들로 구성되는 순수한 추상에로의 변모이다.
방법상에서도 지금까지의 두터운 마티엘(질감) 위주에서 벗어나
안으로 스미는 듯한 엷고 투명한 안료로 뒤덮히는 은은한 여운의 화면을 보여주었다.
김환기의 뉴욕시대작은 1970년 한국미술대상전에 출품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통해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되었고
그의 뉴욕에서의 변신을 확인시켜 주었다.
70년대에 접어들면서 김환기의 작품은 선, 점, 면에서 더욱 발전된 점만의 세계로 진행되어
화면 전체가 점들로 채워지는 이른바 점화의 세계에 도달하였다.
살아있는 세포와 같이 점들은 증식되어 거대한 파도모양의 리듬을 만들기도 하고
영롱한 성좌처럼 명멸하는 변화를 보이기도 했다.
70년을 기점으로 그의 의욕적인 창작의지는 대폭의 점화들을 다량 제작해 내었다.
김환기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들은 만년에 해당되는 70년대에 집중적으로 창작되어 나왔다.
순수한 추상적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만년의 작품 속에서도 간단없이 자연에 향한 그의 깊은 정신적 항상성이 맥박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마치 광대한 파동으로 전달되는 생명의 리듬처럼
그의 작품은 시공을 넘어 아직도 우리들의 가슴속에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고 있다.
출처 : | 마음 고인 샘 | 글쓴이 : 운심일초 원글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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