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슬프게 하는 시들 / 안도현
처음부터 끝까지 묘사 한 줄 없이 자기 뱃속에 든 것을 줄줄이 쏟아 놓기만 하는 시는 나를 슬프게 한다. 얼마나 말을 하고 싶었으면 시라는 형식을 빌어 일방적인 고백을 할까 싶기도 하지만, 시의 옷을 입고 이리저리 시달리는 그 언어는 또 얼마나 몸이 아플 것인가. 말을 하고 싶어도 참을 줄 알고, 노래를 시켜도 한 번쯤은 뒤로 뺄 줄 아는 자가 시인일진대, 어두운 노래방에서 혼자만 마이크를 잡고 있는 시인은 나를 슬프게 한다.
또한 시인이란, 감정의 물결을 슬기롭게 조절하면서 헤쳐 나갈 줄 알아야 할 터이다. 시란 깊은 강물 위의 노젓기와 같아서 감정을 밀었다가 당기고, 당겼다가 미는 데서 그 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인데,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못하고 한 자리에 뱅뱅 도는 시는 나를 슬프게 한다. 앞으로 나아가야 뒤가 보이고, 뒤로 물러서야 앞이 보이는 법 아니겠는가.
술을 먹지도 않고 술에 취한 것처럼 보이는 시가 있다. 아침에 한 말을 저녁에 또 하고, 3년 전에 한 말을 5년 후에 또 되풀이하는 시는 나를 슬프게 한다. 수많은 '역전앞'과 '고목나무'와 '서해바다'와 '풀장'의 동어반복이 나를 슬프게 한다.
밤톨만한 돌멩이에다가 설탕물을 바른 시도 나를 슬프게 한다. 이 세상에서 무엇보다 소중하고 고귀한 게 사랑이라는 것을 그 누가 모르랴마는, 암컷과 수컷의 달콤한 속삭임만 옮겨 적는 대필자가 되어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모든 암수가 밥을 먹고 똥을 싼 뒤에 짝짓기를 한다는 사실은 왜 관심을 두지 않는가. 때로 사랑도 독약이라는 것, 희망도 아편이라는 것을 왜 모르는가. 알면서도 왜 모르는 척하는가.
시에서 구체성은 감동의 원천이고, 삶의 생생한 근거이다. 구체성의 습지에 몸을 비벼댄 흔적이 없는 시는 나를 슬프게 한다. 미당의 시에 나오는, 옛날의 '누이의 손톱'보다 나는 말년의 '할망구의 발톱'이 더 좋은 것이다. 누이는 재기 넘치는 허구이고 할망구는 깊어진 현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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