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부자(父子)가 사는 법」(소설가 한창훈) 2009년 5월 20일_열일곱번째 |
굳이 콤플렉스 관련 정신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아버지와 아들은 갈등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수컷으로서의 기능과 역할이 겹치기 때문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 웃음 말고도 아버지의 존재라고 하니 (그 역사가 짧아서 그러겠지만) 부자간의 갈등과 경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한 아버지가 있다. 그는 어부이다. 이른 새벽 어장을 나가기 위해서는 아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런데 아들은 술에 취해 늦게 들어왔다. 깨우긴 했는데 병든 닭처럼 꾸벅거리고 있는 몰골을 보고 있자니 화가 솟구친다. 하지만 한바탕 해 버리면 어장은 파산이다. 꾹 누르며 평소에 준비해 둔 말을 내뱉는다. “이런 말 너도 들어 봤을 것이다.” 무슨 소리냐며 아들은 고개를 든다. 눈은 아예 떠지지 않는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다는 말 말이다. 먹고살려면 새고 사람이고 모두 부지런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들은 그 상태로 답한다. “그럼 그 벌레는요?” “......” “일찍 일어나는 바람에 잡아먹힌 벌레는요?” “이 자식아, 그 벌레는 너처럼 술 퍼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놈이야. 그러니까 잡아먹히지.” 아들은 비로소 눈을 슬며시 뜬다. “그럼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새도 벌레를 잡아먹을 수 있겠네요?” 아버지는 기가 찬다.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대응이 궁하다. 속만 끓어오른다. 교육의 창이 막힌 것이다. 한동안 이를 물고 있던 아버지는 소주병을 열고 밥그릇 가득 술을 부어 준다. “오냐, 술이 그리 좋다면 이 애비가 직접 따라 주마. 그동안 한잔도 못 준 거 한꺼번에 주는 것이니까 시원하게 마셔라.” 기세로 밀어붙이는 방법이 남았던 것이다. 숙취에 끙끙거리는데 어떻게 그 많은 소주를 마실 것인가. 잘못했습니다, 소리가 나오기를 아버지는 기다린다. 그런데 아들은 한동안 술 찰랑거리는 그릇을 바라보다가 정 그러시다면, 하고는 마신다. 아버지는 숨이 콱 막힌다. 사약 먹듯 간신히 들이킨 아들은 “저도 그동안 진심으로 술 한잔 못 올렸습니다, 사과드리는 의미에서 저도 한잔 올리겠습니다.” 이번에는 아버지 앞에 찰랑거리는 술사발이 놓인다. 자존심이 있지. 아버지는 마신다. 그리고 쓰러진다. 결국 아들이 아버지를 업다시피 하고 바다로 어장을 나간다.
협력의 전제조건은 갈등이다. 갈등이 소박한가 아닌가가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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