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을2

돌아가는 길 / 문정희

金 敬 峯 2009. 5. 27. 14:40

돌아가는 길

 

                              문정희




다가서지 마라

눈과 코는 벌써 돌아가고

마지막 흔적만 남은 석불 한 분

지금 막 완성을 꾀하고 있다

부처를 버리고

다시 돌이 되고 있다

어느 인연의 시간이

눈과 코를 새긴 후

여기는 천 년 인각사 뜨락

부처의 감옥은 깊고 성스러웠다

다시 한 송이 돌로 돌아가는

자연 앞에

시간은 아무 데도 없다

부질없이 두 손 모으지 마라

완성이란 말도

다만 저 멀리 비켜서거라

 


 

 

 


인각사(麟角寺)가 경상도 어디에 있는 절이라는데 자료를 괜히 본 것 같다. 벼랑과 작은 강을 배경으로 부처처럼 앉은 절. 일찍이 일연 스님이 이 절에서 삼국유사를 완성했다고 전하는데, 이마저 곧 잊을 것이다. 작품을 읽으면서 옆길로 눈이 가고 나도 모르게 매달리는 때가 있다. 이런 자세는 득보다 실이 많다. 시에 나오는 지명을 찾아 헤맨다거나 작가의 이력에 달라붙어 흠모하는 일은 맑은 마음으로 시에 다가서기 어렵게 한다. 그래서 처음 시를 만나고 착 달라붙으면 거침없이 복사하고 돌아 나오는 버릇을 들인다. 이곳저곳 눈을 두며 머뭇거리다가 사소한 군것질거리를 만나게 된다. 얼른 도망 나오는 게 상책이다. 시를 읽을 때뿐 아니고 살다 보면 알맹이보다 이런저런 치장에 더 정신을 놓는 때가 많다.

 

시를 읽으면서, '완성'했다고 정을 내려놓은 불상이 완성이 아니었던 것을 알게 된다. 진짜로 두 손 모을 일은 부처 앞에서가 아니라 부처가 되기 이전의 상태에 행해야 옳다. 그저 우리는 어떤 현상을 보고 그 이전의 것을 기억해내고 기도해야 마땅하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에 눈을 팔리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위에서 말한 시의 본질을 잊고 껍데기에 정신을 놓는 일과 같다. 

 

시를 그대로 따라 내려가면 시가 보인다. 완성이 무엇인지도 보인다. 정신 차릴 것도 없고 오해의 소지도 없다. 그러니 이 시는 좋은 시로 본다. 좋은 시는 시인이 쓴 길을 그대로 가고 뒤끝이 개운하면 다 좋다. 시인이 걷고 독자가 걷는 길. 소위 '도'라는 것이 그래서 '道'가 된다. 부처가 세상 감옥에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 자연의 변화를 인간의 마음과 섞어놓을 때 시를 감상하기에 도움이 된다. 물론 시인의 솜씨가 큰 역할을 하지만 시에 다가서는 자세도 문제가 된다.

 

이제야 돌은 그저 딱딱하게 굳어 있을 뿐 그것이 완성은 아니라는 자각으로 흡족하다. 조각 작품도 그렇다. 잠시 쓰기 좋고 보기 편하게 그 모양으로 있을 뿐이다. 우리가 말하는 '돌'이 되기 전의 모양 즉 딱딱해지기 전의 부스러기가 완성품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어떤 모양으로 나타나기 전의 상태, 자연의 모습이 완성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완성은 어떤 모습일까. 잘 죽는 모습? 아니다. 그것도 아니다. 완성은 형체를 알 수 없는 그 이전의 무엇일 테니.

 

결국, 시를 읽고 나서 확정한다. 시도 시인의 완성품이 아니다. 시인이 자기 마음에 흡족한 모양으로 들고 와서 보이는 것뿐이다. 네모난 그릇에 담으면 네모난 모양으로 보이고 또 다른 그릇에 담으면 그 모양이 된다. 그러니까 시의 완성품은 원래 이렇게 저렇게 변하기 쉬운 흐물흐물한 모양이겠다. 아니 모양도 없는 가상의 무엇이겠다. 오늘도 이유없이 불상을 안고 있다가 부슬부슬 흘리고 있다. 덩달아 내 몸 어딘가 부서져 내리고 시에 내려앉은 시선도 허물어진다.

출처 : 금강하구사람  |  글쓴이 : 금강하구사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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