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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 집을 파는 독일 사람들

金 敬 峯 2009. 8. 27. 15:51

얼마 전 세계적인 컨설팅회사인 프라이워터하우스쿠퍼퍼스(PwC)는 ‘2009년 유럽 부동산 시장 전망 보고서’에서 독일 주요도시의부동산 시황을 ‘대체적으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어 투자 최적지’로 평가했다. 또한 PwC는 이에 대해 ‘유럽 부동산 시장도세계적인 경제 불황으로 인한 침체가 계속되고 있지만, 독일은 장기적으로 변동성이 적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독일 사회의 안정적인 부동산 시장은 사람들의 사고 속에 한탕주의가 자리 잡지 못하게 하면서 졸부를 양산하지 않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지은 지 오래된 집은 대를 이어 사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을 정도로 이 나라에서 평생을 한 곳에 정착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자신이 정성들여 지은 집을 오래 보존하기 위해 자식 보다는 살아생전 손자손녀에게 상속해 두는 경우도 종종 있다. 때문에 부모가 죽고 나면 어린 자식 집에 얹혀살면서 실제적인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되는 애매한 상황도 발생한다. 게다가 손자는 그 부모가 죽은 후에라야 재산권을 행사하도록 명시해 놓았기 때문에 한 동안은 누구도 집을 함부로 팔아치울 수 없다.

한국을 떠나 온지 10년밖에 안되었지만 처음 살던 그 집에 살고 있는 지인들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이사를 자주 하는 우리네 삶을 생각하면 독일의 주거문화는 많이 다르다. 이 사람들에게 집은 단순히 주거를 위해, 좀 더 나아가 삶의 여유를 보다 향유하기 위해 존재할 뿐이지 다른 의미는 별로 없는 것 같다.

몇 년 전 다달이 비싼 월세를 지불하느니 차라리 그 돈으로 은행융자를 갚아나가자는 생각으로 무리해서 집을 장만했다. 그런데 집을 보러 다니면서 셋방을 전전하며 살았던 학생 때와는 다른 새로운 사실을 경험했다. 독일에서 집을 파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몇 가지 사유가 있다. 그런데 그 사유라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사뭇 달라 흥미로웠다.

첫 번째 간 곳의 주인은 이혼을 하고 여자 혼자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들어설 때부터 무엇인가 정리되지 않은 산만함과 음습한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주인 여자는 머리도 빗지 않은 부스스한 모습으로 방문객을 맞이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듣게 된 그녀의 고백이 새로운 둥지를 마련한다는 마음에 한껏 들떠있던 나를 착잡하게 만들었다. 내용인 즉 15년을 함께 산 남편이 스무 살이나 어린 딸 같은 아이와 바람이 나서 이혼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하루속히 전남편의 체취가 남아있는 이 집을 떠나고 싶다’고 털어놓았다.

씁쓸한 뒷맛을 남긴 그 곳을 나와 두 번째로 찾아간 곳은 80이 넘은 할머니 혼자 기거하는 집이었다. 그녀는 결혼 후 처음신접살림을 차렸던 이 집에 거의 60년 가까이 살았다고 했다. 20년 전 남편을 먼저 보내고 혼자 살기에는 큰 집을 힘들게 관리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너무 거동이 불편해서 더 이상 혼자 생활을 꾸려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어, 처분한 돈으로 양로원에 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할머니는 먼저 간 남편과 지금은 성인이 되어 출가한 두 아이들과 정성들여 가꾸었던 정원의 역사를 자세히 들려주기도 하고 죽은 남편이 손수 만든 붙박이장을 어루만지며 ‘이 집에 깃든 추억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지금 살고 있는 우리 집을 결정하기까지 적지 않은 단독주택을 구경했지만 대부분 매물이 이혼한 부부의 것이거나, 부모가 죽고 그 자식들이 유산을 처분하는 차원에서 팔거나, 혹은 혼자 살던 노인이 더 이상 스스로 생활을 꾸려나갈 기력이 없을 정도로 병약하게 되어 양로원을 찾는 경우였다.

물론 이직이나 사업 실패로 급하게 처분하는 집도 있기는 하지만 이 경우는 그리 흔치 않았다. 더구나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집을 팔고 사는 경우는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이 사람들은 그런 종류의 매매는 생각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아무리 부동산을 잘 굴려 이익을 내려고 연구 해 봐도, 말뚝 박혀 있듯 안정 된 집값과 집을 살 때 드는 세금과 중개료, 이사비등 집값의 10%에 달하는 엄청난 부대비용을 부담하고 나면 주택 매매로 이익을 본 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독일 사람들은 새로 집을 짓거나 헌 집을 살 때도 평생 그 곳에 정착한다는 전제하에 준비 한다. 이혼이나 사별 등의 이유로 처음의 계획이 변경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특별한 사건이 없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로 지은 집에 끝까지 살다가 그 집에서 임종을 맞이한다. 새로운 주택가가 들어서면서 같은 시기에 집을 지어 입주한 부부들은 아이들을 동네에서 함께 키우며 젊은 시절을 보내고, 그 아이들을 거의 비슷한 시기에 결혼시키고, 서로가 늙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살다가, 동네인근의 작은 공동묘지에 다 같이 묻힌다.

우리 이웃에 살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전형적인 독일식 주거문화를 고수하는 분들이다. 우리 집을 제외하고 모두 1968년경에 새로 지은 집에 입주해서 한 집도 이사 가지 않고 고스란히 그 곳에서 노후를 보내고 있다. 이미 부부 중 한사람을 먼저 보내고 쓸쓸히 혼자 사는 분들도 있기는 하지만, 정말 신기한 것은 그 때 그 사람들이 한 집도 이사 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앞마당을 쓸고 정원을 손질하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는 동네 노인 분들과 매번 꼭 같이 “할로!”하고 인사를 나누며간단한 안부를 묻다보면 나도 어느새 지루할 정도로 안정된 독일인들의 삶속에 선뜻 들어서 있는 느낌이다.

우리 골목에서 가장 연세 많은 앞집 할아버지는 점점 기력이 쇠진해지시는지 요즘 통 보기 힘들다. 올 봄까지만 해도 혼자 물끄러미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든지 간간이 정원에서 잡초를 뽑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었는데, 어쩐 일인지두문불출이다. 그래도 아직 매주 청소부가 들락거리고 가끔 정원사가 나무 가지를 치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것을 보면 건강에 크게 이상은 없는 것 같다. 그 큰 집을 80넘은 노인 혼자 관리 한다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닐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을 판다고는 생각지 못하는 독일인들이 아직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출처 : 독일교육 이야기  |  글쓴이 : 무터킨더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