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마을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 고두현

金 敬 峯 2009. 10. 27. 20:24

고두현,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낭송 이대의) 2009년 10월 26일 댓글 (0)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고두현

 

 

 

저 바다 단풍 드는 거 보세요.

낮은 파도에도 멀미하는 노을

해안선이 돌아앉아 머리 풀고

흰 목덜미 말리는 동안

미풍에 말려 올라가는 다홍 치맛단 좀 보세요.

남해 물건리에서 미조항으로 가는

삼십 리 물미해안, 허리에 낭창낭창

감기는 바람을 밀어내며

길은 잘 익은 햇살 따라 부드럽게 휘어지고

섬들은 수평선 끝을 잡아

그대 처음 만난 날처럼 팽팽하게 당기는데

지난 여름 푸른 상처

온몸으로 막아주던 방풍림이 얼굴 붉히며

바알갛게 옷을 벗는 풍경

은점 지나 노구 지나 단감빛으로 물드는 노을

남도에서 가장 빨리 가을이 닿는

삼십 리 해안 길, 그대에게 먼저 보여주려고

저토록 몸이 달아 뒤채는 파도

그렇게 돌아앉아 있지만 말고

속 타는 저 바다 단풍 드는 거 좀 보아요.

 

 

 

/ 고두현 - 1963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났으며,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가 있음. 시와시학 젊은시인상을 수상함.

 

낭송 / 이대의 - 시인. 199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출전 /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랜덤하우스코리아

음악 / 배기수

플래시 / 신문희

프로듀서 / 김태형

 
   

경남 남해 물미해안에 가 본 적 있어요. 흰 목덜미의 해안, 한 획의 수평선, 수평선을 잡고 사랑을 연락하는 섬들, 그리고 몸이 달듯이 뜨거운 파도. 이 시를 이 가을에 읽으니 사랑의 감정이 계속 생겨나요. 수줍어 자꾸 돌아앉게 되는 첫사랑의 감정이 생겨나요. 얼굴이 밝고 엷게 붉은, 착하고 어진 연인들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아요. 산도 바다도 인심(人心)도 사랑을 앓느라 뺨은 볼그레해지고 속 또한 타는 가을이지요. 산도 바다도 인심도 다홍의 가을잎이지요. 저 수평선 너머에서 단감빛으로 물들어오는 노을을 보러, 바다 단풍 보러 물미해안 삼십 리 바닷가를 걸어야겠어요.

 

2009. 10. 26

문학집배원 문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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