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의 거장/ 피카소의 모든 것/ 수 많은 아름다운 그림들
전설적인 남성 성의 상징은 영국의 ‘토마스 파’(Thomas Parr)라는 사람이다.
122 세에 두번째 결혼을 했는데 죽을 때까지 섹스를 즐겼다고 한다.
그는 1636 년 152 세로 영면한 후, ’웨스트민스터 대성당’(Westminster Abbey)에 묻혔다.
‘토마스 파’만큼 전설적인 정력의 인물이 한명 더 있다.
그가 바로 92세 까지 장수하며 수많은 여인들을 상대한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다.
페르낭드 올리비에, 에바 구엘, 올가 코클로바, 마리 테레즈 발테르,
도라 마르, 프랑스와 질로, 제네비에브 라포르트, 재클린 로크.
*페르낭드 올리비에 *에바 구엘 *올가 코클로바 *마리 테레즈 발테르
*도라 마르 *프랑스와 질로 *제네비에브 라포르트 *재클린 로크
8 명 여인의 이름을 적었지만,
사실상 그를 거쳐간 여인들은 수백명 이상이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피카소가 도라 마르와 함께 동거할 때의 이야기다.
‘난 이 남자의 아이를 낳았어요. 그러니 당신은 당장 여기를 떠나요!’
발테르가 찿아와 소리를 질렀다.
마르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당신이 여기 있을 수 있듯이 나도 그럴 권리가 있어요!’
결국, 치고 받는 싸움이 벌어졌지만, 피카소는 말리지 않았다.
두사람 사이를 오가며 그는 계속해 사랑을 나눌 것이기 때문이었다.
피카소 그림에는 사창가 여인들도 자주 등장한다.
유명한 '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1907)도
주인공은 모두 사창가 여인들이다.
피카소가 사창가를 찿은 것은 넘치는 정력을 주체할 길이 없어 그랬을 것이다.
천재화가는 창녀들이 없어도 주위에 여인들이 많았다.
그림에만 천재가 아니라 아름다운 여인들의 마음을 사로 잡는데도 그는 천재였다.
화가들은 스튜디오에서 매력적인 여자 누드 모델을 침대에 끌어들이려고 한다지만..
‘내가 바로 피카소요’라고 하면 여인들은 모두 그 앞에서 옷을 벗었다.
피카소 그림에는 여인 사타구니에 남자 머리가 얹혀져 있는 작품도 있다.(Two Figures and a Cat:1902)
같은 해에 그린 '고등어'(The Mackerel)에서는 피카소 자신이 고등어가 되기도 했다.
이것은 피카소가 얼마나 여인을 사랑했는 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다.
피카소는 남녀간 사랑의 성생활은 남자만의 일방적 배설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여인들에게 최대의 황홀감을 안겨 주려고 수고하는 일을 마다 하지 않았다.
그는 뜨거운 눈빛으로 상대방을 제압한 후..
정성을 다해 여인들의 육체에 ‘사랑’을 불어 넣었다.
그러면, 여인들은 전율을 느끼며 황홀해 했으며..
그제서야 진정한 여인으로 거듭났던 것이다.
글: 곽노은
*피카소는 생전에 5 만여점 정도의 작품(회화, 조각, 도자기, 판화, 스케치)들을 남겼다.
그의 작품들을 수집하다 보니,
단 한번의 포스팅으로 피카소를 말한다는 것은 불가능임을 깨달았다.
앞으로 몇번에 걸쳐 피카소의 작품들을 올릴지는 모르겠다.
첫번째로 ..
그의 여인들을 향한 뜨거운 정열을 폭팔시킨 작품들을 먼저 올린다.
Picas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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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stitutes in a Bar (1902)
몸 파는 여인들의 슬픔이..
그대로 등을 타고 눈물처럼 흘러 내린다.
*The Blue Room (1901)
*The Mackerel (1902)
21 살의 피카소는 자신을 고등어로 만들었다.
*Dutch Girl (1905)
*The Sculptor and His Statue (1933)
*Silenus Dancing in Company (1933)
*Sculptor and Kneeling Model (1933)
*‘아비뇽의 처녀들' Les Demoiselles d'Avignon (1907)
처음에는 관심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없어 이 작품은 작업실에 17 년 동안이나 묵혀두어야 했다.
여인들의 표정과 시선이 역겹다고 하여 구매자가 없었던 것.
화가 마티스도 ‘휘발유를 마신 듯 매스껍다’고 표현했을 정도.
지금은 엄청난 돈을 줘도 살 수 없는 피카소의 유명한 작품
*Great Reclining Nude: The Voyeurs (1955)
*The Artist and His Model (1964)
*Erotic Drawings 1968-1972
*Erotic Drawings 1968-1972
*Erotic Drawings 1968-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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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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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 - 1912
1912 - 1915
본명은 ‘마르셀 욍베르’(Marcelle Humbert)
사진을 보면 기모노 차림의 구엘은 매우 여성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당시 파리에는 일본출신 화가 ‘츠구하루 후지타’ (Leonard Tsuguharu Foujita)가 있었는데
그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30세의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사망했다.
구엘이 사망한 후 피카소는 2 년 동안이나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지 못했다.
이때는 피카소의 나이 34 ~ 36세 사이로 한참 피가 끓을 때 였지만
구엘을 잃은 슬픔이 컸다.
1917 - 1927
코클로바는 발레리나로 러시아 장군의 딸이었다.
호적상으로는 피카소의 첫번째 부인이다.
두사람 사이에 아들, 파울로(1921 - 1975)를 낳았다.
1927 - 1936
1936 - 1944
엘뤼아르도 피카소의 여인이었다.
누쉬 엘뤼아르는 피카소의 친구 ‘폴 엘뤼아르’(시인)의 부인.
하지만, 폴 엘뤼아르는 아내가 피카소와 함께 성적인 유대가 있는 것을 오히려 영예롭게 생각했다.
1943 - 1953
아들 ’클로드’(Claude: 1947 - )와 딸 ‘팔로마’(Paloma: 1949 -)를 낳았다.
피카소에게 버림받기 전, 먼저 그의 곁을 떠난 유일한 여인이다.
프랑스와에게 파라솔 우산을 받쳐 들고 가는 피카소의 유명한 사진.
1951 - 1953
라포르트 때문에 질로가 피카소 곁을 떠났다.
뒤에 있는 스케치는 피카소가 라포르트의 얼굴을 대강 그려 준 것으로
2005 년 6 월 575,357달러에 경매가 됐다.
당초 예상했던 가격의 3배 되는 가격이다.
이 작품외에도 라포르트는 몇개의 작품을 더 팔아 187 만 달러를 거머쥐었다.
1953 - 1973
뜨거운 남자피카소 |
*몽마르트 언덕에서 = 1904년 23세.
*1956년, 75세의 젊은이.
프랑스 여배우 ‘브리짓 바르도’(Brigitte Bardot)
브리짓이 피카소 ‘아뜰리에’에는 왜 갔을까.(1970 년)
‘내가 바로 피카소요’
http://blog.koreadaily.com/media.asp?med_usrid=nounkwak
<출처;kr.blog.yahoo.com/narah_kim>
출처 : | .. | 글쓴이 : 너와집나그네 원글보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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