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grade For You

조선 거상들의 특별한 이야기들

金 敬 峯 2010. 1. 13. 08:14

 

 

 

조선 거상들의 특별한 이야기들

- “정직한 신의가 없이는 큰돈을 모을 수 없는 법이야”

 

** 어느 시대에도 그 시대를 풍미한 큰 부자들이 있다. 조선 시대에도 큰 부를 축적한 부자들이 많았다. 보통 사람은 꿈도 못 꾸는 엄청난 부를 이룩한 사람들이다. 큰 부자는 하늘이 내리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자기 자신이 큰 부를 담을 그릇이 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남다른 집념, 신용, 끈기, 원대한 목표는 이들 부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별한 자질들이다. **

 

한 번 시작하면 포기하는 법이 없다.

이용익이 등짐장수로 3년 동안 떠돌 때였다. 원산이 개항되고 정식으로 외국과 무역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두만강 일대에 러시아의 석유와 성냥과 광목이 들어오고 있었다. 러시아 사람들은 무엇보다 금을 선호했다. 그러자 농민들은 가을걷이 추수가 끝나면 산으로 들어가 금을 캐곤 했다. 이용익도 소금장수로 몇 백 냥을 손에 쥐자 금광을 찾아 몇 번이고 산에 들어갔다. 금광을 찾아 몇 달씩 반미치광이가 되어 떠돌아다니던 이용익은 어느 산골 주막에 들렀다가 한 광부한테서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다. 단천 고불티 고개 아래에 있는 큰 금광이 얼마 전 폐광이 되어 버렸다는 소문이었다. 그 금광에서 세 사람이 죽었는데, 큰 구렁이가 날아와 사람의 목을 감아 죽였다는 것이다. 그 후로 아무도 그 광산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이용익은 자신이 한번 그 금광을 캐 보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도통 인부를 구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후한 삯을 준다고 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할 수 없이 솥 단지를 들고 혼자서 산에 올랐다. 컴컴한 광산에 들어가서 땅을 파고 들어갔다. 하지만 금맥도, 구렁이도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사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을 넘어섰다. 다섯 달이 흐르는 동안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했다. 아무래도 광산을 내려가야 할 것만 같았다. 내려가기 전날 그는 마지막 남은 백소주 한 병을 들이키고 광굴로 들어가 잠이 들었다. 그 날 밤 문득 깨어 물소리를 들었다. 물소리를 따라갔더니 누런 광석 줄기가 보였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확인했더니 그건 광맥이 아니라 평범한 광석에 불과했다. 그 날로 그는 산을 내려갔다. 그러나 그는 포기를 모르는 사나이였다. 그 해 겨울 동안 다시 보따리를 메고 장바닥을 떠돌며 등짐장수 노릇을 했다. 그리고 이듬해 4월 양식을 장만하고 다시 산에 올랐다. 그러나 그 해에도 금맥은 발견되지 않았고, 겨울이 다가오자 다시 산을 내려와야 했다. 겨우내 등짐장수를 해서 번 돈으로 산에 올라가 금맥을 찾는 일이 몇 차례나 반복되었다.

그 날도 그는 정과 망치를 손에 쥐고 금맥을 찾아 흙을 파헤치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구렁이 콧수염 같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용익은 죽자사자 그 곳을 망치로 강타했다. 그랬더니 암석이 깨지는 둔탁한 소리가 아니라 쨍 하는 금속성의 소리가 들려왔다. 마침내 금맥을 발견한 것이다. 정신없이 망치질을 한 그는 2관6돈쭝짜리 금덩이를 손에 쥐고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구렁이 광산에 도전한 지 4년 만의 개가였다.  어느 가난한 말장수의 아들로 태어난 이용익은 조선 거부가 되는 길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나중에 그가 큰 부자가 되어 은행에 예치한 36만 원은 땅 8만 마지기를 구입할 정도의 큰돈이었다고 한다. 만석꾼이 아니라 8만석꾼이었던 셈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신용은 지킨다.


1894년 청일 전쟁이 일어나자 이승훈이 운영하던 유기 공장도 완전히 폐허로 변해 버렸다. 값이 될 만한 놋쇠덩이는 다 도난 당했고, 상점마다 가득 쌓였던 제품도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당시 서른 한 살의 이승훈은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고 재기 불능 상태에서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은 것이라곤 오희순에게 진 산더미 같은 빚뿐이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오희순에게 돈을 빌려 장사를 했다. 하지만 대부분이 전쟁의 혼란 속에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하지만 이승훈은 장사꾼일수록 신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갚을 돈을 이자까지 세세하게 계산해서 명세서를 작성했다. 오씨를 찾아간 그는 자기가 빚진 내용을 분명히 해두려고 찾아왔노라고 하면서, 소매 속에 넣어 간 장기(帳記)를 내보였다.


'허어, 세상이 이렇게 되고는 날 찾아오는 사람이 없네. 나한테 빚을 지고는 자취를 감추거나 밤도망을 하여 발길을 끊었지.' '….' '그래, 자네는 내 빚을 갚을 생각인가?' '갚아야지요.' 이승훈은 정색하고 오희순 영감을 바라보았다. 오희순은 그가 내미는 장기를 보고, 그 기재가 상세한 데 놀랐다. 그는 그 장기를 훑어 나가다가 그만 덮어 버렸다. '내 돈을 가져다가 장사하는 사람이 수십 명이 넘는데 이번 난리 뒤로 모두 숨어 버리고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거든. 그런데 자네는 날 다시 찾아준 것만도 고마운데 이렇게 장기까지 소상히 뽑아 왔으니, 장사하는 사람은 이래야 쓰는 법이야. 장사하는 사람일수록, 또 세상이 어려워질수록 신의를 지키는 마음이 있어야 하거든. 그렇게 정직한 신의가 없이는 큰돈을 모을 수 없는 법이야.' 그러더니 오씨는 반상에 놓여 있는 벼루를 끌어당겨 붓에 듬뿍 먹을 찍더니, 이승훈이 내민 장기 위에 열십 자로 가위표를 죽죽 그어 버렸다.

'이제 이것은 지난 일이니 다시 볼 것 없네.' 이제까지 이승훈이 진 빚을 모두 탕감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오희순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도 지금이야 난리 끝이라 이러네만, 좀 지나면 돈이 풀릴 걸세. 자네가 다시 장사를 시작하려면 자금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어려워 말고 필요한 대로 내게 와서 말하게. 내가 힘닿는 데까지 빌려줌세.' 오희순의 도움으로 이승훈은 주저앉은 사업을 신속하게 일으킬 수 있었다. 경쟁자들은 자금 부족으로 재기할 엄두도 내지 못할 때, 이승훈은 평안도 거부 오희순의 자금을 독점하다시피 끌어다 써서 납청정 유기 공장을 다시 일으켰던 것이다.

 

재물보다 사람을 남겨라.

이덕유가 사신 행차를 따라 청나라로 장사를 떠났을 때였다. 요동 벌판을 지나고 있는데 그 때 한 무리의 군사와 사형수가 지나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죄수는 계속 호송 병정에게 물을 달라고 사정하고 있었다.  '제발 한 모금만 주시오!' '금방 댕강 하고 목이 잘릴 놈인데 목구멍에 물은 넣어서 뭘 해?'
'여보, 나으리! 내가 물을 먹고자 하는 것은 목마른 고통을 참지 못해서가 아니오. 비록 저세상으로 갈망정 내 몸을 함부로 다루고 싶지 않아서 물을 찾는 거요!' '그 몸은 왜 그렇게 위해야 하느냐?'
'내 몸뚱이는 내 아버지께서 끼쳐 지어 주신 것이오. 그러니 얼마 후에 비록 내 목숨이 끊길망정 소홀하게 함부로 다룰 수가 없는 것이오. 그래서 오늘 아침에도 난 세수를 하고 머리를 깨끗이 감고 싶다고 말한 것이오.'

이 말을 들은 이덕유는 무엇인가에 뒤통수를 탁 얻어맞는 것 같았다.
'저런 사람이 죄인일 리가 없다. 사람의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고 있는 것인데 목숨은 한 번 없어지면 그만 아닌가? 의기 있는 사람이라면 저걸 보고 어찌 그냥 지나칠 수가 있는가?'
그 죄인은 '천금사죄인(千金赦罪人)'이어서 돈 천 냥을 내주어야 방면이 가능했다. 이덕유는 선뜻 천금에 상당하는 인삼을 그 군사들에게 내주었다. 그러자 같이 온 동료가 크게 놀랐다.
'여보게! 지금 뭐 하는 짓인가! 생면부지 타국 사람에게 천금 인삼 적선이라니, 미쳤는가?'
'돈보다는 사람을 얻으라는 말이 있네. 저 사람 목숨은 왠지 천금보다 더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드네.'

그러면서 이덕유는 총총히 사신 행차의 뒤를 따라 먼저 말을 달렸다.  그리고 20년이 흘렀다. 이덕유가 오랜만에 동지사를 따라 청나라에 들어가려고 요동 땅을 지날 때였다. 강가에 있는 여각(旅閣)에서 웬 청국인 하나가 일행 앞에 다가와 이덕유를 찾는 것이었다. 이덕유가 나타나자 그는 감격하여 외쳤다. '은인께서는 제 얼굴을 모르실지 모르지만, 저는 은인 때문에 목숨을 건졌던 사형수 장가(張歌)올시다!' 그는 이덕유를 찾으려고 3년 전부터 그 곳에 주막을 차려 놓고, 조선에서 사신들이 들어올 때마다 수소문을 하는 중이었다.

그 사형수는 이덕유의 도움으로 풀려났는데, 마침 진짜 범인이 잡히게 되어 벌금으로 낸 천금을 되찾게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덕유를 찾을 길이 없었다. 그러자 그 돈을 그냥 갖고 있지 않고, 밭을 사고 소작을 쳐서 재산을 늘렸다. 그 결과 대장전(大庄田)을 이룬 것이다. 그는 이덕유를 집으로 인도하고는 방대한 토지 문서를 선뜻 내놓았다. 그러고는 그 해에 추수해 들이는 만석을 돌아가는 길에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그로부터 이덕유의 재산은 엄청나게 팽창하게 된다. 당시 청나라 상인들은 이덕유가 발행하는 어음을 고종 황제가 발행하는 어음보다 더 신뢰했다고 한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지략가

청년 무역가 김기덕은 연해주 무역을 하면서 루블화의 가치가 상승하는 현상을 보았다. 그는 재빨리 국내로 들어와 당시 함경도 지방에 유통되던 루블화를 최대한 끌어 모았다. 하지만 상황은 좋지 않았다. 러시아에서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 화폐 개혁이 단행되었고, 루블화의 가치는 형편없이 하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스물 여섯이었던 김기덕은 완전히 망하고 말았다. 사업 자금이 없으니 재기할 방법이 막연했다. 그런데 다행히 부인이 그 동안 만약을 대비해 꽤 많은 금붙이를 모아 두고 있었다. 그걸 다 처분하니 1만 원이 되었다. 김기덕은 그 돈으로 사업을 시작하지 않았다. 대신 그 돈을 모두 털어 괘종시계를 하나 만들고 그 추를 순금으로 제작했다. 그리고 그 시계를 들고 상경하여 총독부 국장을 만났다. 술을 잔뜩 얻어 마시고는 그 집 부인에게 평범한 벽시계 하나를 선물로 바치고 왔다.

그 이튿날. 김기덕이 묵고 있는 여관으로 갑자기 총독부 국장이 전화를 걸어 크게 화를 냈다.
'이게 무슨 짓인가?' '무슨 짓이라니' 자네와는 오랜 친구요, 그 동안 신세도 많이 져서리 벽시계 하나쯤 선물했는데 왜 그럼둥?' 김기덕은 시침을 뚝 뗐다. '자네, 그거 참말인가?' '내가 언제 한 입으로 두 말 했음둥?' '시계추가 순금덩이가 아닌가?' '그것이 순금덩이가 아니라 내 불알덩임매.' '뭐라고?'
'내 불알을 떼어서리 그 벽시계의 추를 만들었지비!' 국장은 그제서야 말뜻을 알아들었다. 한 사나이가 자기 몸뚱이 전체를 걸고 도박을 해온 것이다.  '김군, 잘 알았네. 한번 단둘이 만나세.' '고맙슴매!'

이렇게 단독 담판을 짓는 데 성공했고, 김기덕은 그 총독부 국장의 보증으로 조선은행에서 50만 원을 융자받는 데 성공했다. 1920년대만 해도 조선 사람으로서 한 번에 50만 원이란 거액을 조선은행에서 융자받는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 공공 사업체도 아니고, 한 개인 사업가가 재산을 담보로 50만 원을 빼내자 세상은 깜짝 놀랐다. 그 50만 원으로 김기덕은 여러 가지 사업을 벌였다. 먼저 공동무역상사를 확대해서 큰 무역 상사로 키웠다. 그리고 회령에 백산상점을 열어 목재업, 물화 수집업을 경영했다. 무산에는 목재 회사를 설립했고, 청진에는 수남제재소를 만들었다. 연해주'회령'무산'청진 일대를 주름잡으면서 무역과 함께 주업인 목재에 손을 댄 것이다. 그리하여 루블화로 망했던 김기덕은 불과 5년도 못 되어 보기 좋게 재기했다.

 

뜻을 크게 세운다

이경봉은 청심보명단이라는 약으로 큰돈을 번 거상이다. 그는 여남은 살 때부터 형 밑에서 약방 심부름을 하다가, 열 대여섯 살이 되자 약 봉지를 들고 떠돌아다녔다. 약 봉지를 차고 거리에서 거리로, 이 마을에서 저 장터로 헤매던 어린 시절, 아무리 청심보명단을 외쳐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약장사를 하기에는 너무도 어렸던 탓이다. 아무래도 약을 팔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시골 주막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석양 무렵, 토방에 앉아 빨간 저녁놀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눈앞으로 무엇인가 검은 것이 공중에서 툭 떨어지는 것이었다. 왕거미 한 마리였다.

그 거미는 집을 지을 모양이었다. 꽁무니에서 실을 내 공중으로 그네 뛰듯 몸뚱이를 날려 벽에 붙었다가, 다시 그 줄을 타고 올라가 건너 벽으로 몸뚱이를 날려 다시 줄을 치고, 또 가로 세로로 튼튼한 씨줄 날줄을 부착해 놓는 것이었다. 얼핏 보면 집을 짓는 것인지, 공연히 서까래에서 벽 사이로 왔다갔다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거미는 제 머리통의 백 배나 되는 큰 배통을 안고 실을 내어 차곡차곡 그물을 늘려 가고 있었다. 처음 줄을 내리고 그 줄을 두 번 세 번 왕복하면서 튼튼하게 만들어 놓고 있었다. 그리고 완성된 집에 날파리나 모기 따위가 달라붙으면 쏜살같이 달려나와 그 먹이를 꽁꽁 묶어 버리는 것이었다.  이경봉은 그 모습을 보면서 거미의 계획과 꾀에 탄복하고 자기도 그렇게 계획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원하는 것을 향해 단기, 중기, 장기의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그 때 세운 미래의 꿈은 그가 거상이 되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

글_이원호(ejcoss@dreamwiz.com)
참고 도서 : 조선거상(이용선, 동서문화사)
출처 : 월간 석세스파트너

 
옮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