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SF문학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 <로봇의 별> - 동화작가 이현 인터뷰
이보람<tokki@libro.co.kr> ㅣ 2010-04-01
어릴 적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를 보면서 미래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한창 키워가던 그 시절 저는 미래에 대한 기대보다는 두려움과 불안함을 더 많이 가지고 살았습니다. 외국에 나가는 것 조차 상상하기 힘들었던 그 시절, 공기도 없고 생명체도 없는 우주에 나간다는 것은 설렌다기보다는 무서웠고, 고철덩어리로 만들어진 로봇이 사람 행세를 하며 나 대신 일을 하고 나의 시중을 들어줄 거라는 편리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원더키디에 등장하는 무서운 로봇들이 자꾸만 떠올랐거든요. 만화영화를 보며 그렇게 멀게만 느껴졌던 2020년도 이제는 겨우 10년밖에 남지 않았고, 우리 나라에서도 공개적으로 우주인을 선발해 우주에 다녀오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생활 필수품이 되어 버린 청소기며 에어컨 광고에서는 ‘사람을 사랑하게 된 에어컨’이라는 카피를 내세우며 인공지능 기능을 부각해 광고를 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로봇을 개발해 유치원에 도입하겠다는 내용의 뉴스도 들렸는데요.
2020년이 아니라 2200년을 상상해야 할 지금, 사람처럼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을 내리고 사람의 감정을 가진 로봇들과 정말 함께 살아가게 될 지도 모를 우리의 22세기의 모습은 과연 어떨까요? 로봇과 인간이 공존하는 22세기, 로봇을 지배하려는 인간과 그에 맞서서 반대로 인간을 지배하려는 로봇들 사이에서 로봇으로서의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찾고 진정한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로봇과 인간이 모두 평등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현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어린이 로봇 나로와 아라, 네다의 이야기로 돌아온 이현 작가를 만나보았습니다. 국내 최초 본격 SF 동화를 탄생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는 이현 작가의 <로봇의 별>과 작가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동화 <짜장면 불어요>, <장수 만세> 그리고 <우리들의 스캔들>, <영두의 우연한 현실> 등의 청소년소설로 익숙한 이현 작가가 전혀 예상하지 못 했던 새로운 장르인 ‘SF동화’로 돌아왔습니다. 기존의 작품들에서 워낙 아이들의 소소한 마음과 일상의 감정들을 세심하게 잘 들여다 봐줘서인지 생활 동화가 아닌 다른 장르로, 더욱이 SF 동화라는 낯선 장르로 신작을 출간하셨다는 점에 많은 독자들이 깜짝 놀랐을 거예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단편집 <짜장면 불어요>의 맨 마지막 작품 <지구는 잘 있지?>에서도 ‘상대성 이론’이라는 과학적 지식을 근거로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거침없는 상상력으로 보여줬었는데요. 이번 <로봇의 별>은 자그마치 3권의 분량의 장편 동화 속에서 온갖 첨단 과학기술이 나오는 22세기를 바탕으로 그리고 있어 동화의 내용뿐 아니라, 과학적인 지식의 무게도 만만치 않았는데요. 평소에도 과학 분야에 관심이 많으셨냐고 가볍게 묻는 부커스의 질문에 전혀 예상하지 못 했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제가 SF 동화를 쓰기 시작하면서 한국 과학 교육에 관해서 통탄을 했었어요. 사실 제가 학교 다닐 때 과학을 정말 너무너무 싫어하고 너무너무 못 했던 사람이에요. 단 한번도 재미있었던 기억이 없거든요. 사실 <지구는 잘 있지?>는 짜장면 불어요 속 단편들 중 가장 마지막에 쓴 단편이에요. 사실 <지구는 잘 있지?>가 들어가지 않아도 책 한 권의 분량 상으로는 괜찮았거든요. 그런데 좀 답답한 생각이 들더라구요. 학교, 집, 친구 아니면 가족. 아이들에게 읽게 해야 하는 이야기들이 너무 제한적이고 한정적인 것 같아서, 동화라는 것은 좀더 넓게 가서 더 많은 것을 다뤄줄 수도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뭘 좀 해볼까 고민하다가 우주 이야기, SF 이야기를 좀 해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구는 잘 있지?>를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아인슈타인이 똑똑한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 전까지는 남들이 다 아는 그냥 유명한 사람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거든요. 제가 직접 공부를 해보니까 너무너무 어려웠는데 그 속에서 과학, 특히 우주와 관련한 내용 속에는 어려운 이론과 함께 상상력의 문제가 담겨 있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그때부터 우주나 과학에 대한 책을 흥미 있게 보기 시작했고, 그러다보니 과학은 상상력이고, 굉장히 창의적인 발상을 가지고 있고, 철학적이기도 하고 … 그런데 그런 과학을 우리가 잘못 배웠구나. 수치를 외우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는데 …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는 것이고, 또 상상력에는 상상력이 담겨 있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작품을 준비하면서 과학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 경우지요.”
“이번 <로봇의 별>을 쓰면서는 일반 대중들에게도 익숙한 영화나 책들, 예를 들면 아이로봇이라든지 … 그런 것들을 많이 참고 했어요. 로봇에 대해 다루고 있는 외국 다큐도 많이 봤구요. 생각만큼 로봇을 다루고 있는 자료들이 많지 않았는데 제 생각에는 실제로 지금 인공지능 로봇이 가고 있는 정도에 비하면 아직도 문화가 못 따라 잡는 부분이 조금 있는 것 같아요. 쓰면서 어려웠던 점은 자료의 문제나 어려운 과학 이론, 이런 것보다는 앞으로 상상력의 문제였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헉슬리의 <위대한 신세계>를 보면 그 시대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시험관 아이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잖아요. 그렇게 엄청난 것을 생각해 냈음에도 불구하고 그 소설에서는 컴퓨터가 없어요. 등장인물들이 모두 필기하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타임머신이 등장하는 미래를 다루면서도 핸드폰을 생각하지 못 해 전화를 받기 위해 쩔쩔매다 사고를 당하는 이야기의 SF 소설도 있구요. 사실 그런 면에서는 조금 걱정이 됐어요. 그런데 그냥 그 작품들을 읽으면서 이 작품을 또 하나의 세계로 보고 유전공학은 발달이 되었지만 컴퓨터는 없는 그냥 그런 세계로, 그 세계 안에서의 완결성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추스리면서 저도 이야기를 계속 풀어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저도 이 이야기가 이렇게 3권의 분량이 될 만큼 길게 갈 거라는 생각은 못 했었어요. 1권까지만 쓰고 이야기를 끝내려고 했는데 끝내고 다시 읽어보니, ‘뭐야, 이야기가 이제 시작이잖아.’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시작한 이야기를 마무리 짓다 보니 3권까지 길게 간 것 같아요.
2권의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많이 무거워서 톤을 밝게 해 보려고 정말 애를 많이 썼는데 2권을 끌고 가는 아라의 성격이나 환경, 조건들이 워낙 힘들고 무거워서 그런지 잘 안 되더라고요. 나로, 아라, 네다 똑 같은 쌍둥이들이지만 성격은 각각 다르잖아요. 나로는 사랑을 많이 받으면서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자랐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고 다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아라는 복종적이고 종속적으로 자랄 수 밖에 없었던 환경이 있었지만 그게 또 나쁜 것만은 아니구요. 성장하는 과정에서 각각 자기만의 독특한 성격들이 형성되는 건데 그런 점들을 생각해 보고 싶었어요. 환경이나 자신의 기본 성향이나 많은 것들이 있지만 자신이 처한 조건들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변해가는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22세기의 미래 사회에서는 로봇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큰 변화가 있습니다. 알파인, 베타인, 감마인, 델타인. 지구와 달, 그리고 화성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책임지수에 따라 저렇게 네 등급으로 나뉘고, 책임지수는 경제적인 능력에 따라 결정이 되는데요. 알파인과 베타인은 하늘 도시에서 살며 병원과 학교를 비롯한 모든 생활을 누리고 살지만, 감마인과 델타인은 그럴만한 돈이 없어서 아파도 치료를 받을 수 없고,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누리지 못 한 채 살아갑니다.
“책이 나오고 언론이나 기사들을 찾아보니 “현실 사회에 대한 비판”이라는 식으로 많이 봐주셨더라구요. 그런 면도 없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사실 제가 지금 사회가 이런 것을 여기서 그리겠어. 하고 작심을 했던 것은 아니고, 지금 돌아가고 있는 세상. 제가 10대 때 다르고, 20대 때 다르고, 30대 때 다르던 이 세상의 변화에 대해서, 그리고 그 변화를 지켜본 입장에서 상상해볼 수 있는 미래에 대해 다룬 거구요,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는 미래의 여러 가지 모습 중에 저는 가장 부정적인 모습을 이 책에서 배경으로 깔아 둔거죠.”
배경이 이렇다보니 오히려 과학 기술의 발전, 인공지능 로봇들의 등장들의 소식들이 반갑지만은 않고 여전히 기대보다는 걱정과 불안감이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동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한 가지 희망은 로봇과 과학 기술들이 판을 치는 차가운 미래 현실 속에서도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모두 따뜻한 마음과 진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이를 돌보며 가사일을 돕는 가사도우미 로봇 현주씨는 자신이 돌보는 아이들의 기억을 모두 포맷시키고 팔아버리겠다는 말에 로봇의 3원칙을 지우고 로봇의 별로 탈출을 시도하다가 결국 자살까지 하고, 나로는 엄마를 구하기 위해, 네다는 그림자 마을의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온갖 위험에도 굴하지 않고 모험을 강행하지요.
“로봇이 우리 인간보다 우월할지 안 할지, 그런 것은 아직 겪어보지 않은 일이고 판단하기도 아직은 섣부른 일 같아요. 아직은 IT 기술이 발달하고 발전한다는 이야기에 기대를 하는 것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움찔움찔하는 것들이 더 큰 것 같기도 하구요. 그런데 저는 로봇 관련 다큐멘터리 등을 보면서 인공지능 로봇, 뭐든지 이렇게 다 할 수 있고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로봇이 우리 인간들에게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해도 이미 막을 수 있는 단계는 넘어 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동차를 이제부터 다 같이 쓰지 말자 라고 한다고 해서 안 쓸 수 있는 세상은 아니잖아요. 실제로 2030년 정도면 이 책에 나오는 현주씨 로봇 정도는 아니어도 일상의 모든 생활을 도울 수 있는 가사도우미 정도의 로봇이 상용화 될 거라는 학자들의 예측도 나왔는데요. 컴퓨터나 핸드폰이 퍼지던 속도를 생각해보면 더 빠를 수도 있는 거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제가 가장 부정적인 경우로 그려낸 이 <로봇의 별> 같은 상황이 와서는 안 되는 거잖아요. 그러려면 저는 로봇이 기계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고 없고 이런 것을 떠나서, 로봇이든 인간이든 뭐든 간에 우리가 무엇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우리가 지켜야 할 게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결국 책임지수등급을 없애고 로봇도 인간처럼 존중 받는 사회를 꿈꾸며 이야기는 마무리 되는데요. 과연 이현 작가가 바라는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런 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우리 아이들에게 바라는 점은 또 무엇일까요?
인터뷰를 마무리 지으며 내용도 내용이지만, 무엇보다 소재와 주제 면에서 기존의 비슷비슷하던 생활 동화에서 벗어난 새로운 장르의 동화가 나왔다는 점이 무척이나 반가웠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작가님도 새로운 형식의 다양한 동화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며 활짝 웃으셨어요.
“내 맘대로 지은 용어로 ‘Out Door 동화’가 급히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소설도, 다른 문학 장르도 그렇지만 특히 동화는 상상력의 제한을 두지 않고 더 많이 더 넓게 뻗어나갈 수 있는 장르인데, 생활 동화나 리얼리즘 동화 역시 큰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제외한 주제를 가진 동화들이 너무 없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서요. 더욱이 이런 SF 동화는 국내는 물론 번역물로도 많지 않거든요. 하지만 아이들은 과학 정말 좋아하고, 어린이 과학잡지들에 실린 짤막한 글들도 참 좋아하는데 우리 동화 시장에서는 계속 현실 얘기만 하고 있다는 게 답답했어요.”
더 많은 주제의 더 많은 상상력을 발휘한 동화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이현 작가. 적어도 SF, 과학을 다룬 동화의 영역에서는 이현 작가님의 <로봇의 별>로 한 단계 더 넓어진 것 같은데요. 다음에 준비하고 계신 작품 계획을 슬쩍 여쭤본 말에 싫증을 잘 내는 성격 탓에 당분간 SF 동화는 쓰지 않을 것 같다고 웃으며 말씀하시며 요즘은 우리 역사와 신화의 매력에 푹 빠져 계시다는 귀띔을 해 주시네요. 스타일을 예측할 수 없는 이현 작가만의 개성 넘치는 역사 동화, 혹은 신화를 바탕으로 한 판타지 동화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덧붙임>
“쿨함”
동화 작가에게 이런 표현이 어울리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현 작가님의 동화책을 읽으면서 늘 생각했던 단어였습니다. 늘 자신이 처한 현실 앞에서 당당하고, 누구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당찬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들에서 느꼈던 이미지였지요. 직접 만나서 인터뷰에 응해 주시는 작가님과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제 마음 속 이미지는 더욱 굳어졌습니다. 인터뷰를 하기로 하고 처음 작가님께 전화를 드렸을 때 너무나 흥겨운 크라잉 넛의 음악이 신호음이 들려 조금은 낯설었던 마음도 작가님을 뵙고 나니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졌고, 신곡을 좋아하고 노래방에 가는 게 취미라고 말씀하시는 모습도 너무나 익숙하게 느껴져 좋았습니다. 제주도에서 올라오시자마자 집에도 들리지 못 하시고 바로 인터뷰에 응해주신 작가님께 다시 한번 감사하다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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