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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털터리 청년은 어떻게 스타벅스 제치고 ‘커피왕’이 되었을까

金 敬 峯 2012. 2. 2. 13:54

[나의 꿈 나의 인생]

빈털터리 청년은 어떻게 스타벅스 제치고 ‘커피왕’이 되었을까

카페베네 대표이사 김선권

1993년 경기도 동두천의 어느 지하 셋방. 스물 여섯 살의 김선권이 울고 있었다. 친한 선배와 손잡고 시작했던 호프집이 1년도 되지 않아 폭삭 망하고 난 뒤였다. 여기저기서 꾼 돈은 어떻게 갚을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실패가 가져다준 좌절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우리 집은 왜 이리 가난할까, 난 왜 지지리도 운이 없을까… 원망과 후회가 처절한 울음과 뒤섞였다.

그로부터 18년. 방바닥을 치며 통곡하던 그때의 김선권은 지금 ‘커피왕’이라 불린다. 그가 만든 커피 프랜차이즈 카페베네는 전국에 600개가 넘는 매장을 거느리며 ‘살아 있는 신화’가 됐다. 스타벅스, 커피빈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브랜드를 제치더니 이제는 미국 심장부 뉴욕으로 가겠다고 나섰다.

그는 그토록 극심한 좌절을 어떻게 딛고 일어났을까. 맨주먹으로 성공한다는 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긴 장마가 끝나고 하늘이 활짝 갠 날, 그 ‘미스터리’를 풀겠다는 마음으로 서울 청담동 집무실을 찾았다. 카페베네 한쪽을 떼어다 놓은 듯한 방에서 커피 향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띤 김 대표가 기자를 맞이했다.


“부잣집 도련님 출신일 거라고 생각하는 이가 많더라고요. 부모 도움 받아 카페 차려서 용케 성공했나보다, 짐작하는 것 같아요. ‘나와 다른 세상에서 사는 사람’이라고 보는 경우도 많아요.

그럴 때면 난감하죠. 사실이 아니니까. 오히려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어요. 실패와 좌절도 많이 겪었지요. 나를 키운 건 8할이 가난과 결핍 아니었나 싶습니다.”

뜻밖의 고백이 아닐 수 없다. 요즘 가장 ‘핫(hot)’한 커피 전문점 브랜드의 CEO가 가난과 결핍을 논하다니. 고생을 몰랐을 것 같은 얼굴을 보면 더욱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의문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어릴 때 친구들이 그럽니다. 너는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너무나 평범한 아이였는데 어떻게 성공을 했는지 참 신기하다고. 운이 좋았다고 대답합니다. 단순히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에요.

여기서 중요한 건 ‘어떻게 하면 운이 좋을 수 있는가’입니다. 가만히 있는 사람이 운 좋은 경우는 거의 없어요. 운은 스스로가 만드는 겁니다.”

그의 표현으로 ‘운이 좋았다’는 카페베네는 2008년 4월 서울 천호동에 1호점을 연 뒤 3년여 만에 600호점을 돌파하며 거침없이 성장 중이다. 지난 한 해 동안만 330개 가맹점이 오픈하는 놀라운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거의 매일 새 가맹점이 생겨난 셈이다. 스타벅스, 커피빈 등 한국에 서양 커피 문화를 심은 글로벌 브랜드와의 격차는 200개 점 이상으로 벌어졌다. 올해 예상 매출은 2000억 원. 이쯤 되면 그가 말하는 ‘운’은 ‘천운’을 넘어 ‘우주운’ 급이다.

카페베네는 20대와의 교류에 관심이 많다. 매년 인도네시아 커피 재배지로 떠나는 청년봉사단은 인기만점 대외활동으로 자리를 잡았다. 김선권 대표도 함께 떠나 팔을 걷어부쳤다.


실패자에서 성공의 아이콘으로

그는 전남 장성에서 9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버스에서 내려 또 30분을 걸어야 다다르는 깡촌이었다. 여덟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모진 고생을 하던 어머니를 본 소년은 ‘돈 많이 버는 사장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군 제대 후 호기롭게 도전한 첫 사업은 호프집이었다. 처음에는 잘되는가 싶더니 채 1년을 넘기지 못했다. 빚까지 안고 보니 그 충격을 감당하기 더 힘들었다. 가난한 집안 때문에 자신이 실패한 양 원망이 사무쳤다.

죽고 싶은 마음만 하루에 열두 번씩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골집 마루에서 큰 깨우침을 얻었다. “남 탓만 하고 있었구나. 문제는 나 자신인데.” 땡볕 아래서 밭일을 하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다가 문득 ‘대발견’을 한 것이다.

“모든 일은 ‘내 탓’이란 걸 그때 안 겁니다. 언제나 남이 아니라 내가 문제였던 거예요. 실패도 내 책임인 것을 남 탓, 환경 탓만 하다 보니 수습을 못한 거죠. 그걸 깨닫고 나니 나를 둘러싼 세상이 달라지고 어쩐 일인지 자신감이 붙더군요. 뇌구조가 바뀌는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처절한 실패 후 그에게 첫 번째 ‘운’이 찾아왔다. 적은 자본으로 쏠쏠한 수익을 올리는 동네 전자오락실이 눈에 들어온 것. 곧장 오락기계 중개상이 모여 있는 청계천으로 달려갔다. 내친 김에 일본으로 가 게임기 시장을 샅샅이 훑었다. 연인들이 함께 즐기는 쾌적한 오락실을 한국에 들여오고 싶었다.

1997년 게임장 프랜차이즈 ‘화성침공’이 그렇게 시작됐다. 온 세상이 외환위기로 주저앉았지만 게임장만은 승승장구했다. 경기에 별 영향을 받지 않는 어린이, 청소년이 주 고객인 데다 100% 현금 수입이라는 점에 전국 A급 상권 건물주들이 열광했다. 순식간에 가맹점 300개를 열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프랜차이즈 사업의 매력을 알게 됐다. 가맹점주와의 소통, 함께 돈 버는 상생의 기쁨을 맛본 것이다. 물론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잘못된 출점 전략으로 문을 닫는 가맹점주를 보면서 입지, 자본, 마케팅의 중요성을 배웠다. 그저 부자가 되고 싶다며 돌진하던 애송이 사업가가 ‘프랜차이즈 기업가’로 환골탈태하는 순간이었다.


멈추지 않는 도전과 ‘괴력’의 성장

그는 무엇에 만족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늘 도전할 대상을 찾아나선다. 게임장 프랜차이즈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외식업 프랜차이즈로 눈을 돌린 것도 멈추지 않는 근성 때문이었다.

잘 굴러가던 게임장 사업을 스스로 접고 삼겹살을 거쳐 감자탕 프랜차이즈에 안착했다. 이 과정에서 외식 프랜차이즈의 ABC를 낱낱이 경험했다. 크고 작은 굴곡이 있긴 했지만 여전히 ‘운’은 그의 곁에 잘 붙어 있었다.

감자탕 사업이 안정 궤도에 오른 2008년 봄, 그는 또 한 번의 도전을 결심한다. 바로 카페베네. 처음 그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한식보다 훨씬 단순한 시스템이었다.

“감자탕은 준비할 게 얼마나 많습니까. 고기 핏물 빼고 김치 담그고… 음식이 조금만 늦어도 고객 불만이 생기죠. 이에 비해 커피는 아주 간단하더군요. 인건비 부담 적고 준비할 것도 적고. 게다가 손님이 직접 챙기는 셀프서비스인데도 가게 분위기가 아주 좋죠. 내 눈엔 매력 만점이었어요.”

하지만 아무리 매력적인 아이템이라도 누구나 성공하진 못하는 법. 게다가 글로벌 브랜드들이 시장을 장악하던 때였다.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를 말렸다.

“대기업들이 속속 커피 시장에 뛰어들던 때였어요. 후발 주자인 데다 별 볼일 없는 조그만 기업이니 당연히 불안했겠죠. 매장이 16개일 때 배우 한예슬을 등장시켜 광고를 시작했는데, 그걸 보고 한 기업의 CEO가 ‘6개월 이상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했대요. 가맹점 50개 이상 하면 손에 장을 지진다는 소리도 들었죠.”

하지만 불과 3년여가 지난 지금, 카페베네는 모든 부정적 예상을 잠재우고 독보적인 1위가 됐다. 2009년 223억 원이었던 매출은 2010년 1000억 원을 넘어서 348% 성장했다. 도대체 이 ‘괴력’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연예인 마케팅, 인테리어 디자인 등 성공 요소로 많은 것을 꼽더군요. 모두 맞는 말입니다. 특히 한예슬 씨의 공이 크죠. 그렇게 인기 많은 배우인지 몰랐어요.(웃음) 여기에 젤라또와 와플을 내세운 차별화된 메뉴, 365일 고객과의 소통도 큰 역할을 했어요. 드라마 PPL은 커피를 낯설어하는 50대 이상 고객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계기가 됐죠. 대기업에선 불가능한 스피드 경영도 빼놓을 수 없고요.”

특히 그는 공모전을 좋아한다.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사내 공모전,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아이디어 공모전을 수시로 연다. 매일 올라오는 고객 의견은 1주일에 한 번씩 모아서 꼼꼼하게 읽는다. 물론 피드백도 확실하다. 빠른 결정과 실행, 그리고 직원·고객과의 소통은 카페베네를 살찌우는 밑거름이 됐다.

꿈에 진실하면 못 이룰 것 없더라

지난 7월 15일 서울 코엑스에서 김선권 대표의 강연회 토종 브랜드, 세계를 공략하다가 열렸다. 6000여명의 신청자 중 500명이 초대된 이 자리에서 그는 자신의 사업 스토리를 솔직하게 공개, 큰 박수를 받았다.

이제 그의 눈은 세계시장을 향하고 있다. 우선 연말 안에 미국 뉴욕 한복판 타임스퀘어에 해외 1호점을 낼 계획이다. 점포 계약, 채용 등을 직접 챙기며 전력투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주변 반응이 썩 좋지만은 않다. 초기 투자 규모만 200만 달러에 달하는 대형 프로젝트이기 때문. 물론 김 대표는 자신만만이다.

“왜 하필 스타벅스가 거리마다 깔린 뉴욕이냐고 걱정하는 이가 많아요. 교민들도 타임스퀘어에 200평 점포는 너무 크다고 입을 모읍니다. 하지만 스타벅스처럼 50평을 하자면 무슨 경쟁력이 있겠어요? 규모의 경쟁도 필요합니다. 맨해튼, 꼭 잡겠습니다!”

글로벌 커피 브랜드를 꿈꾸는 김 대표에게 ‘창업을 준비하는 후배에게 주는 한마디’를 청했다. 그는 “네 꿈에 진실하라”고 말했다. 자신이 가진 꿈을 이루기 위해 진심을 다해 노력하라는 의미다. 결국 그가 말하는 ‘운’은 진심을 다하는 노력의 결과인 셈.

“꿈은 머리로 생각만 해선 이뤄지지 않아요. 모든 것을 집중해서 꿈을 향해 달려야만 이뤄집니다. 자신이 처한 환경을 원망하지 마세요. 김선권도 하지 않았습니까. 결핍을 탓하지 말고 성공의 원동력으로 삼아 보세요. 그러면 운은 절대 그냥 지나가지 않습니다.”


김선권 대표가 밝히는 ‘세 가지 비밀병기’


지난 7월 15일 서울 코엑스에서 김선권 대표의 생애 첫 공개 강연회가 열렸다. 사전 신청자 6000여 명 가운데 500여 명이 초대된 자리였다. ‘토종 브랜드, 세계를 공략하다’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그는 세 가지 ‘경쟁력의 원천’을 공개했다. 그는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행운을 놓치지 않기 위해 늘 하고 있는 것”이라며 “운도 준비된 이에게 열린다”고 말했다.

책 발췌 내용을 녹음한 육성 테이프

책을 읽다가 꼭 기억하고 싶은 구절을 녹음하기 시작한 게 벌써 8년째. 주로 심리학, 경영학 관련 책에 나오는 금과옥조들이다. 육성으로 녹음하고 뒤에 다시 들어보며 편집을 한 후 자동차, 집무실에서 틈틈이 반복해서 듣는다.

중간중간 ‘늘 조심하라고!’와 같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경고가 함께 녹음돼 있어서 여러 번 들어도 귀에 쏙쏙 들어온다고. 김 대표는 “이 덕분에 어려운 상황도 충분히 돌파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면서 효과를 강조했다.

‘나의 다짐’ 액자

김 대표의 책상, 침대 머리맡에는 똑같은 내용의 ‘나의 다짐’이라는 액자가 놓여 있다. 가슴 속 지갑에도 들어 있다. 내용은 이렇다. ‘나는 항상 따뜻한 마음으로 파트너를 대한다. 정도를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

경영자로서 늘 새겨야 할 다짐을 적어놓은 것이다. 이 다짐은 평상시에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필요할 때는 큰 글씨로 뇌리에 파고든다고.

“이 액자가 나에게 기준을 정해줍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가르쳐주는 등대라고 할까요. 필요할 때마다 업그레이드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우리는 1등입니다. 3등처럼 노력하겠습니다’

초창기 때 카페베네는 여지없는 꼴찌였다. 그런데도 매일 직원들이 모여 “우리는 1등입니다”라고 외쳤다. 3년이 지나 진짜 1등이 되자 이 구호에 “3등처럼 노력하겠습니다”라는 문장을 더했다.

김 대표는 “외치다 보니 사명감, 자신감이 생겨 정말 구호대로 이뤄졌다”면서 “전 구성원이 목표만을 향해 전진하면서 무서운 에너지를 발산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7월15일 서울 코엑스에서 김선권 대표의 강연회 ‘토종 브랜드, 세계를 공략하다’가 열렸다. 6000여명의 신청자 중 500명이 초대된 이 자리에서 그는 자신의 사업 스토리를 솔직하게 공개, 큰 박수를 받았다.

김선권

약력

1968년 전남 장성 출생
세종대 경영대학원(MBA)
1997년 한국세가 대표
2004년 행복추풍령 대표
2008년 카페베네 대표
2011년 10월 카페베네 뉴욕 타임스퀘어점 오픈 예정

주요 수상

2010년 올해의 브랜드상(한국광고학회)
2011년 한국경영대상(한국능률협회컨설팅)
2010~2011년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 대상(2회 연속)
2010~2011년 소비자가 가장 신뢰하는 브랜드 대상(2회 연속)


글 박수진 기자 sjpark@hankyung.com l 사진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