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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11월 시진핑 시대 개막, 어떤 변화?

金 敬 峯 2012. 10. 5. 21:29

전문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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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11월 시진핑 시대 개막, 어떤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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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4

Good Bye "후꺼", 짜이지앤 "보보"!

중국인은 헤어질 때 "나중에 또 봐!(자이지앤:再见)"이라고 인사한다. 중국은 다음달 11월 초 18기 공산당대회에서 최고지도자가 바뀐다. 우리도 "형님"이라는 말 좋아하지만 중국사람들도 "형님(大哥)"이란 말 참 좋아한다. 북경사람들은 이름 뒤에 누구누구 형님이라 부를 때 뒤에 형님(거:哥)를 붙인다. 편안한 동네 형님 같은 후덕한 얼굴을 가진 "후진타오 형님(후거:胡哥)", 후진타오 주석이 11월에 퇴임한다.

중국은 애칭도 재미있다. 그 사람의 이름의 맨 끝자를 두번 반복해서 부르면 그 사람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표현이다. 후주석과 런닝 메이트였던 이는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원자바오 총리다. 원자바오란 이름 맨 뒷자리를 딴 "바오바오(宝宝)"총리로 불린 친절한 할아버지의 원총리도 이번에 퇴진한다.

78년 중국경제의 설계사로 불리는 등소평이 한 것이 1차 개방이었다면, 중국이 2001년 WTO가입 은 2차 개방이다. 2차 개방을 통해 2002년 집권 이후는 "후거(胡哥)"와 "보보(宝宝)" 두 리더는 지난 10년간 중국을 "G2"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중국을 연평균 10%대의 고성장으로 이끈 주역들이다.

10년 전 세계 6위 경제규모를 2위로 올려놓아 미국 다음의 세계 2대 경제대국을 건설했다. 1인당소득도 2002년 1,000$에서 2011년에는 5,414$로 5.4배나 늘렸다. 빈곤층을 1억2천만 명이나 줄였다. 더 중요한 건 2000년 된 늙은 나라를 200년 된 젊은 나라 미국과 이젠 한판 붙어 볼만하다는 자신감에 충만한 나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11월 중국의 공산당 18기 당대회, 제5세대 지도자 등장

중국은 한번 집권하면 5년 단위로 2번 중임하는 10년의 권력주기이다. 2003년 이후 10년간 중국을 이끈 후진타오 주석이 다음달 11월8일 개최될 예정인 제 18기 중국공산당대회에서 주석직을 시진핑에게 물려주고 권좌에서 물러난다. 이로서 중국은 제4세대 지도부는 종지부를 찍고 시진핑을 필두로 한 제5세대 지도자가 등장한다.

중국은 당초 10월로 예상되었던 당대회를 보시라이 사건, 중국 내부의 권력투쟁 등으로 11월8일에 개최하는 것으로 최종 확정하였다. 개최시기를 두고 말이 많았지만 제16기에도 11월초에 개최를 한 적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국의 정치기류에 큰 이상이 생겼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는 북한 공산당에 대한 "아픈 트라우마"가 있어 공산주의라고 하면 붉은 휘장에 대해 거부감부터 있지만 중국을 이해 하려면 중국의 공산당의 구조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중국의 권력구조는 피라미드형이다.

중국은 13억7천만 명의 인구 중 8,027만 명이 공산당원이다. 인구17명당 1명이 당원인 나라다. 그리고 이들의 대표 2,270명이 금년11월에 5년에 한번 모여 전당대회를 연다. 이들 중 374명이 중앙위원으로 선출되고 그 중 베스트 25명이 소위 국가급 지도자로 선출된다.

그리고 이들 베스트 중 베스트 7명이 실질적으로 국가를 다스리는 최고지도자의 반열에 오른다. 그리고 이들 7명의 황제들의 대표가 총서기로서, 명의상 중국을 대표한다. 하지만 총서기가 절대 권력을 갖는 것은 아니고 중요 사안은 7명(9명)의 당 상무위원이 투표로 결정한다.

사회주의 특성상 모든 권력기구의 인사는 당대회 전에 사전에 내정되고 당대회는 형식상의 추인의 자리다. 그래서 최종 인선이 이루어지는 와중에 각종 루머가 난무한다. 중국의 보시라이 사건부터, 시진핑 잠적설, 링지화의 좌천설, 장쩌민의 문화예술공연관람 등 국가급 지도자의 일거수 일투족이 모두 정치문제로 해석되고 수많은 추측이 난무한다. 이는 각 정파간의 막후 교섭에 의해 인사가 결정되는 중국 권력구조의 특성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그러나 일단 당대회가 확정이 되면 모든 인사는 정리된 것으로 봐야 한다. 또한 중국은 인사 결정 전에는 치열한 토론과 음모와 로비가 난무하지만 일단 최고지도자들 간에 합의를 통해 결정이 나면 두말 않고 수용하고, 차기를 노리는 것이 중국 만의 묘한 전통이다.

중국의 미래 5년을 다스릴 "7인 황제"의 면모

중국은 1당 독재지만 당 내부적으로는 "7명의 황제들의 집단지도체제"다. 이번 18기에는 당 상무위원의 수를 9명에서 7명으로 줄인다고 한다. 중국의 권력은 바로 7명의 당 상무위원의 자리를 누가 차지하는 가에 따라 계파간 권력의 파워 시프트가 일어난다.

중국의 권력은 지금 3개의 파벌이 나누어가지고 있다. 현재 집권하고 있는 살아있는 권력, 후진타오 주석계열의 "공청단(共靑團•)파"이다. 공산당이 되기 전 공산당 예비군의 성격인 공청단 간부출신들이 그들이다. 후진타오 주석을 비롯하며 차기 총리 감으로 지목된 리커창, 그리고 리위앤챠오, 왕양 같은 사람들이다. 보통의 가정에서 태어나 오로지 실력 하나로 권력의 최고의 자리에 오른 중국의 "개천에서 난 용"들이다. 출신학교로 보면 대개 칭화대, 북경대 출신의 천재들이 바로 이들이다.

두번째는 지난 정권에서 잘나갔던, 그러나 여전히 힘을 쓰는 장쩌민 주석계열의 "상해파"이다. 부자 망해도 3년 간다고, 지난 권력이지만 중국의 양대 정치권력 (상)해파와 (북)경파의 양대축을 구성하는 쟁쟁한 멤버들이 포진하고 있다. 장쩌민 전주석이 원로로서 입김이 아직도 강하고 새로이 등장하는 태자당과의 연합으로 여전히 강한 캐스팅보트의 역할을 하고 있는 그룹이다.

셋째로 떠오르는 미래권력, "태자당파"이다. 공식적인 당명도 없고 당수도 없지만 중국인이면 모두 알고 있는 당이 바로 시진핑 계열의 "태자당파" 사람들이다. 이들은 아버지 잘 만나 태어날 때부터 은숫가락을 물고 태어난 사람들이다. 아버지가 모택동, 등소평과 같이 혁명운동을 하던, 중국 창업공신의 아들딸들이다. 어렸을 때 "중국의 청와대"라고 할 수 있는 "중난하이(中南海)" 앞마당에서 소꼽놀이 하고 등소평의 무릅위에서 놀았던 사람들이다.

이번 18기 당대회에서 권력은 상해파 10년(1993-2002), 공청단파 10년(2003-2012)에 이어 태자당파(2003-2012)가 잡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전통적인 권력자 상해파들은 이번에 걸출한 인재를 키우지 못했지만 대신 태자당파와 손잡고 연합을 통해 상해시 당서기 출신의 태자당파 시진핑을 당서기로 내정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 8월 베이다이허(北戴河) 전체회의 이후 중국은 권력의 3대 축인 태자당, 상하이방, 공청단(共靑團•)파 간 논의를 거쳐 상무위원 수를 현재보다 2명 줄인 7명으로 정했다. 아직 많은 추측이 난무하지만 이번 18기 당대회에서 선출될 7명의 최고지도자는 대략 태자당2, 상해파2, 공청단3의 구성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2-2-3의 구조로 가면 상해파와 태자당이 연합하면 4:3으로 공청단파를 누를 수 있는 절묘한 구조다. 견제와 균형을 절묘하게 잡아 놓은 것이다. 이번에 주로 상해파들이 장악했던 선전담당과 후진타오 주석과 신진핑 부주석의 발목을 잡았던 정법위서기 자리는 없어지는 것으로 결론 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초 후진타오 주석은 공청단파인 류위앤둥 여성국무위원을 밀었다고 알려졌지만 상해파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대신 시진핑이 밀었던 상해파인 장가오리 텐진시장이 상무위원에 오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또한 보시라이의 중경모델과 정반대인 광동모델을 선보인 공청단파 왕양의 등극도 좌절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이번 중국의 최고지도자중에서는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최고지도자가 등장한다. 상해파로 알려진 장더장 현 중경시장이다. 북한 김일성대학 유학생출신으로 중국의 최고위층에 오를 사람이다.

이미 확정된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상무부총리 이외에 리위안차오(李源潮) 당 중앙조직부장, 장더장(張德江) 충칭(重慶)시 당서기, 왕치산(王岐山) 부총리, 장가오리(張高麗) 톈진(天津)시 당서기, 류윈산(劉雲山) 당 중앙 선전부장이 7명의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의 대변혁 관전 포인트(1)- "시진핑 스타일"이 나올까?

금년 11월을 기점으로 중국의 G2를 창조한, 제4세대 중국정치지도부가 종지부를 찍고 공청단이 태자당에 권력이양을 시작한다. “习李+5名常委”의 체제가 출범한다. 그러나 중국 최고지도자의 권력은 모택동 이후 등소평까지는 절대권력이었지만 장쩌민, 후진타오를 거치면서 점점 약해져 왔다. 과연 이번에 지도자로 등극하는 시진핑은 최고지도자로서 “시진핑 스타일”이 나올 수 있을까?


시진핑은 어느 계파가 주도권을 잡고 자기파를 리더로 올린 리더가 아니다. 3개의 계파가 서로가 견제하면서 각 정파의 이해관계를 계산해 가장 무난한 지도자로 시진핑을 선정한 소위 “타협의 산물”로 등장한 지도자다. 따라서 시진핑은 역대 최고지도자중 가장 약한 권력을 가질 수 밖에 없고 강력한 2인자인 리커창과 권력을 분점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 지붕 두 가족”의 껄끄러운 관계가 시진핑 시대의 중국의 정치구조다.

그래서 “시진핑 스타일”은 당분간 나오기 어렵고 적어도 5년간은 시진핑 시대가 아니라 “포스트 후 시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공청단파는 상해파와 태자당파의 연합에 밀려 차세대주자를 태자당에게 양보했지만 리커창을 중심으로 하는 살아 있는 권력의 파워는 여전히 막강하다.

7월에 인선이 끝난 지방성급 지도자 402명중 42%인 168명이 공청단 출신이다. 그간 10년간 지방정부에 심어놓은 공청단파의 세력을 제거하는 것은 단기간에 끝날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중앙정부에서도 4:3의 구조이기 때문에 공청단파의 영향권에서 태자당파가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시진핑은 중국 개혁개방의 전도사였던 부총리의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문화대혁명으로 최악의 밑바닥 생활에서부터 시작해 본인의 뛰어난 친화력과 능력으로 상해방과 태자당을 등에 업고 최고지도자에 오른 인물이다.

시진핑은 중국의 현재 최고 명문 칭화대를 입학했지만 당시 농민공학생들을 위한 특례입학을 한 것이다. 그러나 리커창은 북경대 법대를 입학시험 봐서 합격한 천재이고, 하버드법대 유학을 포기하고 정치의 길로 들어선 야망이 큰 사람이다. 두 지도자 모두 밑바닥을 경험하고, 20년 이상 최고지도자로 자격을 조직으로부터 철저히 검증을 받은 중국의 역사를 바꾸어 놓을 만한 역량을 가진 사람들이다.

안휘성 시골출신 리커창과 북경 귀족출신 시진핑의 정치색도 선명하게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 복건, 저장, 상해 등 고성장 하는 연안지방, 부자성(省)에서 경력을 쌓은 시진핑과 중국의 가장 낙후된 내륙의 농업지역 후난성과 낙후된 공업지역 랴오닝성에서 지도자경력을 쌓은 리커창, 두 최고지도자의 성장배경을 보면 두 사람의 정책은 서로 성장과 분배로 달라 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중국의 정책은 한가지가 아니라 정치지도자의 배경을 보면 “성장과 분배의 투 트랙”으로 갈 수 밖에 없어 보인다.

중국의 대변혁 관전 포인트(2)- 중국은 이젠 박사치국(博士治国)의 문관시대?

중국의 30년 화려한 경제성장의 성과를 낸 주역은 공대생출신 즉 무관(武官)들었다. 후진타오시대를 이끈 중국의 최고지도자 9명중 7명이 공대 출신이다. 뛰어난 천재들인 중국의 우수한 사회주의자 공대생들이 자본주의 250년을 베껴 만든 중국의 고성장의 신화는 놀라웠다. 그러나 초보운전자들이 항상 그렇듯이 과격하게 브레이크와 악셀을 밟아 경제를 급발진, 급제동을 하는 바람에 경제의 변동성이 컸다. 그게 무관의 한계다.

시진핑의 시대 중국은 이제 "무관의 시대에서 문관의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중국의 최고지도자인 시진핑은 칭화대 법학박사출신이다. 2인자인 리커창은 북경대 경제학박사 출신이다. 리커창은 43세에 중국최초로 최연소 박사 성장이 된 사람이다. 지금 중국의 최고지도자들의 평균학력은 전세계 최고다.


중국의 선거는 최고지도자를 뽑는 11월의 전당대회와 중국의 31개 성의 당서기를 뽑는 중간선거로 나눈다. 작년 11월에 14개 성의 당서기 선정을 마쳤고 금년 7월초에 17개 성의 당서기 선정을 이미 끝마쳤다.

31개 성의 당서기와 지도자들은 모두 402명이다. 이들은 실질적으로 중국의 31개 지역의 제후들이다. 중국식 중간선거의 결과는 사실상 각 지도자의 정치성향, 정치업적, 정치소속집단을 고려한 것이기 때문에 중국의 최고지도자의 교체도 사실상 정리된 거나 마찬가지다.

이들의 특징을 보면 60년 이후 출신자인 60后가 118명, 50后가 276명, 40后가 8명이다. 40后는 소리 없이 사라지고 50后가 주도하고, 60后가 중견으로 자리잡는다는 기본 구조가 완성되었다. 60后의 대학졸업 후 평균 근무기간은 21.3년이다.

이번에 새로이 성급지도자가 된 402명중 박사모를 쓴 사람들이 유독 많다. 박사출신이 100명으로 전체 지도자의 1/4이다. 주요전공을 보면 경제학박사가 32명, 경영학박사가 27명, 법학박사가 15명이다. 50세 이하의 75명의 성급 지도자중 67명이 석사 혹은 박사학력이고 이중 석사가 40명, 박사가 27명이다. 50세 이하 지도자들 가운데서 고학력이 특히 두드러진다. 또한 이번 성급지도자중 이공계출신자의 감소가 두드러진다.

중국의 미래 10년은 차세대 최고지도자인 시진핑을 보면 된다. 시진핑은 개혁개방의 전도사였고 청렴하고 강직함으로 중국의 건국공신 중의 한 사람으로 추앙 받는 시중쉰 부총리의 아들이다. 시진핑이 아버지의 정신을 이어받았다면 중국을 더 개방하고 서민에게 더 귀 기울이고 부패를 일소하는 정책을 펼 가능성이 높다.

현재 확정된 중국의 최고지도자는 칭화대 법학박사 출신 시진핑 부주석과 북경대 경제학 박사출신 리커창이다. 2020년이면 중국은 중국은 중등수입국이고 실질 구매력으로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중국은 향후 10년 사회안정이 중요하다. 2001년 이후 중국은 사회문제가 크게 부각되고 있다. 2009년에는 900만 건 이상의 청원건수가 발생했고 매년 18만 건 이상의 분규가 발생했다. 중국이 2011년 국내안전에 지출한 돈이 6,304억 위안이고 공식적인 국방예산 6,027보다 277억 위안이나 많다. 정부와 국민간의 갈등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경제학과 법학 같은 문과출신 신세대 지도자들이 많이 등장했다는 것은 결국 중국사회가 처한 사회문제에 대해 법치와 경제의 논리에 따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할 것이라는 점에서 18대 이후 중국의 정책에 큰 변화가 있을 것 같다.

중국의 대변혁 관전 포인트(3)- 중국은 어쩔 수 없는 분배의 시대?

이제 중국은 태자당의 세상이다. 태자당 시대에 큰 변화는 중국에서 무관의 시대는 가고 문관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것이다. 무관의 시대에는 "성장"이 키워드였지만 문관의 시대에는 "분배"가 중요해 진다. 공대출신지도자들은 일사불란하게 고성장 하는 데는 안성 맞춤이었지만 고성장기의 문제점에 대처하는 능력에 대해서는 문제가 많았다.

효율을 중시하는 직선형 인재가 경제 개발기에는 실력을 발휘하지만 비상시에는 시나리오에 강한 상상력의 경영을 하는 곡선형인재가 필요하다. 지금 전환기에 선 중국이 바로 곡선형인재가 등장할 타이밍이다.


최근 언론을 달군 보시라이 사건에서 나타났듯이 중국은 후진타오 집권 10년 동안 국가는 눈부신 발전을 했지만 공무원과 공산당 간부의 부정부패는 더 심해졌고 정치개혁은 진보한 게 별로 없다. 지금 중국은 국방비보다 사회불안에 대처하는 공안유지비용이 더 큰 나라가 되었다. 외부세력의 침략에 대응하는 비용보다 내부단속비용이 더 들어가는 것이다. 민주화와 정치개혁을 두려워하는 공산당이 치루는 사회적 비용이 무지막지하게 커지고 있다.

도시와 농촌, 부자와 가난한 이의 빈부격차는 더 커졌고, 국영기업의 진보와 민영기업의 후퇴는 더 심해졌다. 사회불만에 대해서는 무자비한 규제와 통제로 막았다. 그래서 낡은 운동화와 남루한 외투로 전국을 누빈 청렴한 이미지의 인자한 "원 할아버지(温爷爷)"라는 애칭을 받은 원자바오 총리는 비판자들에게서는 무능하고 오로지 쇼에 능한 중국 최고의 "연기의 달인(中國影帝)"인 모순덩어리의 사람으로 비쳤다.

정치철학으로, 조화와 평등을 부르짖은 후진타오 주석의 "조화(和谐)사회 건설"은, 중국어로 허시에(和谐)와 발음이 같은 "옆 걸음 치는 민물게인, 허시에(河蟹)"사회 건설로 발전 없는 사회였다는 비웃음도 받는다.

그래서 새로운 정부는 소득격차를 줄이는 분배정책에 집중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는 국유기업의 민영화를 통해 국부(國富)를 민부(民富)로 전환하는 노력이 필요한데 문제는 국유기업의 민영화는 공산당당의 권력 약화를 의미한다. 그게 공산당의 고민이다.

그러나 방법이 무엇이든 분배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중국의 내부는 폭발할 수 있다. 제 4대 지도부가 자기는 안 하면서 "정치 민주화"를 언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젠 중국은 생산대국 중국에서 분배대국 중국으로 전환하는 시점이 오고 있고 이 타이밍이 서방세계는 새로운 사업의 기회가 될 전망이다.

중국의 대변혁 관전 포인트(4)- 10번째 해양대국 중국, 바닷물을 탐낸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 세계무역을 지배하고, 세계 무역을 지배하는 자 세계경제를 지배하고, 세계경제를 지배하는 자 전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세계의 패권은 그리스시대 이후 "바다를 장악하는 자"의 것이었다. 지금 중국이 역사이래 10번째로 해양대국을 꿈꾸고 있다. 명나라 때 세계최대의 해양대국을 건설했던 중국이 바다를 본적이 없는 만주족 청나라가 해군을 없앤 이후로 아편전쟁 이후 150년간 세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청나라 때 해군이 없어 중국의 모든 해안선이 초토화되고 서방열강의 식민지가 되었던 아픈 기업기억을 가진 중국이 G2로 등장한 지금 다시 해양대국을 꿈꾸고 있다. 중국의 대양해군 꿈을 펼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 류화칭(劉華淸) 당시 해군사령관이 밝힌 이른바 "도련전략"이다. 도련은 섬을 사슬로 이어 해양방위 경계선을 만들어 중국의 해양작전권 안에 흡수하겠다는 의미다.

중국은 2020년까지 중국의 해양을 제2 도련선(사이판∼괌∼인도네시아)까지 확대하고 2040년에는 미 해군의 태평양,인도양 지배를 저지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지금 중국이 일본과 조어도문제, 한국과 이어도, 베트남과 남사군도, 필리핀과 황이엔다오 등 아시아 모든 국가들과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는데 이는 모두 이러한 전략의 일환이다. 당장 일본과는 조어도 문제로 전쟁이라도 할 태세다.

중국의 일본과의 영토문제는 크게 보면 영토분쟁이 아니라 아시아를 두고 "경제패권을 누가 잡느냐"는 경제문제이고 더 크게는 "미국과 태평양을 누가 지배하느냐"의 해양패권경쟁이다. 2040년까지 태평양으로 진출하려는 중국의 해양전략에 한국, 일본, 베트남, 필리핀이 연관되어 있고 그 1차 대상이 일본이다.

중국은 산유국이지만 공업화로 필요한 석유의 50%를 수입에 의존하고 필요한 원자재 90%이상을 말라카해협을 통해 들여온다. 유사시에 이 해상수송로가 막히면 중국은 생명선이 끊어지는 것과 같다. 이를 피하기 위해 중국은 이들 지역과 영토분쟁을 벌이고, 말라카해협을 통과하지 않는 에너지 루트인 미얀마와 파키스탄을 통한 에너지라인을 건설하고 있다. 중국은 이들 지역에 대규모 원조를 통해 중국의 군사기지를 건설하는 "진주목걸이 전략"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이 항공모함을 진수시키고, 핵 항공 모함을 건조하는 것 모두 이미 30년 전에 만들어진 중국의 해양전략의 일환이고 이를 단계적으로 실현시켜 나가는 것이 지금 중국의 해양대국 프로젝트다.

특히 중국이 최근 북한의 나진선봉지구에서 50년간 항만 임차를 끝냈다. 그러면 중국의 동북3성이 드디어 동해바다로 연결되고 한국은 이제 중국과 서해가 아닌 동해바다에서 맞부딪치는 상황이 온다. 한반도의 뒷문이 중국에 열리게 되는 상황이 왔다.

중국이 지금 일본과의 영토분쟁에서 보여준, "경제력으로 내리 누르는 힘"의 과시가 아시아의 모든 영토 분쟁국과의 문제해결에 "전가의 보도"처럼 쓰일 가능성이 높다. 일본에 비해 대중국의존도는 더 높고 대항력은 월등히 취약한 한국의 경우 중국의 해양전략에 경제적으로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언제든 존재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중국의 대변혁 관전 포인트(5)- 금융대국 중국육성?

중국은 후진타오 10년간 G2로 부상할 만큼 고성장을 했지만 벌어 논 돈을 창고에 쌓아두어 화를 키운 것이 문제다. 금융과 경제에 약한 무관출신 지도자들의 약점이다. 중국은 월가를 4번 구제하고, 5000억 유로(6,500억불), 규모 유로안정기금을 못 만들어 쩔쩔매는 유럽에 유로안정기금을 5-6번 만들어 줄 수 있는 3.3조 달러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금융위기를 한방에 날려 보낼 만한 달러현금을 보유한 나라지만 미국과 유럽이 3조 달러 이상의 돈을 찍어 중국이 보유한 달러의 가치를 반 토막 내도 중국은 아무런 저지도 할 수 없는, 금융분야에서 허약한 나라다. 그래서 국제금융사회에서 중국의 발언권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그리고 세계적인 금융위기에서 중국금융기관들이 그 위기를 비켜난 진짜 비밀은 얼떨결에 "소가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격"이다. 중국의 금융인들이 국제화가 안 되어서 부동산 파생상품이 무엇인지 몰라 손대지 못한 것이 전세계가 빠진 서브프라임의 지뢰밭을 비켜간 비결이다. 금융이 너무 취약해 금융시장을 개방 못한 것도 전세계적인 금융 쓰나미의 썰물에서 중국이 살아 남은 진짜 비밀이다.

중국경제의 최대의 맹점은 빈부격차이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만 있고 중산층이 없다. 중국이 소비부양을 1년 가까이 부르짖고 있지만 여전히 약발이 잘 안 먹힌다. 이유는 돈을 쓸 중산층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지금 매년 15%씩 임금을 올려 2015년까지 노동자의 소득을 2배로 높이고 각종세금을 깎아 주어 소비를 부양하고 있다. 그러나 이걸로는 부족하다. 소비대국 미국과 저축대국 중국의 가처분 소득의 구성을 보면 답이 있다.

양국의 차이는 바로 재산성 수입, 즉 금융소득의 차이에서 나타난다. 미국은 중국에 비해 GDP대비 재산성 소득이 22%나 많다. 결국 금융시장의 발달이 중산층육성과 소비증가에 중요하다. 중국은 금융상품의 미발달과 사회보장의 부족으로 미국에 비해 중국은 저축을 18%나 더 많이 한다. 중국의 새로운 정부의 중산층 육성정책은 결국 금융시장과 금융상품 육성 없이는 어렵다.

후진타오의 공청단 집권10년간 중국제일의 금융도시, 상하이는 말만 요란했지 금융산업에서 큰 진전이 없었다. 모든 정책, 시장개장이 예정보다 늦게 진행되었다. "돈을 가진 상하이파"에 대해 "권력을 가진 북경파"가 사사건건 견제를 한 때문이다. 즉 공청단이 상해파가 권력과 돈을 함께 쥐는 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한 때문이다.

그러나 상해시 당서기 출신으로 상해파의 후광으로 주석이 된 시진핑의 시대에는 상해 금융시장의 발전이 과거 10년과는 다른 패턴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상해시는 그간 2년간 끌어왔던 포춘500대 기업수준의 기업의 블루칩시장인 국제반을 2013년에 개장하겠다는 발표를 하였다. 위안화 국제화와 상해금융중심건설이 시진핑 시대에 가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대변혁 관전 포인트(6)- 경기부양 할까?

미국은 수 차례의 양적 완화를 했지만 중국은 최근 2년 반 동안 지속적으로 통화량을 줄였다. 중국은 2009년 29%였던 통화증가율을 최근까지 금융위기 전보다 낮은 13%대까지 낮추었다. 덕분에 중국증시는 최저치를 갱신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경기가 금융위기 이후 최저로 가는데도 경기부양을 할 생각을 안하고 있어 투자가들의 속을 태우게 하고 있다. 이는 중국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정치경제사이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야당이 없다. 그래서 엄밀하게 말하면 정권교체가 아니라 정치 지도자의 교체다. 즉 같은 당의 선배 지도자가 후배지도자에게 권력을 물려주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의 정치지도자는 퇴임 후에도 적어도 5년 이상 상왕으로서 권력을 갖는 희한한 구조다. 10년 전에 은퇴한 장쩌민 주석이 아직도 공식행사에 후진타오 주석 다음으로 등장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서방국가는 임기 말에 업적 쌓기나 재집권을 위해 마구 돈을 풀고 경기를 부양하고 난리지만 중국은 정반대다. 오히려 통화량을 줄이고 긴축을 해 줌으로써 다음에 집권하는 후배지도자가 약간만 경기부양을 해도 그 효과가 나타나게끔 해주는 독특한 통치문화가 있다.

2012년에 경기가 바닥으로 가고 있지만 중국은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을 안 쓰고 있는 이유는 바로 2012년이 후진타오 주석의 임기 말이고 지도자교체기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금융위기전보다도 더 낮은 수준으로 통화증가율을 낮춘 것은 시진핑 집권 이후를 대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금년 연말에 내년도 경제계획이 잡히고, 내년 3월초 전인대에서 2013년의 경제정책의 방향이 발표된다.

지금 한국에서는 중국의 경기부양에 대한 기대가 많다. 그러나 조급함보다는 진중하게 기다릴 필요가 있다. 중국의 경우 금융통화정책의 결정은 서방세계와는 다르다. PMI지수가 낮게 나왔다고 바로 경기부양책 쓰고 돈 풀고 하지 않는다. 중국의 의사결정 구조를 보면 중국의 중앙은행장은 "바지사장"이다. 중국도 금통위가 있지만 금리를 결정할 권한이 없다.

중국의 중앙은행장은 독립기관이 아니고 국무원의 일개부서다. 금융정책은 금융담당부총리인 왕치산부총리의 소관이고 최종결정은 원자바오 총리가 한다. 지금 한달 뒤면 총리는 은퇴하고 부총리는 어느 부서를 맡을지 아직 미정이다. 중앙은행장도, 재정부 장관도 누가 맡게 될지도 미정인 상황이다. 중국의 국가지도자의 인선이 끝나야 장관급의 업무가 정해지고 주요정책이 실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중국의 경제정책에 대한 성급한 기대는 않는 것이 좋아 보인다.

2013년은 중국의 정치경제사이클상 중국이 2년 반 동안의 긴축을 끝내고 긴축완화로 돌아설 확률이 매우 높다. 지수 2000대에서 머무른 중국주가도 회복 추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11월에 등장할 시진핑 정부는 "제조에서 소비"로, "생산에서 분배"로, "동부에서 중서부"로 경제정책의 중심이동을 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지금은 중국의 경제정책에 대한 성급한 기대보다는 중국을 변화시켜갈 중국 새 정부의 지도자와 새로이 발표되는 정책을 예의 주시하고 그 수혜를 볼 업종을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대비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