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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조를 보지 못했다고 흑조가 없는 게 아니다.

金 敬 峯 2007. 7. 21. 16:49
 

흑조를 보지 못했다고 흑조가 없는 게 아니다

The Black Swan The Impact of the Highly Improbable
저자 Nassim N. Taleb, 2007

박정태 국제경제평론가 ( 2007.06.15 )

 

일러스트=정인성 기자 1008is@chosun.com

 

유럽인들은 17세기 말까지 백조가 모두 하얗다고 믿었다. 그들이 본 백조는 전부 하얀 깃털을 갖고 있었으니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1697년 네덜란드의 한 탐험가가 호주에서 흑조(black swan·학명 cygnus atratus)를 발견한 뒤로 유럽에서는 백조에 대한 개념 자체가 바뀌어버렸다.

귀납법의 문제는 여기서 출발한다. 두 가지 명제를 보자. 첫째, 흑조는 없다. 수백 만 마리의 백조를 살펴보았지만 검은 깃털을 가진 백조는 없었기 때문이다. 둘째, 모든 백조가 하얗지는 않다.

첫 번째 명제는 제아무리 많은 백조를 관찰했다 해도 절대 확신할 수 없다. 반면 두 번째 명제는 단 한 마리의 흑조만 발견했다 하더라도 확신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의 모든 경험적 지식을 송두리째 부정할 수 있는 흑조가 어딘가에 숨어있을 수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알 도리가 없다. 귀납법의 문제는 우리가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모든 것을 배울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마치 경험으로부터, 과거의 사실로부터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양 믿고 그렇게 행동한다.

이 책은 제목과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흑조 문제, 즉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사건과 그 사건이 가져다 주는 충격과 파급, 예측 불가능성을 주제로 한다. 흑조를 보지 못했다고 해서 흑조가 없는 게 아니듯,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란 사실 우리가 알지 못하거나 단지 그것이 과거에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흑조’는 세 가지 특징을 갖는다. 첫째, 예측 불가능하다. 과거의 경험으로는 그 발생 가능성을 전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 그 충격과 파급이 폭발적이다. 셋째, 일단 발생한 다음에는 그것이 불가피했으며 예측 가능했다는 설명이 줄을 잇는다.

가까운 예를 들자면, 9·11 테러사건이나 소련의 붕괴, 컴퓨터의 발명과 인터넷 혁명, 해리포터 열풍 등이 모두 흑조다. 우리는 흑조가 눈앞에 나타나기 직전까지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그 이후에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미 발생한 흑조를 설명하기에 급급할 뿐 앞으로 나타날, 따라서 아직 나타나지 않은 수많은 흑조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인 나심 니콜라스 탈렙은 매우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레바논 출신으로 10대 소년시절 내전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그는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에서 MBA 과정을 마치고, 파리대학교에서 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혼돈에서 규칙을 찾아내는 프랙탈(fractal) 이론의 대가인 브누아 만델브로 밑에서 공부한 그는 오랫동안 월 스트리트에서 파생금융상품 트레이더로 일했지만, 소비지출이나 물가상승률 같은 경제지표의 변동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이런 경제지표는 효율적 시장가설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미 시장에 충분히 반영돼 있는, 다시 말해 ‘백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다른 사람들이 무시하는, 보통의 상식으로는 일어날 것 같지 않지만 그 파급은 굉장히 큰 사건의 발생 가능성에 주목한다. 다름아닌 흑조다.

우리는 과거의 사실들을 추론해 미래를 예측하려 한다. 그러나 이건 마치 자동차의 백미러를 통해 앞을 내다보는 것이고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과거의 주식시장을 아무리 관찰한들 1987년 10월의 ‘블랙 먼데이’처럼 주가가 하루에 20%이상 폭락하는 일은 예측할 수 없다. 우리는 생각만큼 그렇게 안전하지 않다. 물론 이런 일이 벌어진 뒤 수많은 전문가들은 왜 그런 일이 불가피했는지 설명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미리 예측하지 못했는가?

전문가들은 귀납법을 통해 데이터를 구하고, 이것은 가우스의 벨커브, 즉 정규분포 곡선으로 나타난다.
탈렙은 정규분포 곡선의 평균적인 중간영역(mediocristan)은 백조의 영역이라고 말한다. 반대로 양쪽 끝의 극단적인 영역(extremistan)이 흑조의 영역이다. 전혀 예기치 못한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정규분포조차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영역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중간영역에서 세상을 평균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과거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고, 미래도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것이다. 역사는 평균적으로 기어가는 것이 아니라 극단적으로 도약하는 것이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흑조의 대표적인 사례다. 누구도 해리포터가 전 세계적으로 5억 부 이상 팔릴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덕분에 조앤 롤링은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역시 흑조다. 그러나 그 뒤에 숨겨진 사실, 침묵하는 사실들은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다. 사실 조앤 롤링보다 훨씬 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작가들이 해리포터보다 더 훌륭한 작품을 수없이 썼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단지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름조차 기억되지 않는다. 해리포터의 성공 뒤에는 수많은 작가들의 실패가 숨어있고, 이 사실들은 그저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있을 뿐이다. 침묵하는 사실들이다. 사람들은 일단 이론을 세우면 그것을 확인해주는 증거만 찾는다. 그러다 보니 흑조를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책은 진지한 철학서 같기도 하고, 황당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재미있으면서도 번득이는 통찰력을 준다. 이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관한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해준다. 분량도 만만치 않고 내용도 결코 쉽지 않지만, 출간 이전에 이미 예약판매만으로 아마존의 비즈니스 분야 베스트셀러에 오른 건 그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비즈니스 분야 베스트셀러 2위에 올라 있다.)

우리나라의 한 재벌 총수가 ‘천재 경영론’을 설파하며 비상한 두뇌를 찾아 나선 것도 실은 그 천재가 바로 흑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바로 당신이 흑조라는 말로 이 책을 마무리 짓는다. 수십 억 개의 행성 가운데 하나인 지구 상에 태어나, 그것도 억겁의 세월이 흘러간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당신이 바로 흑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옮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