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다스리기

온 마음으로 먹기

金 敬 峯 2007. 8. 1. 21:45
 

온 마음으로( 正念 (정념) 으로, 마음 챙김으로, 알아챔으로, mindfully) 먹기

 

 그대가 아침이나 점심을 먹고 있을 때, 그대는 먹는 모든 과정을 관찰해야 한다.

발의 움직임들이나 땅에 발이 닿는 것에 그대는 주의를 기울여서 완전한 자각을

가지고 먹을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정상적인 발걸음에서 발이 땅에 닿을 때마다

 ‘닿음, 닿음’이라 부드럽게 말하면서 발이 땅에 닿음을 알아채야(자각하여야) 한다.

그대가 식사 테이블에 다가 갔을 때, 그대는 온 마음으로 그리고 천천히 앉는

전체 자세를 관찰해야 한다.

 그대가 숟가락을 만질 때, 숟가락이 닿자마자, 그대는 ‘닿음, 닿음’이라 부드러이 말하며

그 닿음을 알아채야 한다. 그대가 음식을 만질 때, 그것이 닿음을 알아채야 한다.

그대가 음식을 입에 가져올 때, ‘가져옴, 가져옴’이라 부드러이 말하며

그 가져옴을 알아채야 한다. 그리고 입 속으로 음식을 넣기,

음식 씹기와 삼키기 모두가 인간 존재라 불리는 마음과 물질을

단지 체득하기 위하여 각각의 이름으로 깊은 자각(알아챔)을 통하여

관찰되어야 한다.


 같은 방법으로 샤워하기, 물과 커피나 차 마시기, 화장실에 가기, 잠자리에 들기,

세수하기, 이 닦기 등이 그대가 명상 수행을 할 때 고결한 침묵 속에서 천천히

그리고 온 마음(마음 챙김)으로 행해야 한다. 수행 코스를 가지는 것이 없이는

좋은 명상을 지속할 수 없을 것이다. 때때로, 능숙한 스승의 도움 없이

혼자서 그대가 명상을 한다면 미친 목표에 대한 그대의 바보스런 마음으로

그대가 잘못될 수도 있다. 수많은 오염(번뇌)으로 찌들은 우리 마음은

믿음직하고 의지할 만한 것이 못된다. 마음은 우리를 적으로 다룬다.

마음은 우리가 무언가를 하라고 하고, 뒤에는 변하려고 하며,

엄청난 난관을 가진 깊은 위기 속으로 우리를 밀어 넣기를 바란다.

가장 어려운 것은 우리 마음을 이해하는 일이다.


<우리 마음 관찰>

 우리 모두는 우리 마음에 의해 이상한 것들과 목적들을 하라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우리 마음의 참된 성품을 이해하려고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우리 마음에 의해 죽음이라는 목표로 이끌려 간다. 부처님은 자신의 마음에서 배웠고,

그 기법을 세상의 벗들과 나누어 가졌던 유일한 스승이다. 부처님은 마음,

머리(이성 brain)와 가슴(감성, heart) 그리고 마음(심성 mind)과 물질을

관찰하는 그 기법을 가르쳐 주는데 관심 있는 것이지, 종교를 가르쳐 주는데

관심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만일 공기를 채우지 않는다면 공은 쓸모가 없을 것이다.

그와 같이, 우리가 그 실성( 實性(실성) )을 체득하기 위하여 우리 자신을 관찰하는 것으로 마음속에 참된 지혜를

우리가 개발하지 않는다면 마음은 쓸모가 없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는 우리 감정과 마음을 가꾸어야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우리 마음의 참되고 순수함에 가 닿을 때, 

마음은 언제나 이성과 감성과 함께 작동하기 때문에 정화된 마음을 통하여

이성과 감성 또한 정화된다.

 

 나는 모든 이가 부처님 가르침대로 수행하고자 한다면

마음의 순수한 성품의 수준을 얻을 수가 있으리라 여긴다.

부처님은 자비롭게도 사람들이 바보스런 마음에서 지혜로운 마음을 가지고

살도록 하는 기법을 나누어 가지려는 것이지,

사람들의 종교를 자신의 종교로 개종시키려고 결코 하지 않았다.

 

오늘날, 세계의 많은 곳에서 싸우는 사람들은 어린 아이들이 아니다.

그들은 마음이 아직 성숙하지 못한 채 육체적으로 성장해 있다.

실제, 그들은 마음으로는 어린 아이들과 같은 수준이다.

아무도 마음의 순수한 성품의 수준에는 가 닿지 않았다.

그들은 심지어 그런 지혜에 도달하는 방법조차도 모른다.

 

나는 몇몇 지혜로운 사람들 외에 우리 세상에는 도덕적인 사람들이

아주 충분히 있다고  믿는다. 말과 행위에서 선하게 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종교인들은 이 선을 충분히 행할 수 있다.

그러나, 지혜롭게 된다는 것은 어떤 종교적인 신념들과는 무관하다.

그것은 인격의 내면을 개발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마음, 감정과 이성을 가꾸고 지혜를 개발하는 체계적인 기법을

우리에게 가르치는 스승이다.

어떤 이가 선한 인격을 가진다면,

부처님으로부터 배워서 그 길을 수행하고자 한다면,

그는 그의 지혜의 원숙함에 곧 이르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는 세상의 벗들과 완벽히 살아갈 수가 있게 된다.

그러나, 나는 종교들이 인간 존재들을 신념의 수준에 멈추게 하기 때문에

종교들이 인간 지혜를 가로막으려 하고 있다고 느낀다.

 

실제로, 우리가 정신적으로 괴로울 때,

우리의 신념에서는 아무런 도움도 얻을 수가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지혜, 지성과 지식을 통하여 인간의

정신적인 질병을 치유할 처방을 찾아야 한다.

우리 자신에 의하여 인간을 도와야 하는 것 외에

어떤 신에서 조차도 도움을 얻을 수가 없다.

그런 까닭에,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너 자신을 구원처로 삼고 너 자신을 의지처로 삼아라.”

 

나는 인간에게 진실 되고 단순한 메시지를 주신

부처님의 정직함과 성실함에 경의를 표한다.

부처님의 메시지는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능력에 의지하고 일상 삶 속에서

그들 자신의 힘을 믿도록 격려하신 것이다.

불교도들은 정신적인 성취와 지혜의 획득을 위하여 죽을지언정

종교적인 이유로 남을 죽이려 하지 않는다.

지혜를 위한 수행을 하다 죽은 비구와 비구니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들은 심지어 심각한 병으로 고통을 받을 때조차도

자유의 획득을 위한 명상 수행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고대의 성스런 질서 속에서 산 비구와 비구니들을 존경한다.


  나에게 명상은 참된 지혜를 얻기 위한 깊은 자기 관찰을 뜻한다.

  명상은 주의를 기울이는 것에서 시작한다.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자신의 행위들에 깨어있게 한다. 자신의 행위들에 깨어있는

사람은 자신의 일들을 관찰하는 좋은 집중을 하게 된다.

좋은 집중은 참되고 깊은 관찰을 하게 한다.

깊은 관찰은 참된 지식과 지혜를 만든다.

참된 지혜는 부정적이고 긍정적인 세상살이를 자유롭게 한다.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요소에 의해 어지럽혀지지 않을 때,

우리는 진실로 자유롭다.

이런 사람은 더 좋고 더 행복하게 살 것이고 즐거운 삶을 살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야 할 길이다. 이런 삶의 길은

부처님이 가르쳐주신 위빠사나 명상으로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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