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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의 詩와 숨결

金 敬 峯 2008. 1. 22. 23:35
 

 

 

네루다의 詩와 숨결 - 천양희

 

 

  "나더러 어디 있었냐고 물으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 내가 아는 것이라곤 --- 뒤에 두고 온 바다뿐. 오, 울고 있는 누이여 --- 어째서 하루는 다른 하루와 합해지는 것일까? 어째서 검은 밤은 입속에 쌓여 있는 것일까? --- 나더러 어디 있었냐고 물으면 나는 저 부서진 것들 --- 그리고 내 무거운 영혼부터 얘기할 수밖에 없다.--- 만나고 엇갈리는 게 기억이 아니라 망각 속에 잠든 노란 비둘기, 눈물 젖은 얼굴 --- 그리고 잎새에 떨어지는 그런 것이다.

흘러간 날의 어둠 우리의 슬픈 피를 먹고 자란 날의 어둠이다 --- 우리가 좋아하는 모든 것시간과 달가움이 어슬렁거리는 마음 쓴 연하장에서 --- 그러나 우리는 --- 침묵이쌓이는 껍질들을 더 이상 씹지 말자. 왜냐하면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니까--- 내가 잊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으니까."

 

   파블로 네루다의 시 <망각은 없다>를 읽다가, 웃음으로 한 해를 끝내지 못한 아쉬움에 지난 시간들을 뒤돌아본다.

   그때 문득, 돌아오지 않는 시간처럼 멀어진 사람들이 생각났다. 행복을 알면서도가지지 못해 운다던 친구가 생각나고, 늦은 것이 있어 

   후회한다던 어느 독자가 생각났다.

 

나는 그들에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가만히 위안의 말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사람은 의지만 있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던 네루다의 말과 함께 <망각은없다>도 연하장에 적어 보내고 싶다. 한 해의 희망이 허망으로 끝나 허탈하다는 사람들, 실패의 충격은 차마 말로 설명되지 않은 사람들은 네루다의 시를 읽으면서, 이 일 저 일 잊고 싶은 일이 있더라도, 내일에사는 마음만은 잃어 버리지 말라는 말도 함께부치고 싶다.

 

며칠 남지 않은 한 해지만, 다가오는 새로운 시간에 대한 환희보다는 잊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은 이즈음이다. 이제 우리는 침묵이 쌓이는 껍질들을 더 이상 씹지 말자. 네루다의 시는 읽으면 읽을수록 나로 하여금 망각처럼 마음을 내려놓는 것도 없고, 망각처럼 마음을 붙잡는 것도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그의 다른 시에서도 "사랑은 이다지도 짧고 망각은 그토록 길다"라는 구절은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다. 이처럼 네루다는 시만으로도 그가 만난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그것은 그의 마음과 생각이 늘 사람을 향해 열려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나는 알겠네. 내가 단 하나가 아니라 존재임을" 이란 대목에서도 네루다의 열린의식을 느낄 수 있다.

 

그의 시 구절 주에서도 특히 나를 사로잡았던 구절은 <여자의 몸>이란 시에 나오는"나는 터널처럼 외로웠다"라는 구절이다. 터널이라는 말이 여성의 정체성을 절묘하게건드리는 한편 외로움의 심사를 황홀하게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구절 외에도 "황혼 무렵이면 언제나 손에 들린 책이 떨어지고 상처 입은 개처럼 나의 외투는 나의발을 휘감는다"라는 구절도 나는 유난히 좋아한다. 이 두 구절은 난폭할 만큼 로맨틱하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많은 독자들을 매혹시켰다. 나 역시 어느 한 시절, 이 난폭할만큼 로맨틱한 네루다의 시에 매혹되었다. 네루다의 시들이 한동안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마치 그 시밖에 없는 듯 내마음속에 이정표처럼 걸려 내 시의 방향까지흔들기도 했다.

 

시와 삶에 누구보다 치열하고 열정적이었던 네루다는 "시인의 삶은 그의 시에 반영되어야 하며, 그것은 예술의 법칙, 인생의 법칙"이라고 주장한 사실주의자였다. 사실주의자와는 반대로 삶과 문학은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은 미학주의자들이다.

칠레의 민중 시인이며 외교관이자 상원 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던 네루다는 7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 천재시인이다. 연애시의 혁명을 일으켰던 유명한 시집 <스무 편의 사랑의 노래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그의 나이19세에 씌어진 시들을 묶은 것이라니 놀라은 일이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화가 다빈치가 콘텍트 렌즈를 발명했다는 사실에 놀랐을 때처럼 작은 경탄을 터뜨렸다. 그만큼 대단한 그가 "파블로 네루다 --- 나의 가장 불충한 적"이라며 자기모순을 고백했을 때 나는 그의 솔직함에 또 한번 놀랐었다. 자신의 허물을 보고서 마음 깊이 자책하는 것은 쉽지 않다.

네루다는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를 좋아했고 포도주를 좋아했으며 노래를 좋아했다.그러나 그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 원하는 것을 다른 데 있었다.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끝없는 사랑, 가을을 느끼는 것, 겨울의 침울함과 여름 그리고 당신의 두 눈 등다섯 가지였다.

 

그는 23세의 젊은 나이에 대사가 되어 여러 나라를 두루 경험한 시인이다. 그는 그냥한 사람이 시인, 외교관이 아니었다. 그는 늘 조국에 대한 열정과 시에 대한 정신으로치열했다. 네루다는 작가들에겐 현실의 삶을 끌어안고 시회 정의 추구에 매진해야 할 책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치열한 정신과 열정은 식을 줄도, 변할 줄도 몰랐다.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망명생활을 했을 때. 그는 자신을 반대하는 두 장의 포스터를 천장에서 마룻바닥까지 걸어놓고 정신을 가다듬었다고 한다.

 

  한 장은 "네루다는 고향으로 돌아가라" 는 것이었고 다른 한 장은 "네루다, 왜 그는 자살하지 않는가"였다.

 

 이런 저런 시련과 고난이야말로 네루다를 세계적인 혁명시인으로 태어나게 하는자양분이었을 것이다. 시인으로서 외교가로서 20세기의 가장 매혹적이고 영향력있는명사들과 가깝게 교우했던 파블로 네루다. 그의 교우관계는 무척이나 넓었다. 예술가로는 사르트르. 엘뤼아르. 아라공, 파스, 피카소, 디에고 리베라. 예프투센코, 에렌부르크, 로르카 등이었고 정치가로는 게바라. 마오쩌둥, 카스트로, 트로츠키, 아옌데 등이었다.

 

스페인의 천재 시인 로르카는 네르다를 " 잉크보다는 피에 가까운 시인"이라 격찬하며 그의 천재성을 인정했다, 그들은 서로 오랫동안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피로 쓴 그의 시는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사실 정치적 궤적과는 무관했다. "내가쓴 시는 다 합하면 7천여 쪽쯤 될 것이다. 이 가운데 정치를 주제로 쓴 것은 네 쪽도되지 않는다. 나는 오히려 사랑을 더 자주 노래한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의 고백처럼 네루다는 대중적으로 명성을 떨친 혁명시인이며 민중에게 가장 사랑받는 노벨상 수상 작가이다.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는 스페인어로 출판된 시집 가운데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애송된 시집이다. 그 시집에 삽화를 그린 화가는 그 유명한 디에고 리베라다.

 

화가 디에고 리베라는, <부서진 기둥>으로 유명한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의 남편이다.디에고 리베라의 평전에 이런 대목이 있다. "모든 혁명은 자신의 예술가를 갖는다 -- "네루다와의 우정을 생각할 때, 그리고 민중화가로서 디에고 리베라의 삶을 생각할 때 의미심장한 문장이 아닐 수 없다.

 

네루다는 67세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수상 연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저는 지리적으로 다른 나라들과 동떨어진 어느 한 나라의 이름 없는 변방에서 왔습니다. 그동안 저는 시인들 가운데서 가장 소외된 시인이었으며, 지역이 한계에 갇힌 저의 시 안에서는 고통의 비

가 내렸습니다."

자신의 시 안에서 늘 고통의 비가 내렸다고 고백한 네루다. 그의 가장 위대한 스승은 휘트먼이며 한때 릴케의 시를 비판한 것은 자신이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라고 고백한 일화도있다.

 

나는 그가 남긴 말 중에서 "시는 내 구원이자 치유이며 숨통이다. 숨을 쉬어야 살 수 있듯이,시를 쓰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말을 가장 좋아한다. 말은 시대와 사회의 거울이라는 것도 그의 문학적 삶을 통해 새삼 깨달았다.

노벨상을 수상한 2년 뒤인 1973년 9월 23일, 네루다는 69년의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그의 마지막 말은 "나 간다"였다. 그가 간 지 며칠 뒤에 내루다의 절친한 친구인 러시아 시인 예프투센코는 "네루다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서 시람들을 숙연하게 했다.

 

 "오늘 나는 네루다를본다. --- 그는 언제나 정중앙에 있다. 그리고 틀림없이 사람들에게 자신의 시를 실어 나른다.

  한 덩어리의 빵처럼 소박하고 평온하게."

   

네루다처럼 시와 삶을 빛나게 한 시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삶을 통해서 비로소 그 사람을 본다.

인생을 망각하고 낭비하는 것처럼 큰 죄는 없을 것이다.

출처 : 꿈.깡.끼.꾀.끈.꼴.  |  글쓴이 : 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