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마을

어느 대나무의 고백 /복효근

金 敬 峯 2008. 7. 24.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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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푸르다는 것 하나로

내게서 대쪽같은 선비의 풍모를 읽고 가지만

내 몸 가득 칸칸이 들어찬 어둠 속에

터질 듯한 공허와 회의를 아는가

 

고백컨데

나는 참새 한 마리의 무게로도 휘청댄다

흰 눈 속에서도 하늘을 찌르는 기개를 운운하지만

바람이라도 거세게 불라치면

허리뼈가 빠개지도록 휜다. 흔들린다

 

제 때에 이냥 비어져서

난세의 죽창이 되어 피 흘리거나

태평성대 향기로운 대피리가 되는,

정수리 깨지고 서늘하게 울려퍼지는 장군죽비

허다못해 세상의 종아리를 후려치는 회초리의 꿈마저

꿈마저 꾸지 않는 것은 아니나

흉흉하게 들려오는 세상의 바람 소리에

어둠 속에서 먼저 떨었던 것이다

 

아아, 고백하건데

그놈의 꿈들 때문에 서글픈 나는

생의 맨 끄트머리에나 있다고 하는 그 꽃을 위하여

시들지 못하고 휘청, 흔들리며, 떨며 다만,

하늘 우러러 견디고 서 있는 것이다

 

 

 - 복효근.  <어느 대나무의 고백> 전문

 

 

출처 : 시베리아의 블로그  |  글쓴이 : 시베리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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