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 읽기

나와 너

金 敬 峯 2008. 11. 17. 21:20

나와 너

ICH UND DU

von Martin Buber 마르틴 부버 문예출판사.

 

목차

 

제1부 근원어(根源語)

제2부 사람의 세계

제3부 영원한 너

 

 

어느 때 신(神)들과 아수라(阿修羅, Asura)들이 싸우고 있었다.

그때 아수라들이 말했다. 「누구에게 우리의 제물을 바칠까?」

그들은 그 제물을 모두 자신들의 입에 넣었다.

그러나 신(神)들은 모두 제물을 상대방의 입에 넣어 주었다.

그러자 조물주는 자신을 신들에게 맡겼다.

 

사람은 그가 말하는 「나」에 따라서

- 즉 그가 「나」라고 말할 때, 어떠한 뜻으로 말하느냐에 따라서 -

그가 어디에 속하며, 그의 길이 어디로 나 있는지 정해진다.

「나」라는 말은 인류가 가지고 있는 참된 암호(暗號, Schibboleth)이다.

 

「나」는 너로 인하여 「나」가 된다.

「나」가 되면서 「나」는 「너」라고 말한다. 모든 참된 삶은 만남이다.

 

사랑이란 한 사람의 「너」에 대한 한 사람의 「나」의 책임이다.

이 점에 그 어떤 감정에도 있을 수 없는 것,

곧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있는 한결같음이 있다.

 

인간의 그리움은 정신에로 눈을 뜬 존재자가

자기의 참된 「너」와 우주적으로 결합하려는 것이다.

 

모든 응답은 「너」를 「그것」의 세계 속에 얽매어 넣는다.

이것이 사람의 우수(憂愁)이며 사람의 위대함이다.

 

정신이 자기에게 열려 있는 세계를 향하여 마주 나아가

그 세계를 자기를 비춰서 세계와 그 세계에 속하여 자기를 구원할 수 있을 때

정신은 참으로 「자기 자신」에 돌아와 있는 것이다.

 

세계로부터 눈을 돌리는 것으로는 신에게 이르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세계를 응시하는 것도 역시 신에게 이르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세계를 신의 안에서 바라보는 사람은 신의 현전(現前) 속에 있다.

 

그대는 존재하기 위하여 신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신은 바로 그대의 삶의 의미가 되는 것을 위하여 그대를 필요로 한다.

 

신은 만유를 품고 있으나 만유는 아니다.

마찬가지로 신은 「나」의 자기를 품고 있으나 「나」의 자기는 아니다.

 

세계는 신의 놀이가 아니다. 세계는 신의 운명이다.

세계가 있고, 인간이 있고, 인간의 인격이 있고, 너와 내가 있다는 것,

여기에 신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다.

 

자기 분리의 목적은 경험과 이용이며,

경험과 이용의 목적은 「삶」, 곧 인생의 전기간에 걸친 죽음인 것이다.

 

오직 「너」에 대한 침묵만이,

「모든」언어의 침묵, 즉 아직 형태가 안 잡힌,

아직 분리되지 않았으며 소리로 되기 이전의 말에 있어서의 침묵의 기다림만이

「너」를 자유롭게 해준다.

 

두 가지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성에는 두 개의 극(極)이 있다.

 

세계는 사람이 취하는 이중의 태도에 따라서 사람에게 이중적이다.

만일 악마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거슬러 결단한 자가 아니라,

영원히 결단하지 않는 자일 것이다.

 

사람이 악령을 물리치려면

그 악령의 본래 이름을 부르면 된다.

 

인과율은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사람을 억누르지 못한다.

그는 자기의 유한한 생명이 본질적으로 「너」와「그것」사이에 있는

하나의 흔들림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또한 그 의미를 깨닫고 있다.

 

세계 안에 머물러 있으면 신을 발견하지 못한다.

세계 밖으로 나가도 신을 발견하지 못한다.

온 존재를 기울여 자신의 「너」에게 나아가고

세계에 있는 모든 존재를 자신의 「너」에게 가져가는 사람만이

사람들이 찾을 수 없는 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확실히 신은 완전한 타자(他者, das ganz Andere)이다.

그러나 그는 또한 완전한 자기(das ganz Selbe)이다.

즉 완전한 현전자(現前者, das ganz Gegenwartige) 이다.

확실히 그는 나타나고 압도하는 두려운 신비이다.

그러나 그는 또한 「나」의 「나」보다도

나에게 가까이 있는 자명한 비밀이기도 하다.

 

교리(Dogma)는

증대하여 가는 「그것」의 세계에 대한 인간의 권리포기이다.

 

분리될 수 없는 신비 앞에 분리되지 않는 것으로 마주서는 일,

이것이 구원의 근본 조건이다.

 

사람이 신과 만나는 것은

그가 신에게만 관계하기 위하여서가 아니라,

그 만남의 의미를 이 세계에서 확증하기 위하여서이다.

모든 계시는 소명(召命)이며 사명(使命)이다.

그러나 사람은 그 뜻을 실현하는 대신에

되풀이하여 계시자에게 휘어 돌아오며,

세계와 관계하는 대신에 신과 관계하려고 한다.

 

Ich bin da als ich da bin

「나는 내가 있는 대로 있는 것이다」

 

마르틴 부버 著 표재명 譯 <나와 너> 중에서 발췌

문예출판사 / 初版 1977, 7刷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