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마을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金 敬 峯 2008. 11. 25. 10:11

[한국인이 애송하는 사랑시]  

[13] 갈증이며 샘물인
                                    / 정 현 종
너는 내 속에서 샘솟는다

갈증이며 샘물인

샘물이며 갈증인

너는

내 속에서 샘솟는

갈증이며

샘물인

너는 내 속에서 샘솟는다

<1999년>


스무 살 언저리 어느 날, 친구 손에 이끌려 아주 작은 섬으로 소풍을 간 일이 있다. 그곳은 배를 타지 않아도 되는 섬, 도심의 뒷골목에 있는 찻집의 이름이 섬이었다. 그곳은 정현종(69) 시인의 시 〈섬〉을 기리는 집이기도 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라고 조그만 액자로 걸려 있던 시구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나처럼 외로운 심사를 위로 받았을까. 나 혼자만이 '섬'이 아니라 모두가 섬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고마운 시였다.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앉아 있거나/ 차를 마시거나/ 잡담으로 시간에 이스트를 넣거나/ (중략)/ 그게 저 혼자 피는 풍경인지/ 그건 잘 모르지만// 사람이 풍경일 때처럼/ 행복한 때는 없다'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는 시인의 다른 시처럼 나는 그 섬을 다녀온 후 언제나 '풍경으로 피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즐거운 것은 대개 피어나거나 솟아나는 형태로 온다. 팬 보리밭의 종달새를 보라. 아지랑이를 보라. 봄에는 싹이 솟아나고 여름엔 숲이 솟는다. 가을엔 하늘이 드높아 짙푸르지 않던가. 꽃대도 솟고 웃음도 솟는다. 만국기 아래 운동회의 아이들이여! 그 통통 튀는 솟아오름이여! 그 중에서도 최고는 역시 '샘솟는' 것. 샘솟는 것엔 우선 견딜 수 없는 싱그러움이 있다. 울음마저도 샘솟는다고 하면 얼마나 후련한가. 그윽하고 차분한, 그럼에도 발 동동 구르고 싶은 기쁨과 인내가 거기엔 있다.

시인 정현종은 기쁨과 솟아오름의 시인이다. 이 시인의 웃음은 한국 문단사가 기록할 최상급의 것이기도 하다. 그의 시는 '싹'이나 '샘물'이나 '날개'처럼, 또 '풍경'처럼 가볍게 떠오르는 것들을 찬양한다. 그래서 '마음이여 몸이여 무거운 건 얼마나 나쁜가'(〈바람이 시작하는 곳〉)라고 노래하기도 한다. 그 누가 부정할 수 있으리요. 제아무리 큰 설악산 울산바위 같은 것도 가볍게 날개를 달아 날려 보낼 정도의 쾌활함과 저력이 그의 50여년 가까운 시력 내내 일관되게 빛난다. 그러나 그러함에도 삶이 마냥 솟아오르기만 하던가. 역설적이게도 솟아오르는 것은 무거움의 전제 없이는 가능하지 않는 것. 이 시는 그 양가적인 세계를 가장 간결하게 보여준다.

사랑하는 '너'는 맘속에서 시소와 같다. 사랑도 살아 있는 것이므로 일정할 수 없으니 때로 무겁게 가라앉는 갈증이 된다. 갈증이 없다면 샘솟음도 없는 것. 샘솟음이 곧 고통이고 갈증이 기쁨의 다른 이름이기도 한 것이다. 시인은 일찍이 그 사랑을 '고통의 축제'라고 정의했었다. 참 물맛을 알기 위한 갈증의 축제, 그 마라톤이 곧 사랑인 셈이다. 갈증과 샘솟음의 양 극단을 오르내리는 시소놀이에서 높이 샘솟을 때 우리는 세상과 우주의 환희를 알며 다시 낮게 내려앉을 때 겸손과 견딤을 배운다.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
조선닷컴 입력 : 2008.10.06 03:29



[14]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도 종 환



견우직녀도 이 날만은 만나게 하는 칠석날

나는 당신을 땅에 묻고 돌아오네

안개꽃 몇 송이 함께 묻고 돌아오네

살아 평생 당신께 옷 한 벌 못 해주고

당신 죽어 처음으로 베옷 한 벌 해 입혔네

당신 손수 베틀로 짠 옷가지 몇 벌 이웃께 나눠주고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돌아오네

은하 건너 구름 건너 한 해 한 번 만나게 하는 이 밤

은핫물 동쪽 서쪽 그 멀고 먼 거리가

하늘과 땅의 거리인 걸 알게 하네

당신 나중 흙이 되고 내가 훗날 바람 되어

다시 만나지는 길임을 알게 하네

내 남아 밭 갈고 씨 뿌리고 땀 흘리며 살아야

한 해 한 번 당신 만나는 길임을 알게 하네

<1986년>



영원한 사랑을 믿는가? 사랑이 영원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요즘으로 치면 좀 촌스럽다. 만남도 헤어짐도 '쿨해져 버린' 시대니까. 사랑에 빠진 직후라면 영원한 사랑 운운이 자연스러울 수도 있겠다. 그런데 도종환(54) 시인은 사랑에 막 빠졌을 때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할 때 사랑의 영원을 노래한다. 이런 사랑법, 예컨대 '사랑의 뒷심'이 세상의 나지막하고 소소한 뒷마당을 지켜가는 소중한 힘이 되기도 한다.

'당신 나중 흙이 되고 내가 훗날 바람 되어' 다시 만나질 그날을 예비하며 헐벗은 벌판을 경작하는 시인의 어깨는 고단하다. 하지만 현실의 고단함을 기꺼이 짐 지는 것이 진정으로 당신을 만나는 길임을 믿기에 시인은 '밭 갈고 땀 흘리며' 묵묵히 당신을 그리워한다. 도종환은 이별과 그리움과 눈물의 시인. 1986년 출간 이후 당대의 밀리언셀러였던 시집 《접시꽃 당신》이 시인을 세상에 알렸지만, 이 시집의 놀라운 판매량은 비극적인 개인사에 대한 세간의 관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80년 광주의 상처로부터 출발한 암울한 시대의 중반에 인간의 근원적 상처인 삶과 죽음을 진정성 가득한 서정시로 빚어 올린 이 시집은 개인의 비극과 시대의 비극이 긴밀히 연결된 지점에서 독자들의 마음을 위로했다. 사람들은 시집을 보며 눈물 흘렸고 눈물은 우리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었다.

실제로 도종환 시인을 만나면 많이 울었던 사람의 눈빛과 마주친다. 그는 잘 웃는 편인데 그 웃음이 세상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느낌일 때가 많다. 왜 아니랴. 당신이 사랑한 세상은 여전히 문제투성이고, 나는 당신을 만나기 위해 오늘의 세상을 더 많이 사랑해야 한다. 옥수수밭 옆에 묻은 당신을 끝내 붙잡아두고 싶었던 세상이므로, 이 세상이 조금씩 더 나아질 수 있게 나는 무엇이든 해야 한다. 그것이 당신에 대한 내 사랑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므로. '(…)/ 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접시꽃 당신〉)

쓸쓸하게 버려진 세상의 뒷마당들에 씨앗을 심고 가꾸는 시인은 '공공 선(善)'이랄지 '희망' 같은 구닥다리 말들이 여전히 사랑을 지키는 근원 힘임을 알고 있다. 변방의 사람들을 향해 그가 내미는 노래들은 따뜻하고 순연하다. 그 노래들 속에 사랑의 푸른 빛들이 반짝인다. 영원한 사랑을 믿느냐고? 영원한 사랑은 있다. 내 안에 당신이 있는 방식으로, 혹은 '당신 나중 흙이 되고 내가 훗날 바람 되어' 만나는 방식으로. 아무리 세상이 낡고 슬픔이 많다 해도 사랑은 앞으로 나아간다.

김선우·시인
조선닷컴 입력 : 2008.10.07 03:24



[15] 저녁에

- 김 광 섭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사랑은 서로 껴안는 것이다. 함께 살며 나란히 앉는 것이다. 또한 사랑은 서로 눈을 맞추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 저녁이 내리는 뜰에 내려가 하늘을 우러르는 사람이 있다. 하늘의 눈동자에 눈 맞추는 사람이다. 하루의 삶 중에서 가장 경건한 시간일 것이다. 반성과 겸손의 시간이다. 일 년으로 치면 가을이고 인생으로 치면 노년이다. 차분하게 어둠 속을 응시하며 살아온 날들을 정리해보는 시간. 하나 둘 생겨나는 별과 함께 하나 둘 되살아나는 기억 속의 인연들이 있을 것이다. 그 중 다정한 웅얼거림처럼 유난히 빛나는 딱 하나의 별. 아내여도 좋고 아들이어도 좋다. 뼛속 깊이 새겨진 연인이어도 좋다. 그 글썽임, 가슴 깊이 저려오는 글썽임이 빛난다. 밥을 먹으며 삼킨 눈물, 길을 걸으며 혼자 웃던 웃음, 앓아 누워 그립던 손길, 이제는 덤덤함 속에서 문득 빛을 튕기는 그 사람. 그 유별한 인연의 희로애락이 어둠의 겹처럼 차례차례 짙어지고 또 그만큼 빛을 더하는 별이 밤새도록 이마 위에서 사운 대고 있다.

사랑하는 이를 멀리 보내고 나서 그 보낸 이와 눈 맞춰보고 싶은 심사가 바로 '저녁에' 수없이 떠오르는 별을 헤는 일일 터. 그 중 유별나게 다가오는 별 하나를 웃음과 눈물로 동시에 마주하는, 그것은 이별 이후의 또 다른 사랑의 자세이다.

이 시에는 밤 내내 하늘을 향해 떠 있는 하나의 실루엣이 보인다. 아주 조금씩만 떠올랐다 가라앉는 어깨선. 그 숨결이 또 다른 어느 기억 속에서는 별빛으로 글썽일지 모른다. 곧 어둠 속으로 사라질 한 생명의 실루엣이 슬프고도 거룩하다.

김광섭 시인(1905~1977)은 다양한 경력의 시인이었다. 영문학을 전공한 1세대 해외문학파의 일원이었고 일제 하에서 긴 옥고를 치른 민족주의자였으며 금광을 운영하기도 했다. 신문사와 문학지를 발행한 언론인이며 교수였다. 경무대의 공보 비서관을 지낸 정치가이기도 했으니 보통 사람은 흉내내기 어려운 숨가쁜 일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인생의 영향이겠지만 그의 시에는 〈안익태〉, 〈이승만〉, 〈고희동〉, 〈최규동〉 등등의 '인물시'가 많으며 사회 현실에 대한 진단과 전망, 행사시들을 따로 묶어 말년엔 《반응》이란 시집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시의 진수는 역시 노년의 힘겨움 속에서 탄생했다. '병(病)은 앓으면서도 양식(良識)을 기른다./ 사 년 동안에/ 선량(選良) 이백 명분은 넉근히 쌓여서/ 오늘은 오늘의 슬픔이 그냥 내일(來日)이 되는/ 그런 날이다/ 크게 바랄 것도 남지 않았고/(…)(〈병(病)〉)' 회갑 지나 뇌일혈로 쓰러지고 난 후 그의 대표작 〈성북동 비둘기〉, 〈저녁에〉 등과 함께 그 '노경'의 아름다움을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듀엣 '유심초'노래로 일반에 널리 알려졌지만, 화가 김환기의 대표적 추상화 작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로도 높은 경지를 얻었다. 두 사람은 같은 성북동 언덕바지에 살며 사귐도 깊었다고 한다.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
조선닷컴 입력 : 2008.10.08 04:56



[16] 가난한 사랑 노래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신 경 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1988년>

〈가난한 사랑 노래〉 이전에 〈너희 사랑〉이라는 시가 있었다. 사연은 이렇다. 신경림(73) 시인이 막 50대 초반에 들어섰을 때다. 시인이 자주 가던 식당에 청초하고 어여쁜 처녀가 있었다. 어느 날 이 처녀가 시인에게 면담을 청하였다. 사연을 들어보니, 그녀에게 사랑하는 남자가 있는데 그 남자가 신경림 시인의 시를 무척 좋아한다며 한번 만나달라는 거였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시인에게 어렵게 청을 넣은 이 식당 따님의 마음이 어여뻐 시인은 남자를 만났다. 그리고 두 남녀는 머지않아 부부 연을 맺었다. 그때 시인은 두 사람을 축복하며 〈너희 사랑〉이라는 시를 지어 결혼식에서 읽어주었다. 결혼식은 컴컴한 반 지하 방에 열 명 남짓 모여 단출하게 치러졌다. 노동운동을 하던 남자가 수배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미래는 불투명하고 가진 건 아무 것도 없지만 너무도 행복해하는 이 어여쁜 청춘 남녀에게 〈너희 사랑〉을 선물한 후 이들을 생각하며 또 한편의 시를 썼으니 그것이 〈가난한 사랑 노래〉다.

'낡은 교회 담벼락에 쓰여진/ 자잘한 낙서에서 너희 사랑은 싹텄다/ 흙바람 맵찬 골목과 불기 없는/ 자취방을 오가며 너희 사랑은 자랐다/ 가난이 싫다고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고/(…)/ 망설임과 헤어짐 속에서 너희 사랑은/ 굳어졌다 새 삶 찾아나서는/(…)' (〈너희 사랑〉)

가난한 사람들이 세상을 읽는 방식은 사랑이다. 부자인 사람들이 세상을 읽어낼 수 있는 방법도 사랑뿐이다. 우리 모두 영혼이 가난하고 고독한 존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 사랑도 세상 어디선가 모진 몸싸움을 하며 소주잔을 기울일 수밖에 없고, 자존과 치욕 속에서 많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울 수밖에 없는 영혼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농촌에 대한 애틋한 헌시인 그의 첫 시집 《농무》는 우리 시사에 리얼리즘 시의 아름다운 시금석을 놓은 기념비적 시집이었다. 신경림은 시를 어렵고 관념적인 세계로 느끼던 독자들에게 쉬우면서도 깊은 감동이 있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의 모든 시집들엔 도시 노동자와 변두리 빈민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약자들을 향한 곡진한 애정이 배어 있다. 민중의 삶이 자연스럽게 노래가 되는 경지를 그는 꿈꾼다. 가난하고 못난 우리가 원래 노래였다고! 그러므로 '가난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아픈 고백은, 가난해도 절대로 사랑만은 버릴 수 없다는 사랑의 응원가와 닿아있지 않은가.

김선우·시인
조선닷컴 입력 : 2008.10.09 03:11



[17] 열애

- 신 달 자



손을 베었다

붉은 피가 오래 참았다는 듯

세상의 푸른 동맥속으로 뚝뚝 흘러내렸다

잘 되었다

며칠 그 상처와 놀겠다

일회용 벤드를 묶다 다시 풀고 상처를 혀로 쓰다듬고

딱지를 떼어 다시 덧나게 하고

군것질하듯 야금야금 상처를 화나게 하겠다

그래 그렇게 사랑하면 열흘은 거뜬히 지나가겠다

피흘리는 사랑도 며칠은 잘 나가겠다

내 몸에 그런 흉터많아

상처가지고 노는 일로 늙어버려

고질병 류마티스 손가락 통증도 심해

오늘밤 그 통증과 엎치락 뒤치락 뒹굴겠다

연인몫을 하겠다

입술 꼭꼭 물어뜯어

내 사랑의 입 툭 터지고 허물어져

누가봐도 나 열애에 빠졌다고 말하겠다

작살나겠다.


모과 장수가 등장했다. 서늘한 저녁 거리에서 그 열매를 만나면 사야만 할 것 같지 않은가? 수더분한 모양과 고즈넉한 빛깔과 향기로 우리의 마음을 빼앗는다. 두어 개를 사가지고 오다가 그만 하나를 깨고 말았다. 허나 책상머리에서 그 상처난 모과는 마치 어떤 속삭임과도 같은 짙은 향기로 진동한다. 모과에게 상처는 아픔이겠지만 동시에 향기이기도 하니 시인 신달자(65)의 시 〈열애〉와 닮았다. 상처의 향기를 위해 영원히 상처를 덧나게 하겠다는 사랑에 대한 인식은 요즘 세태의 단발성 '일회용 밴드'적 사랑과는 근원이 다른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상처 받을 때가 있다. 몸에 난 상처는 제아무리 심해도 치유가 되지만 마음에 난 그것은 잘 아물지 않을 때가 많다. 사랑의 감정은 실은 일종의 상처처럼 온다. 그 상처에는 여느 감정의 상처와는 다르다. 증오나 절망 대신 그리움이 감미롭게 욱신거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랬는지 어떤 이는 사랑을 '봉변'이라고 재치 있게 말하기도 한다.

〈열애〉는 상식적 차원의 사랑을 단호히 거부하고 끝끝내 '감염'된 상처를 안고 가겠다는 '신달자 식' 사랑을 엿보게 한다. 시인은 언젠가 이렇게 고백한 적이 있다. "고통과 상처와의 연애가 내 삶의 긴장을 돋우는 일일 것입니다. 제게 사랑이라는 것은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전 잠수형이에요. 요령 한 번 피우지 못하고 계산은 아예 할 줄 모르고 바닥까지 푹 빠져 버리는 수렁이 제 사랑법입니다. 허망의 극치를 달리는. 제 경험으로는 나같이 푹 빠져 주는 사랑은 잘 없었어요. 있었다면 제 남편이었는데 그 덕분에 생을 모조리 탕진하는 거렁뱅이로 고통의 수심 깊이에서 살아 왔어요."

사랑으로 생을 탕진하고 거렁뱅이가 된다는 것은 얼핏 낭만적이다. 실현 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 삶일 땐 성스럽기까지 하다. 시인의 내면을 '사랑의 거렁뱅이'로 만든, 먼저 이승을 하직한 남편을 시인은 이제 덤덤히 노래한다. '여보! 비가 와요/ 무심히 빗줄기를 보며 던지던/ 가벼운 말들이 그립다/ 오늘은 하늘이 너무 고와요/ 혼잣말 같은 혼잣말이 아닌/(…)'(〈여보! 비가 와요〉) 한 세계가 되기까지 시인은 상처를 긁고 뜯어서 그것을 봉합하지 않고 아프게, 살아 있게 만들었다. 그 아픔이 더욱 향기롭게 다가오는 것은 그 사랑에 '아련함'만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질게/ 욕이나 할까부다// 네까짓 거 네까짓 거/ 얕보며 빈정대어 볼까부다// 미치겠는 그리움에/ 독을 바르고// 칼날같은 악담이나/ 퍼부어 볼까부다'(〈그리울 때는〉)라는 지독한 사랑의 '현장감'은 차라리 숙연하다. 정말 그리워 미칠 지경이 되면 지독한 악담이라도 하고 싶다는 것을 아는 자, 사랑을 아는 자다.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
입력 : 2008.10.09 22:42 / 수정 : 2008.10.09 22:42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18] 서울역 그 식당

- 함 민 복



그리움이 나를 끌고 식당으로 들어갑니다

그대가 일하는 전부를 보려고 구석에 앉았을 때

어디론지 떠나가는 기적소리 들려오고

내가 들어온 것도 모르는 채 푸른 호수 끌어

정수기에 물 담는 데 열중인 그대

그대 그림자가 지나간 땅마저 사랑한다고

술 취한 고백을 하던 그날 밤처럼

그냥 웃으면서 밥을 놓고 분주히 뒤돌아서는 그대

아침, 뒤주에서 쌀 한바가지 퍼 나오시던

어머니처럼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마치 밥 먹으러 온 사람처럼 밥을 먹습니다

나는 마치 밥 먹으러 온 사람처럼 밥을 먹고 나옵니다


함민복(46) 시인이 강화도에 들어가 산 지 10년이 넘었다. 이제 시인은 동네의 어부 형님들을 따라다니며 철마다 다른 이름의 물고기를 잡고 뻘 낙지를 잡아 낮술도 할 줄 아는 어민 후계자 시인이 되었다. 다행이다. 그는 가난하다. 그런데 그의 가난은 춥고 궁핍한 느낌보다 어쩐지 다른 사람에게 위로가 되는 '따뜻한 가난'의 느낌을 풍긴다. 시인의 가난이라 그런 것일까. 가령 이런 얘기는 어떤가. 1998년 무렵. 그가 문화관광부에서 주는 '오늘의 예술가상'이라는 상을 하나 받았다. 상금이 500만원인, 당시로는 제법 쏠쏠한 상이었다. 참말 오랜만에 거금을 쥐어보게 될 시인은 내심 들떴으리라. 그런데 이게 웬걸! 마침 IMF한파를 맞았던 그 해에만 상금이 사라져 버렸다. 상금 대신 트로피를 주었다는데, 그 트로피 조각상이 청동인지 돌인지 하여간 엄청 무거웠다고 한다. 상금 없이 달랑 트로피만 주어졌으니 그 마음이 오죽했을까. 무거운 트로피를 들고 이 술집에서 저 술집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시인은 내내 중얼거렸다. "이 무거운 게 쌀 가마니였으면 얼마나 좋아!"

눈물 나는 얘기를 들으면서도 결국은 빙긋이 웃게 되는 일들과 시인은 인연이 많다. '서울역 그 식당'과의 인연도 그렇다. 그대를 보려고 식당 구석에 앉아있는 시인. 그대가 가져다 준 밥. 시인은 '마치 밥 먹으러 온 사람처럼 밥을 먹고' 나온다. 그대가 어떤 그대인가. '그대 그림자가 지나간 땅마저 사랑한다'고 시인이 고백했던 그대다. 그런 그대가 밥을 가져다 주었으니 나는 그저 밥을 먹고 나온다. 술을 가져다 주었으면 술을, 상처와 고독을 한 양푼 가져다 주었으면 상처와 고독을 그저 달게 받았으리. 사랑하는 그대가 내게 주는 것이므로! 가장 함민복스러운 '긍정의 힘'이 '서울역 그 식당'에도 뻗어 있어 슬그머니 미소가 떠오른다.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긍정적인 밥〉)

그의 초기시들엔 반생명, 비인간적인 자본주의 현실에 대한 불안, 공포, 분노가 번뜩인다. 독설도 마다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런 그가 강화도 사람으로 10년 넘어 살고 나니 부드럽고 강인한 갯벌의 침묵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그는 이제 날 선 절규 대신 조용한 침묵으로 시를 짓거나 침묵에 가깝게 노래한다. 부드러운 수평을 유지하며 스스로를 지켜가는 갯벌처럼. 갯벌에서 하루 종일 반죽을 개며 노는 그에게서 '말랑말랑한 힘'을 가진 시들이 '쌀 가마니처럼' 쏟아졌으면!

김선우·시인
입력 : 2008.10.11 03:16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19] 사랑의 기교 2 ―라포로그에게

오 규 원



사랑이 기교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나는

사랑이란 이 멍청한 명사에

기를 썼다. 그리고

이 동어 반복이 이 시대의 후렴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까지도 나는

이 멍청한 후렴에 매달렸다.

나뭇잎 나무에 매달리듯 당나귀

고삐에 매달리듯

매달린 건 나지만, 결과는

비참했다 사랑도 꿈도.

그러나 즐거워하라.

이 동어 반복이 이 시대의 유행가라는

사실은 이 시대의

기교가 하느님임을 말하고, 이 시대의

아들딸이 아직도 인간임을 말한다.

이 시대에 가장 아름다운 기교, 나의 하느님인 기교여.

<1978년>


가벼운 교통사고를 몇 번 겪고 난 뒤 조금만 차가 속도를 내도 앞 좌석의 등받이를 움켜쥐고는 언제 팬티를 갈아입었는지 문득 근심에 젖는, 죽고 난 뒤의 팬티가 깨끗할지 아닐지에 대해 걱정하는 인간이 있다. 시인 오규원(1941~2007)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인간형이다. 인간의 세속적 부끄러움에 대해서 이토록 민활하게 '까발리는' 시가 등장한 것도 오규원에게서 처음이 아닐까 싶다. 말하자면 그는 우리의 오랜 고정관념 속에 고고하게 들어앉아 있는 시에 대해 이렇게 일갈한다. "詩에는 무슨 근사한 얘기가 있다고 믿는/ 낡은 사람들이/ 아직도 살고 있다. 詩에는/ 아무것도 없다/ 조금도 근사하지 않은/ 우리의 生밖에" (〈용산에서〉). 다시 말하면, 생은 치장된 겉모습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낡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있으므로 마냥 근사한 것만이 삶이 아니며 시는 그 삶 전체를 노래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고백했다. "죄송합니다. 나는 삶을 사전에 있는 개념으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시도 사전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런 죄로 나는 사전에 없지만 이 지상에 있는 삶의 下命(하명)대로 살아 있는 동안은 路上(노상)에서 계속 삶을 동냥하겠습니다…" 사전에 없지만 지상에 있는 그것, 그것이 어쩌면 우리가 늘상 눈물겨워하거나 억울해하거나 아파하거나 외로워 하는, 모든 마이너리티적 삶의 구색들일지 모르겠다.

위의 고백처럼 사전적 의미의 사랑은 오규원 시인에겐 사랑이 아니다. 우리를 늘 구속하던 개념들, 도덕들을 그는 이렇게 풍자한다. "아 어디로 갔나 여기 있어야 할 사랑 愛. 忠 孝는 지금도 있는데, 아 어디로 갔나. 사랑 愛, 미운 오리새끼.(…)"(〈한 나라 또는 한 여자의 길-楊平洞 3〉)" 어린 시절부터 차별을 가르치는 교육! 정작 '사랑(愛)'은 있지도 않은 우리의 지배관념! 늘 '미운오리새끼'의 운명인 '사랑'이므로 이제 사랑은 '기교'를 낳을 수밖에 없다. '기교'가 속임수적 요소를 가진다는 부정적 의미에서 탈출하여 모든 억압에서 벗어나는 방법적 관념이 되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멍청한 명사'가 '멍청한 후렴'인 시대, 그것에 매달려 보았지만 '사랑도 꿈도' 비참했던 시대. 그러나 그럼에도 사랑은 한 시대, 아니 모든 시대의 가장 아름다운 기교이며 신의 기교라는 자각은 사랑의 사회적 차원을 가장 아름답고 풍자적으로 제시해 준다.

"가을은 가을 텃밭에 묻어놓고/ 구름은 말려서 하늘 높이 올려놓고/ (…)/ 그 다음 오늘이 할 일은 다가오는 겨울이 섭섭하지 않도록/ 하루 한 걸음씩 하루 한 걸음씩 마중 가는 일이다'(〈씨앗은 씨방에 넣어 보관하고〉)라고 한 그는 한 줌 재가 되어 강화도 전등사 뒷산의 나무 아래 잠들었다. 〈서울역 그 식당〉에도 드나들던 가난한 제자 시인 함민복은 오래 강화도에 살면서 선생님의 '능참봉'을 자처하며 허허롭게 웃는다.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
입력 : 2008.10.12 22:15

'시 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별 / 김완하  (0) 2008.12.01
내사랑이.참..좋던날 /용혜원 (예술을 하려거든 보라색을 좋아해라)  (0) 2008.12.01
낙엽 / 이해인  (0) 2008.11.24
길 들 / 김수영  (0) 2008.11.24
안부 / 이정하  (0) 2008.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