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멕시코시티 교외 코요아칸에서 출생하였다. 독일인인 프리다 칼로의 아버지는 그에게 ‘프리다’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는데, 독일어로‘평화’를 의미한다. 그녀는 7세 때 소아마비에 걸려 다리를 절게 되었고, 1925년 18세 때 교통사고로 척추, 오른쪽 다리, 자궁을 크게 다쳐 평생 30여 차례의 수술을 받는 등 이 사고는 그녀의 삶뿐만 아니라 예술 세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사고로 인한 정신적?육체적 고통은 그의 작품 세계의 주요 주제가 되었다.
1939년 르누와 콜 갤러리에서 열린 멕시코전에 출품하여 파블로 R.피카소(Pablo Ruizy Picasso)?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등으로부터 초현실주의 화가로 인정받았으나 프리다 칼로 자신은 자신의 작품 세계가 유럽의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고, 멕시코적인 것에 뿌리를 둔 것이라며 정체성을 강하게 지켰다.
삶은 매우 연극적이었고 항상 여사제처럼 전통 의상과 액세서리를 착용하였으나 사회 관습에는 완강히 거부했기 때문에 페미니스트들에게는 20세기 여성의 우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작품으로는 사고로 인한 고통을 극복하고자 거울을 통해 자신의 내면 심리 상태를 관찰하고 표현했기 때문에 특히 자화상이 많다. 그림 속의 그녀의 모습은 비록 여러 개의 화살 때문에 피를 흘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선은 매우 투명하고 강한 빛을 발하는데 이는 삶에 대한 강한 의지와 자신의 고통이 오히려 예술로 승화되었음을 나타낸다. 1970년대 페미니즘 운동이 대두되면서 그녀의 존재가 새롭게 부각되기 시작했고, 1984년 멕시코 정부는 그녀의 작품을 국보로 분류하였다.
잘 나가는 세일즈맨 해리의 차에 어느 날 생면부지의 청년이 무단 승차한다. “나…나…나, 다운증후군이다.”라고 소개하며 오르는 조르주. 영화 <제8요일>의 한 장면이다. 그 다운증후군역에 감독 자코 반 도마엘이 파스칼 뒤켄을 캐스팅한 이유는“다운증후군 역을 가장 잘할 수 있는 건 다운증후군”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연극무대에서 활동하던 뒤켄을 불러들였고, 이 시도는 성공하여 영화는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한 두 남자가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고 인정하며 행복을 발견하는 과정을 지극히 선량하게 그려내 세일즈맨 헤리역의 다니엘 오퇴유와 다운증후군 연극배우 파스칼 뒤켄이 나란히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게 하였다. 다운증후군의 장애인이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는 사실은 실로 놀라운 사실이다. 우리의 현실에서는 어디 생각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시상식 직후 기자회견에서 뒤켄은 선배 배우이자 통역자가 돼버린 다니엘 오퇴유의 어깨에 고개를 비스듬히 기대고 기쁨에 들뜬 소리로 말했다고 한다. “매우…매우… 기쁘다. 고맙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시각장애인으로 일컬어지는 흑인 소울 가수 레이 찰스. 그는 공황기에 플로리다 주 흑인 빈민촌에서 성장했는데 다섯 살 때 큰형이 목욕탕에서 익사하는 것을 본 뒤 그 충격으로 시력을 잃었다고 한다.
그후 미국 전역을 피아노를 벗 삼아 방랑하며 소울 가수로서의 명성을 쌓아왔고, ‘소울의 천재’라는 음악적 명성만큼이나 숱한 화제를 뿌려왔다. 17년에 걸친 헤로인 중독으로 세 번에 걸쳐 구속된 것을 비롯하여, 총 일곱 명의 여성과 아홉 명의 자녀를 둔 열정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90년대 초 마약을 끓고 정상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하자 PBS 방송국에서 그의 인생을 다큐영화로 제작할 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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