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News

‘시편’ 강의, 아흔살 김흥호 목사에게 듣다 <상>

金 敬 峯 2009. 6. 26. 19:16

폐암과 싸우며 ‘시편’ 강의, 아흔살 김흥호 목사에게 듣다 <상> [중앙일보]

21일 오전 9시 서울 대현동 이화여대의 대학교회 연경반(硏經班) 강의실. 올해 구순인 김흥호 목사의 ‘일요강연-시편’을 듣기 위해 150여 명이 자리를 꽉 메웠다. 청중 셋 중 하나는 대학교수라고 한다. 수십 년째 김 목사 강의를 듣는 이들이 반 이상이었다. 미국·영국·프랑스·독일 등 해외에서도 매주 김 목사의 강의를 동영상이나 e-메일로 보는 이들이 꽤 있다.

김흥호 목사가 이화여자대학교 대학교회의 연경반 강의에서 한문 성경의 시편부분과 동양 고전인 양명학의 구절을 비교하면서 강의를 하고 있다. [김태성 기자]

김흥호 목사는 한국 기독교계의 대표적인 영성가다. 그는 35세 때 ‘시간제단(時間際斷·시간의 끊어짐)’을 체험했다고 한다. 40년 넘게 기독교뿐 아니라 불교와 도교, 유교의 경전까지 줄줄이 관통하며 강의를 하고 있다. 하루 한 끼만 먹는 일일일식(一日一食)을 55년째 행하고 있다. 이번 학기에는 구약성경 중 ‘시편’을 강의했다. 그의 강의는 놀랍다. 성경 속 메시지가 그의 목청을 통해 꿈틀대는 메아리, 살아있는 생명으로 쉴새없이 밀려온다. 14일과 21일, 두 번에 걸쳐 강의를 마친 그와 마주 앉았다. 김 목사는 담담하게, 또 단호하게 물음에 답했다. 김 목사와의 인터뷰를 2회에 걸쳐 싣는다.



-지난해 청중에게 ‘시편 강의를 하겠다’고 약속하고 난 참인데 병이 났다고 들었다.

“8월에 폐암 진단을 받았다. 의사에게 물어봤다. ‘얼마나 더 살 수 있나?’ 그랬더니 ‘그냥 놔두면 3개월, 수술하면 알 수 없다’고 하더라. 그냥 3개월 살고 죽을까도 했다. 그런데 ‘시편’ 강의를 약속한 게 자꾸 마음에 걸리더라.”

-어떤 수술이었나.

“폐의 5분의 1을 도려내는 수술이었다. 의사는 ‘수술하면 살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시편’ 강의를 끝내고 싶었다. 그래서 수술을 받았다.”

-목사님은 한국 기독교계에서 손꼽히는 영성가다. 폐암이라니 뜻밖이다.

“나는 담배 먹는 사람이 아니다. 처음에는 나도 상당히 의심했다. 내가 왜 폐암에 걸렸을까. 요전에 ‘동물의 왕국’이란 TV프로그램을 봤다. 수십 년간 돌고래를 연구한 학자가 그러더라. 돌고래는 본래 자연이기 때문에 병이 없다. 우리가 앓다가 낫는 것도 몸이 하나의 자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암에 걸린 돌고래가 꽤 있다고 그 학자는 설명했다. 인류가 자연을 너무 학대해 돌고래까지 암에 걸려서 죽는다는 것이다. 그런 말을 들으며 (암의 이유에 대해) 위로를 받는다.“

-‘시편’ 강의를 위해 수술까지 했다. 왜 ‘시편’인가.

“마르틴 루터(1483~1546, 독일의 종교개혁가)는 ‘시편은 나의 전부요, 내 심장이다’라고 했다. 시(詩)가 뭔가. 사람의 가슴이 폭발하면서 터져나오는 게 시다. 가슴이 터지면서 나오는 생명을 적은 게 시다. 김소월의 시도 그렇고, 윤동주의 시도 그렇다. 그래서 ‘시편’을 읽으면 하나의 생명을 읽게 된다.”

-그 ‘시편’이 우리에게 어떤 도움을 주나.

“‘시편’은 우리의 가슴을 터지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생각해보라. 한 번도 가슴을 터뜨리지 못하고 죽으면 얼마나 한스럽겠나.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많다. 혼자서 가슴을 터뜨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하나님을 부르고, 설교를 들으면서 자기 가슴을 한번 터뜨려보는 거다. 그래서 종교가 있는 거다.”

-목사님은 35세 때 ‘시간제단’을 경험했다고 했다. 그 순간이 가슴이 터지는 순간이었나.

“그렇다. 깨닫는다는 건 시간이 끊어지는 거다. 왜 시간이 끊어지느냐. 시간과 공간이 곱해지기 때문이다. 실은 우리 모두가 4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다. 다만 죄의식이 인간을 3차원 공간에 가두고 있을 뿐이다.”

1919년생인 김흥호 목사는 ‘가슴 터짐’을 ‘일제로부터의 해방’에 빗댔다. “우리가 해방을 맞았을 때 얼마나 기뻤나. 그럴 때도 가슴이 터졌다.” 그는 교회에서 도산 안창호 선생도 만났고, 조만식 선생도 만났다. 그들과 함께 나라를 위해 애도 썼다. 김 목사는 “성경을 놓고 말하면 진리를 깨달을 때 가슴이 터진다. 그때는 한없이 기쁜 거다”라고 말했다.

-누구는 가슴이 터지고, 누구는 터지지 않는다. 왜 그런가.

“누구나 가슴이 터질 수 있다. 그러니 준비를 해야 한다. 공자는 15년 동안 거기에 몰두했다. 밥 먹는 것도 잊고 몰입했다. 그걸 『논어』에선 ‘발분망식(發憤忘食·끼니마저 잊고 힘쓰다)’이라 했다. 그냥 되는 건 아니라는 거다. 예수도 40일간 금식하며 기도했다.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 그저 놀면서 가만히 앉아 있는데 진리를 깨닫는 건 아니다. 내가 몰두를 해야 한다. ”

-몰두하면 어찌 되나.

“몰두하면 ‘나’라는 게 없어지고 만다. 그때 하나님의 세계가 보이고 찬양하게 된다. ‘발분망식’하면 ‘나’가 없어진다. 그럴 때 기쁨이 나온다. 기쁨은 항상 무아(無我)에서 나온다. ‘나’가 있으면 기쁨이 나오지 않는다. 나는 6년간 ‘유선생, 유선생’하면서 다석 유영모(1890∼1981) 선생을 좇아 다니며 몰두했다. 몰두가 중요한 거다.”

-보통 생활인에게 몰두는 쉽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생의 기쁨은 90%가 진리탐구에 있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진리탐구가 없다면 어디서 기쁨을 찾겠는가. 진리는 깨닫는 거다. 지식으로는 안 된다. 아는 것으로는 안 된다. 지식보다는 시와 노래가 더 직접적이다. 그래서 ‘시편’에서 ‘할렐루야!’하는 거다. 할렐루야가 뭔가. 진리를 깨닫고, 생명을 깨달을 때 나오는 찬양이다. 그럴 때 하루를 살아도 영원을 사는 거다. 그래서 어제도 할렐루야, 오늘도 할렐루야, 내일도 할렐루야다. 운문 선사는 그걸 ‘날마다 좋은 날(日日是好日)’이라고 했다. 이것이 기독교의 핵심이고, 불교의 핵심이다.”

백성호 기자 , 사진=김태성 기자

◆김흥호 목사=1919년 황해도 서흥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기독교 목사였다. 평양고보를 나와 일본 와세다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일본 유학 시절, 무교회주의에 영향을 받았다. 해방 후 귀국해 용강중학교를 설립, 교장을 맡았다. 조만식 선생의 제자로 활동했으며, 다석 유영모 선생 밑에서 6년간 공부했다.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와 교목실장, 감리교 신학대학 종교철학과 교수 등을 역임했다. 46세 때부터 이화여대 대학교회 강당에서 기독교를 비롯해 유·불·선 경전을 풀어내는 ‘연경반 강의’를 시작했다. 연경반 강의는 누구나 들을 수 있으며 무료다.

◆‘시편’=구약성서 속의 대표적인 시가서(詩歌書). 기원전 1000년부터 약 1000년에 걸쳐 이스라엘 왕국 각 시대에 기록된 종교시의 집대성이다. 총 150편으로 구성돼 있다.

조인스 닷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