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을2

길 위에서 / 나희덕

金 敬 峯 2009. 9. 28. 15:06

 

길 위에서 / 나희덕

 

길을 잃고 나서야 나는
누군가의 길을 잃게 했음을 깨닳았다
그리고 어떤 개미를 기억해내었다
눅눅한 벽지 위 개미의 길을
무심코 손가락으로 문질러버린 일이 있다

돌아오던 개미는
지워진 길 앞에서 두리번거리다가
전혀 엉뚱한 길로 접어 들었다
제 길 위에 놓아주려 했지만
그럴수록 개미는 발버둥치며 달아나버렸다

길을 잃고 나서야 생각한다
사람들에게도
누군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냄새 같은 게 있다는 것을,
얼마나 많은 인연들의 길과 냄새를
흐려 놓았던지, 나의 발길은
아직도 길 위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나희덕 (1966~ )


자신의 시를 관능적으로 보아주길 바란다고 말하는 시인, 나희덕. 충남 논산이 고향인 시인에게 특별한 이력이 있다면

고아원에서 자랐다. 부모님이 에덴고아원의 총무였던 탓이다.

"고아원 밖에서는 고아원 아이라고 왕따하고, 고아원 아이들은 총무 딸이라고 저를 따돌렸어요.

제가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는 학생운동의 시절이었는데 저 또한 내면의 싸움이 치열했어요.

고아원과 고아 원 밖, 역사적 존재와 회의적 출세주의자. 그 경계선상에서의 긴장이 저를 시의 길로 인도한 것 같아요.

" 시인은 그렇게 자신의 경계선상에서의 긴장을 말한다. 시인이 생각하는 관능이란 "섹슈얼하다는 것만은 아니지요.

세상을 열린 눈으로 포옹하려는 것, 자신의 감각과 내면을 풍요롭게 여는 것, 생명을 연 민하는 에너지 등이 다 ‘관능’이지요.

생명의 근원인 관능적인 에너지가 없으면 대상의 영혼을 잡지 못해요."라는 것이다.

불완전하기에 끊임없이 길을 떠나는 유목민이 바로 시인이라는 그녀. 시인의 길로 들어선 건 1988년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수원에서 국어 교사를 하며 혼자 자취하던 때부터라고 한다.

‘홀로의 시간’을 채우기 위해 부지런히 시를 썼고, 대학 시절 습작시랑 새로 쓴 시들을 모아 신춘문예에 응모하여

1989년 스물셋의 어린 나이로 등단한다. 김수영 문학상 수상 (1998년)

 

 

 

 

 

출처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글쓴이 : 이슬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