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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이야기

金 敬 峯 2009. 12. 4. 22:54

 

   성경 이야기

 

기독교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무오한(오류 없는) 절대적 사실임을 인정하는 종교입니다.
성경에 있는 모든 내용이 역사적 사실이고,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내용이며, 앞으로 일어날 사실에
대한 예언임을 확실히 믿는 것이 바른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하나님은 그 분의 능력으로 말씀을 보존하셔서 이 시대 우리가 믿고 의지할 무오한 성경을 주셨습니다.

시편 12/7 오 주여, 주께서 이 말씀들을 간수하시리니 주께서 이 세대로부터 영원토록 그것들을 보존하시리이다.

그런데 요즘 성경에 있는 내용을 믿지 못하고 이성적으로 재해석하는 자유주의나, 성경의 진리를 아예 무시하고
방언이나 병고침의 은사만 추구하는 은사주의가 기독교 내에서 횡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무신론자들은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 고대 신화를 짜집기 한 것이나 꾸며낸 이야기라고 선전하면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핑계거리로 사용합니다.

디모데 후서 3/16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여금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

벧후1:20~21 먼저 이것을 알라. 성경 기록의 대언 중 어떤 것도 사적인 해석에서 난 것이 없나니 이는 대언이
옛적에 사람의 뜻으로 말미암아 나오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감동을
받아 말하였음이라.

성경의 모든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사람이 기록한 것으로 구원에 관한 교리와 잘못에 대한 책망과 죄에
대한 바로 잡음과 의롭게 교육하기 위한 것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완전하게 해서 모든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철저히 갖추기 위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성경이 사람의 사사로운 뜻에 의해 쓰여지지 않고, 성령의 감동에 따라 쓰여졌다고 했습니다.

성경의 원본은 소실되었지만 수 많은 필사본이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성경이 확실히 존재했음이
증명됩니다.
서로 다른 시대 다른 저자에 의해 쓰인 성경이 모순되지 않고 일관성과 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수 많은 예언이
과거에
정확하게 성취되었고, 현재도 성취되고 있음이 성경의 권위를 입증합니다.
또한 성서 고고학을 통해 성경에 기록된 일들이 고대 유물이나 고대 문서를 통해 역사적 사실임이 밝혀집니다.

본래 '성경(Bible)'이라는 단어는 책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생각으로 만든 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책입니다.
우리가 어떤 책을 알면 저자의 생각을 알 수 있듯이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의 품성과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만물은 변하고 결국 썩어 없어지지만 처음과 나중이신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요한 17/3 영생은 이것이니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영생을 얻는 방법은 오직 유일하신 참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아는 것입니다.
'내가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아무리 인간 스스로 고민해도 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답을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인간의 철학이나 사상은 다 불확실한 추측이요 가정일 뿐입니다.
절대로 인간 스스로 사망을 피할 수도, 심판을 피할 수도, 영생을 얻을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고 따르는 것은 구원 받는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A. 1부

1. 성경의 기록

2. 구약 성경의 신빙성

3. 신약 성경의 신빙성

4. 성경의 보급

5. 성경의 구성

6. 구약과 신약의 차이점

7. 성경에 사용된 언어들

8. 성경의 목적

9. 성경을 읽는 법

 

B. 2부

10. 성경의 과학성

 

C. 3부

11. 성경의 보존

12. 성경 필사본

13. 바른 사본과 변개된 사본

14. 오리겐과 성경 부패

15. 로마 카톨릭의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박해

16. 예수회의 음모

17. 웨스트코트와 호르트

18. 킹제임스 성경

19. 킹제임스 성경의 제작과정

 

D. 4부

20. 킹제임스 성경의 우수성

21. 성경을 위해 순교한 틴데일

22. 한글킹제임스 성경과 개역한글 성경의 차이

23. 개역한글, 표준새번역, 개역개정판, 현대어 성경의 역사와 실체

24. 결론

 

 

1. 성경의 기록

성경은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하에서 기록한 말씀이고(출 34:27), 하나님의 영이 사람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며,
사람의 입을 통하여 하신 하나님의 말씀이고(삼하 23:2), 그 영의 감동을 입은 사람들이 한 말씀입니다(막 12:36)
.

구약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 안에서 말씀하신 것이며, 신약은 하나님께서 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 안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히 1:1-2)
.
그러므로 그것이 구약의 선지자의 말이든 신약의 주님의 말씀이든 모두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며,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구약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한 말씀이고(렘 1:7), 선지자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이며(겔 1:3),
하나님의 영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입니다(슥 7:7, 행 3:18, 28, 25, 롬 1:2, 벧전 1:10-12).

신약의 어떤 부분은 하나님이 주 예수 안에서 말씀하신 것이고(요 14:10), 반면 다른 부분은 제자들이 그 영의 가르침을
받아 기록한 말씀입니다(고전 2:13).

사도들이 그 영의 가르침을 받아 기록한 말씀은 구약 성경만큼 신성합니다(벧후 3:15-16).
그러므로 전체 성경의 기원은 하나님이며 각 낱말과 문장과 일점 일획(마 5:18)은 하나님이 불어넣으신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은 거룩한 말씀에 무엇을 더하거나 거기서 어떤 것을 제해서는 안 됩니다(계 22:18-19).

구약 성경이 기록된 두루마리

두루마리의 원료가 되는 파피루스

성경을 기록하는 랍비

성경은 약3,500년 전의 모세로부터 시작하여 약1,900년전의 사도 요한까지 약1,600년에 걸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기록한 것입니다.
구약의 모든 말씀은 기록 된지 2,000년이 넘었고 신약은 1,900년이 넘은 것입니다.

히브리서3:4절에는 집마다 지은이가 있듯이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이 우리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이사야 45장 18절)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종 선지자들에게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시고 아직 되지 않은 일을 옛적부터 보이시고 기록하게
하셨습니다.(사46:10)

하나님은 이렇게 성경에다가 세상의 끝날 뿐만 아니라 천국과 지옥까지 자세히 기록하셨습니다.
신명기 18:21∼22절에 보시면 선지자를 통하여 기록한 이 말씀에는 증험(증거와 경험)과 성취함(예언의 성취)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확인이 가능하지요.
만물을 통하여(롬1:20) 역사적 사실을 통하여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가져도 만족함이 없는 재물, 죽으면 한 푼도 가져가지 못할 재물을 위해서도 평생을 애태우며 수고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영원한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에 대하여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것도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아보고 천국의 소망을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집 나간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처럼 죄악을 짓고 사는 우리 인생들을 향하여 돌아오라고 간절히 부르고 계십니다.

사람들이 구원 받지 못해 지옥을 가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돌아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간절히 찾는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입니다.
위에 나타난 그림들은 두루마리 성경으로 이스라엘 민족들이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받고 전세계에 흩어져
박해와 저주와 조롱을 당하고 죽어가기 전에 쿰란의 동굴 속에 숨겨둔 것인데 1947년에 한 청년이 이 동굴 속에서
발견한 것입니다.

이곳에서 약 800개의 두루마리 사본이 발견되었습니다.
쿰란 동굴에서 사본이 발견되기 전에 많은 사본이 다른 곳에서도 발견되었기에 전세계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이 되었고
우리 나라 언어로도 1884년에 번역이 되어 있었습니다.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사 년에 여호와께로서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가라사대 너는 두루마리 책을
취하여 내가 네게 말하던 날 곧 요시야의 날부터 오늘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와 열방에 대하여 나의 네게 이른 모든 말을
그것에 기록하라.(렘36:1∼2)"

"다리오 왕 이 년 유월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학1:1)"

"칠 월 곧 그 달 이십일 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학2:1)"

"먼저 알 것은 경(經)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1:20)"

 

 

2. 구약 성경의 신빙성

그럼 이제부터 구약성경은 어느 정도의 신빙성이 있는가를 살펴 보겠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1940년대까지만 해도 가장 오래된 구약성경 사본은 기원 후 900년 경에 기록된 맛소라 사본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의심을 받아 왔습니다. 구약성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서가 기원전 400년 경에 기록되었고, 맛소라 사본은 그로부터 1300년이나 후에 쓰여진 사본이므로 많은 오류가 포함되었을 것이라는 의심을 받아왔습니다.

그런데, 1940년대 중반에 굉장한 발견이 이루어졌습니다. 1945년 이스라엘 동부지역 사해바다 부근의 쿰란언덕에서 베드윈 목동이 잃어버린 양을 찾다가, 동굴속에 들어갔을 양을 찾기 위해 돌을 던져 보았습니다. 일일이 들어가 보기가 어려우니까 호주머니에 돌을 넣고 다니다가 동굴안에 던져 본 것이지요. 그러다가 양이 있으면 돌을 맞고 소리를 내지 않겠습니까?

그런 식으로 양이 있는 것을 확인하려 한 것이지요. 그런데, 한번은 양 소리가 안 나고, '쨍그랑' 소리가 났습니다. 그래서 혹시 누가 보물상자를 묻어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동굴안에 보물은 없고 항아리가 있었는데, 그 안에 쓸데 없어 보이는 가죽 두루마리가 있었습니다.

목동은 이것을 '별 볼 일 없구나. 엿이나 바꾸어 먹자'라고 생각하고 아주 싸구려 값으로 골동품 상에게 팔았습니다.
그 골동품 상도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래도 이것이 뭔가 비싼 것일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훨씬 비싼 값으로 시리아 정교회의 주교에게 팔았고, 그것이 미국으로까지 건너갔다가 이스라엘 구약학자의 집념의 추적 끝에 엄청난 액수의 돈을 지불하고 비밀거래로 이스라엘로 돌아와 연구됨으로써 BC 125년 경에 기록된 구약성경의 사본, 즉 사해사본이라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사해사본은 말라기 서가 기록된 지 불과 270여년 밖에 되지 않은 때 기록된 것이었습니다. 맛소라 사본이 1300년이나 후에 기록되었다고 비난이 심했는데, 사해사본의 발견으로 인해 공백기를 1100년이나 줄여 놓게 되었고, 구약성경 마지막 책 말라기서 원본이 쓰여진 뒤로 270여년으로 사본의 연대를 좁히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많은 고고학자들이 사해 바다 부근 쿰란지역의 11개의 동굴에서 구약성경사본뿐 아니라 신약성경사본도 일부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맨위의 그림은 사해바다 근처 언덕에 사해사본이 발견된 쿰란 동굴지역입니다. 여기저기 동굴들이 많이 보이지요. 그러한 동굴 중의 하나가 그 아래 그림처럼 생겨 있고, 저 멀리 사해 바다가 보입니다. 가파른 언덕위의 동굴에 많은 고고학자들이 들어가서 참으로 귀한, 양피가죽에 기록된 구약성경 사본들을 발견한 것이지요.

그 구약성경들은 왼쪽 그림과 같은 항아리, 즉 장독 속에 들어가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오른쪽 그림은 사해사본의 이사야 서가 기록된 부분을 펼쳐서 보인 것입니다. 물론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지요. 사해사본은 예루살렘에 있는 '책의 전당'에 보관-전시되어 있으며 그 건물은 항아리 두껑모양으로 되어있는데 폭탄이 떨어져도 파괴되지 않도록 튼튼하게 건축되어 있습니다.

사해 사본과, 1025년 후에 만들어진 맛소라 사본, 이 두 개가 얼마나 비슷한가를 비교해 보았더니 놀랍게도 두 사본은 완전히 일치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맛소라 사본은 사해 사본과 똑같은 성경이었고, 그 이전 성경의 원본과도 똑같을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모세가 기록하고 여러 선지자들이 기록한 그 성경과 똑같은 성경인 것입니다. 신약성경은 그리스말 헬라어로 기록되어 있고, 구약성경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성경을 이렇게 천년이나 지나도록 한 자의 오차없이 정확하게 보관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유대인의 풍습속에서 발견됩니다. 유대인중에서는 오로지 성경만을 복사하는 성경복사 전문가들이 따로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탈무디스트(Talmudist)라고 불리었는데, 그 탈무디스트들은 성경을 복사하는데, 열아홉가지의 복사규칙이 있었습니다.

복사규칙 중에 몇 가지를 살펴보면, 첫째, 항상 같은 복장을 입고 복사를 해라. 이 옷 저옷 바꿔 입으면, 마음도 바뀌고 태도가 바뀔 수가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검은색 잉크만을 써라. 이색 저색 쓰면 마음이 산란하다는 것이지요. 또 깨끗한 동물가죽 위에다 복사하고, 글씨와 글씨 사이의 간격은 가능하면 좁게 써서 머리카락 하나 정도 들어갈 정도로 빡빡하게 써라. 나중에 문선명이나 어떤 이단들이 자기 뜻대로 추가시켜 '그게 내니라' 하면 안되지 않습니까? 엉뚱한 결과를 방지하기 위해서지요.

그리고 평생 성경을 베끼다 보면, 한 예로 시편 23편 같은 경우는 완전히 외었을 것 아닙니까? 그렇지만 외워서 써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잘 아는 귀절도 암기력에 의존하지 말고 반드시 원본을 보고 써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 즉 '야훼', '엘로힘' 이런 말을 쓸때는 왕이 들어올지라도 절대로 쳐다 보지도 말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혹시 잘못 쓰면 큰일 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실제로 탈무디스트들이 성경을 복사하다가 앗시리아, 바빌로니아 등이 침공하여 야훼 이름 쓸 때 일어나지 않아서 칼에 맞아 죽은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베낄 때는 방금 베낀 사본을 보고 베끼지 말고 원래 베꼈던 원본을 보고 베끼라 하는 등등의 철저한 규칙속에서 복사를 했기 때문에 사해사본이나 맛소라 사본의 기록이 똑같이 유지되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목숨을 걸고 성경을 지켜온 것입니다.

위 그림은 현대의 탈무디스트들이 히브리어로 성경을 복사하는 실제 광경입니다.

 

 

3. 신약 성경의 신빙성

그러면 신약성경과 호머의 일리아드를 고서검증법으로 한번 비교해 보겠습니다.

보시는바와 같이 일리아드는 사본의 수가 643개이고, 최초의 사본은 500년 후인 기원전 400년에 기록되었고, 책과 책 사이의 오류가 5%입니다. 그 반면에 신약성경은 사본의 수가 무려 24,633권이나 되고 원본이 만들어진 AD100년에서 최초 사본이 나타난 것은 불과 25년 후에 바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본 사이의 오류의 정도는 0.5%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결국 일리아드의 정확성과 신약성경의 정확성을 비교해 보면, 일리아드를 정확도 1로 잡았을 때 신약성경은 8000배나 더 정확한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객관적인 검증결과입니다. 세익스피어의 희곡에 비해서는 더욱 더 정확한 책으로 검증이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책중에서는 제일 정확한 책인 것은 알겠는데, 0.5%는 왜 오차가 있느냐 하는 것을 문제 삼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오차의 내용을 분석해 보면, 0.5% 중에서 80%에 해당되는 0.4%는 철자의 잘못으로 밝혀졌습니다. 즉 "모든 교회에게 문안하노라" 하는 내용이 "모든 고회에게 문안하노라" 하는 식이지요. 이것은 누가 봐도 '교회'를 '고회'로 잘못 썼구나 하는 것을 금방 알 수 있고, 문장을 잘못 이해하는 일은 없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나머지 20%는 접속사의 오류로 밝혀 졌습니다. 즉 'A 그리고 B 그리고 C'라는 내용이 'A 콤마(,) B 콤마(,) C'하는 식으로 접속사가 생략된 것입니다. 이것 역시 누가 봐도 문장을 잘못 이해하는 일은 없다는 것이 밝혀졌으며, 비록 오류 자체는 0.5%이지만 사실은 오류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판정되었습니다.

  오른 쪽 그림은 파피루스에 기록된 신약성경 히브리서 입니다.


  왼쪽 그림은 초대교회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기록하였던 필기도구들입니다. 요즈음과 같은 볼펜이나 만년필은 없고, 단순한 펜에 먹을 찍어서 파피루스나 양피가죽 등에 기록하였습니다.

 

 

4. 성경의 보급

카톨릭 신부였던 마르틴 루터가 성경보다 전통을 더 숭상하는 것은 잘못이다,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하여 시작된 것이 종교개혁입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성공을 한 이유가 여러 가지 있지만 그 중에서 굉장히 중요한 이유는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개발입니다. 그 귀하고 만지지도 못하던 성경을 대량으로 찍어내게 되자, 성경을 너나 나나 다 볼 수 있게 되니까, 루터가 성공한 것입니다. 시대적으로 어긋났다면, 실패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하여 성경이 역사를 바꾸게 된 것입니다.

 그 성경이 중국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중국어 성경이 만들어진 뒤, 급히 한국말로 다시 번역한 것이, 한말에 서상윤 등이 「예수셩교젼셔」라고 해서 처음으로 성경전서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예수셩교전셔 요한복음 제 1장을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요안네 제일장. 처음에 도가 이샤되 도가 하나님과 함께 하니 도난 곳 하나님이라. 이 도가 처음에 하나님과 함께하뫼 만물이 말무암아 다 지여사니, 지은바난 한나도 말무지 않고 지음이 없나니라..." 그때는 '말씀이 계시니라' 해서는 아무도 듣지 않습니다. '말'이라는 단어를 수준 낮게 보는 것이지요. '도' 틔는 이야기를 해야 실감이 난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도'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5. 성경의 구성

전체 성경은 구약과 신약 두 부분으로 나뉘어집니다.

a) 구약

구약은 성경의 전반부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39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분류하면:

- 율법서 : 이것은 창세기에서 신명기까지 모두 5권을 포함하고 있으며 율법서라고 불린다.
왜냐하면 그 안에 율법을 형성하는 계명과 율례와 규례가 있기 때문이다.

- 역사서 : 이것은 여호수아에서 에스더까지 모두 12권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때로부터 포로에서 귀환하기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역사서라고 불린다.

- 시가서 : 이것은 욥기에서 아가까지의 모두 5권을 포함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백성들의 여러 가지 체험을 시적인
용어로 토해 낸 것이다.

- 신언자서(申言者書) : 이것은 신언자들에 의해 쓰여진 책으로 이사야에서 말라기까지 모두 17권으로 되어 있고
주요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방인들과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들이다.

 

b) 신약

신약은 성경의 후반부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27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분류하면:

- 역사서 : 이것은 마태복음에서 사도행전까지 모두 5권을 포함하고 있으며, 처음 4권은 주 예수님의 역사이고
마지막 한 권은 주님의 승천 후, 지상에서의 제자들의 행동에 관한 기록이다.

- 서신서 : 이것은 로마서에서 유다서까지 모두 21권을 포함하고 있으며 교회들이나 성도들 개인에게 보내어진,
사도들에 의해 쓰여진 서신들로서 특별히 교회에 대하여 말하며 교회와 성도들의 영에 속한 생명과 생활에 있어야
할 합당한 상태에 대하여 말한다.

- 예언서 : 이것은 오직 요한 계시록 한 권으로 되어 있으며 신약을 결론짓는 책이고 전체 성경의 마지막 책이다.
책의 내용은 교회와 이스라엘과 세상과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과 사탄의 종말과 최종적인 심판과 내세와 영세에 대한
예언들을 포함하고 있다.

 

 

6. 구약과 신약의 차이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약과 구약의 차이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신약과 구약을 공부할 때 우리는 먼저 이 용어들, 즉 약속, 맹세, 언약, 유언의 차이를 알아야 합니다.

약속은 하나님이 당신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주시겠다는 그분의 평범한 말씀입니다.
맹세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의 확증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약속의 말씀을 맹세로 확증하셨습니다(히 6:13, 17).
이 약속이 맹세로 확증될 때 그것은 즉시 언약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은 단순한 약속의 평범한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이 맹세로 확증하시고 그분의
신실함으로써 인 치신 언약입니다.
언약한 그 분이 죽었을 때 그 언약은 유증, 곧 유언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그 언약은 더 이상 언약이 아니라 언약을 하신 분이 유증하신 유언입니다.

a) 신약과 구약 - 하나님이 사람과 맺으신 두 언약

신약과 구약은 하나님이 사람과 맺으신 두 언약으로서, 사람은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신약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의 연속입니다.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주셨고, 후에 그에게 또 맹세하셨습니다(창 22:16).
그러므로 그 약속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하신 언약이 되었습니다(갈 3:15-17).
2000년이 지나서 하나님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고, 그는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고
새 언약을 제정하셨습니다.(눅 22:20).

이 시점에서 새 언약이 성취되었고, 더 나아가 그것은 주님의 죽으심으로 인하여 유증이 되었습니다.
구약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하신 후 440년이 지나서 그분이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신 시내산에서
제정되었습니다.
엄격히 말해서 구약은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구약 전체를 포함하지는 않습니다.

실제로는 출애굽기 19장부터 시작해서 침례 요한의 때까지 이어졌습니다.(마 11:12-13).
침례 요한의 때로부터 주 예수의 죽음과 부활 전까지는 구약과 신약 시대 사이의 과도기였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대하시는 방법은 옛 언약―율법―에 따른 것이었지만, 신약에서는 새 언약―은혜―을 따릅니다.

 

b) 구약

1) 더해지고 폐해진 언약

로마서 5장 20절은, "율법이 들어왔다"고 말한다.
이 말씀은 율법이 하나님의 원래의 의도가 아니었으며,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원래의 정하심도 아니었음을 의미한다.

오히려 그것은 후에 들어온 것이며, 도중에 더해진 것이었다.
사람의 실패와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율법을 더하셨다.

a. 율법은 하나님의 인격과 속성 안에서 그분을 타락한 사람에게 표현한다.
b. 율법은 사람의 범죄를 밝혀 준다.
c. 율법은 사람이 하나님을 그분의 거룩함과 의로움과 영광에 따라 표현할 능력이 없는 진정한 상황을 드러낸다.
d. 율법은 몽학 선생으로서 사람을 보호하여 그리스도께 인도한다.
e. 율법은 사람으로 그리스도를 믿게 하고 그분을 은혜로 영접하게 하여, 그로 율법의 요구에 따라 하나님을 믿고 살고 표현할 수 있게 한다(갈 3:19, 22-26).


구약은 더해진 것이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원래의 의도가 아니었으므로 영구히 남아 있을 수 없었다.
오히려 그것은 낡아지고 쇠하고 사라졌다.(히 8:13).


2) 모세의 손을 빌어 명해졌음

갈라디아서 3장 19절은, 율법은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중보는 모세를 말한다.(요 1:17, 출 24:3).
그러므로 율법은 모세의 손을 통해서 명해졌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율법을 주시는 것이 유쾌하고 달콤한 것이 아니었음을 가리킨다.
그렇지 않으면 그분이 직접 하셨을 것이다.


3)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세운 것임

사람은 범죄했고, 피 흘림이 없으면 사함이 없다.(히 9:22).
죄 사함이 없으면 하나님의 의의 요구를 이룰 수 없다.
언약은 하나님의 의로 인해 맺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은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세워졌다.(히 9:18-20, 출 24:6-8).


4) 그 조건으로서 생명을 주지 못하는 율법에 근거함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사람을 율법에 따라 다루셨다.
구약은 율법을 지키는 사람은 복을 얻고(신 6:1-3).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않는 사람은 저주 아래 있다(갈 3:10)고 말한다.

율법은 단지 요구하고 정죄할 뿐이며, 생명을 주지 못한다.
갈라디아서 3장 21절은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상 사람은 율법으로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율법은 다만 요구하고 정죄할 뿐이며, 생명을 주지 못하고 사람으로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을 얻을 능력도
주지 못한다.


5) 사람으로 수고하게 할 뿐 믿음을 주지 못함

갈라디아서 3장 12절은,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고 말한다.
율법은 믿음에 속한 것이 아니며, 행위에 속한 것이다.

율법은 믿음의 원칙에 근거하지 않고, 행위의 원칙에 근거한다.
사람은 살기 위하여 율법을 준행해야 한다.
그러므로 모세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러면 너희가 살 것이요"(신 4:1, 5:1 6:1, 25).


6) 오직 구약 시대에만 적용됨

히브리서 8장 13절은 구약을 언급하면서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고 말한다.
예레미야 31장 31절부터 34절까지의 다가올 새 언약에 관한 예언은 첫 언약은 낡고 쇠해졌다는 것을 가리킨다.

아마도 예레미야는 옛 언약의 약함과 무익함을 깨달았을 것이며.
이것에 관하여 깊이 부담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러 들어올 기회를 붙잡았다.
"주께서 가라사대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새 언약을 세우리라"(히 8:8).

구약은 쇠했을 뿐 아니라 사라져 갔다.
그러므로 그것은 구약 시대에만 적용될 수 있었다.

 

c) 신약

신약 혹은 새 언약은 더 좋은 언약이다(히 8:6).
새 언약은 실제의 사람이 사진보다 더 나은 것처럼 옛 언약보다 더 좋은 언약이다.
옛 언약은 사진처럼 단지 밖의 형태뿐이지만, 새 언약은 실제의 사람과 같이 내적 생명과 모든 실제를 갖고 있다.

옛 언약은 생명이 없지만, 새 언약은 파괴되지 않는 생명으로 조성되어 있다.(히 7:16).
새 언약의 모든 것은 생명으로 조성된 실제이기 때문에 옛 언약의 모든 것보다 훨씬 더 좋다.

그러므로 더 좋은 언약인 것이다.
더 나아가 새 언약은 영원한 언약이다(히 13:20).
낡아지고 쇠하고 폐지된 옛 언약(히 8:13)과 달리 새 언약은 영원한 효력이 있다.

 

1)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셨음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성취하셨다.
주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고 피를 흘리셨을 때, 그분은 하나님이 우리와 새 언약을 세우실 길을 여셨다
(마 26:28).

모세의 손을 빌어 제정된 옛 언약과 달리, 새 언약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신 주 예수께서 직접 세우셨다.


2)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피로써 세워짐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잡수신 후에, 주님은 떡과 잔으로 그분의 상을 세우셨다.
그 분은 잔을 들어서,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눅 22:20)라고 말씀하셨다.
새 언약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세워졌다.

요한 일서 1장 7절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하신다고 말한다.
그분의 피는 하나님의 의의 요구를 만족시켰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와 새 언약을 제정하실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그러므로 새 언약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피를 통하여 제정되었다.
그것은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세워진 옛 언약과 같지 않다.


3) 그 조건으로서 생명을 주는 은혜에 근거함

이제 우리는 새 언약 안에 있으므로 더 이상 율법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롬 6:14).
은혜는 성육신과 인생과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의 과정을 거치신, 우리에게 모든 것 되시는 삼일 하나님이다.

그분은 우리의 구속이요, 구원, 생명, 성화가 되신다.
새 언약은 그 조건으로서 생명을 주는 은혜에 근거한다.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은 새 언약 안에서 우리의 모든 것이 되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새 언약은 사람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요구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을 은혜에 따라 대한다.
은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시는 하나님이시다.


4) 사람에게 행할 것을 요구하지 않고 다만 믿기를 요구함

로마서 11장 6절은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고
말한다.
율법이 전적으로 행위에서 나온 것이라면, 은혜는 절대적으로 행위에 속한 것이 아니다.
행위에서 나온 것은 은혜가 아니라 율법이다.

요한복음 3장 15절은,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신약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행할 것을 요구하지 않고, 다만 믿기를 요구하신다는 것을 매우 명백하게 보여 준다.

신약 시대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심판하시는 유일한 명분은 사람의 불신, 곧 그가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지 않음이다(요 3:18).
신약에서 믿음은 양면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객관적으로, 믿음은 우리가 믿는 대상이고, 주관적으로, 믿음은 우리가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믿는 행위와 우리가 믿는 대상 양자를 뜻한다.
우리가 믿는 대상에는 하나님이 그분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심과 그분의 인생, 구속의 성취를 위한 십자가의 죽음,
장사됨, 부활, 생명 주는 영이 되심, 승천, 성령을 쏟아부어 주심들이 포함된다.


5) 신약 시대 및 영원까지 적용됨

새 언약은 주 예수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피를 흘리셨을 때 설립되었다.
그러므로 그분을 믿는 자들에게는 그것이 새 언약의 시작이었다.
새 언약은 영원에 이르기까지 적용될 것이다.(히 13:20).

 

 

7. 성경에 사용된 언어들

성경이 어떻게 기록되었는가를 알고자 한다면 고대 문명에서 사용된 알파벳과 언어들에 관해서 알 필요가 있다

a) 아카디언

홍수 이전에 인간이 어떤 언어를 사용했는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역사적인 연구에 따르면 홍수 후에 인간이 사용한 최초의 언어는 고대 바빌론의 북서 지방인 아카드에서 나온
것으로서 아카디언이라 불린다.

창세기 2장의『아담』, 『에덴』, 『안식』 이 세 가지 용어는 아마도 히브리어가 아니라 아카디언일 것이다.
아카디언은 원래 선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선들은 쐐기 형태로 그려졌었는데 나중에는 설형체로 발전하였다.
이 필체가 주전 약 이 천년전 아브라함 시대까지 사용되었다.

 

b) 셈족의 바빌론 필체

주전 약 이천 년 전부터 셈족의 바빌론 필체가 아카디언을 대체했다.
우리는 이것이 나중에 나타난 아람어의 기원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종류의 필체가 주전 약 600년 전, 바빌론을 통치했던 느부갓네살 때까지 사용되었다.

 

c) 가나안 언어와 히브리어

갈데아의 우르는 아브라함이 원래 거하던 곳이었는데(창 11:31), 그곳은 바빌론이었다.
그곳의 사람들은 셈족의 후예로서 그들이 사용한 언어는 앞서 언급한 바빌론어였다.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아 가나안에 들어 왔을 때 그는 자연스럽게 그의 본토어인 셈의 바빌론어를 포기하고 가나안
지방의 말을 취했을 것이라고 역사가들은 모두 동의한다.

이 가나안어가 아마도 그 후의 히브리어가 되었거나 혹은 그 일부가 되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사야 19장 18절의 『가나안 방언』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인들이 사용한 언어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역사가들은 그 후의 히브리어의 상당한 부분이 그와 같은 가나안어로부터 발전한 것이라고 가정한다.
구약의 근간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다. 

 

d) 아람어

주전 약 600년에 이스라엘인들은 바빌론으로 포로되어 갔다.
그들은 그곳에서 오랫동안 머물렀으며, 저절로 그들은 히브리어를 포기하고 갈대아 말인 아람어를 취했다.
역사는 우리에게 그들이 포로 됨에서 돌아온 후에도 여전히 이 아람어를 쓰고 있었다고 말한다.

구약에는 아람어로 기록된 곳이 네 군데 있다.
이들은 예레미야 10장 11절과 다니엘 2장 4절부터 7장 28절까지와 에스라 4장 8절부터 6절, 18절, 7장 12절부터
26절까지이다.
이 네 곳은 전적으로 아람 사람들(즉 바벨론인들)과 관련이 있다.
이것이 성경이 그곳에서 히브리어 대신에 아람어를 사용한 이유이다.

예수님 당시에 로마인들이 이미 이스라엘 땅을 점령하고 있었다.
헬라어가 로마 제국 전체에 걸쳐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지만 유대인들은 그들 가운데서 여전히 아람어를 사용했다.
오직 랍비들만이 회당에서 히브리어 성경을 말했다.

만약 회당에서 히브리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그것을 아람어로 통역해 주는 누군가가 있었을 것이다.
많은 역사가들은 주 예수가 매일 사람들에게 말하는데 사용한 언어는 아마도 히브리어가 아니라 아람어였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분께서 마가복음 5장 41절에서 『달리다굼』 15장 34절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말한 것은 모두
아람어였다

 

e) 헬라어

로마 제국이 지중해 연안 지역을 점령하고 곳곳에 헬라 문화를 퍼뜨린 후에 헬라어는 그 당시 로마 제국 안의 모든
사람이 사용한 공용의 자국어가 되었다.
이들 모든 언어들이 직접, 간접으로 성경의 완성과 관련되어 있다.

신약 전체는 헬라어로 기록되었다.
신약에서 단지 몇 문장만이 아람어로 기록되었는데 그것들은 이미 언급한 ‘달리다굼’,‘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이다.

 

 

8. 성경의 목적

a) 주 예수에 관해 증거함

요한 5/39 성경을 상고하라. 이는 너희가 성경에 영생이 있다고 생각함이니, 그 성경은 나에 관하여 증거하고 있음이라.

성경의 첫째 기능은 주 예수에 관하여 증거하는 것이다.(요 5:39)
주 예수가 성경의 주제이고 내용이며 성경은 주 예수의 설명이자 표현이다.
주 예수는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며 성경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이다.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으로서 성경은 그 실제로서 살아 있는 말씀인 주 예수를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단지 교리이며 공허한 문자이다.
살아 있는 말씀으로서 주 예수는 그 표현인 기록된 말씀인 성경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분은 비밀스럽고, 알기가 어렵고, 파악하기가 모호하고 힘이 든다.
그러나 성경의 분명하고 명백한 설명과 열린 계시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주 예수를 실제적으로 알 수 있고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신약의 각 책이 주 예수를 계시할 뿐 아니라 구약의 각 부분도 그것이 (1)모세의 율법, (2)선지자들,
(3)시편(이들이 구약의 주요한 세 부분이다.)이든 모두 주 예수에 관하여 증거하고 말한다.

그러므로 주 예수를 알고자 한다면 반드시 성경을 읽고 이해해야 한다.

 

b) 사람으로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함

디모데 후서 3/15 또 어린아이때부터 네가 성경 기록들을 알았기 때문이니 그것들은 능히 너를 지혜롭게 하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해 구원에 이르게 하느니라.

성경의 기능에는 두 가지 면이 있다.
성경은 한 면으로는 주 예수에 대해서 증거하고, 다른 한 면으로는 우리로 은혜를 받게 하고 건축되게 한다.

우리에 대한 성경의 첫째 기능은 우리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혜가 있게 한다.(딤후 3:15)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을 구원하시는 방법, 사람이 믿음으로 구원받는 길을 계시하여 우리로 구원의 길을
알게 한다.

 

c) 사람으로 거듭나게 한다.

베드로 전서 1/23 너희가 다시 태어난 것은 썩을 씨에서 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에서 난 것이니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니라.

성경의 실용적인 기능은 첫째로 우리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다.(벧전 1:23).
성경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생명을 담고 있다.
성경의 말씀을 믿음으로써 우리 안에 받아들일 때 그 말씀은 생명의 씨와 같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하나님의 생명을
우리 안에 심는다.

이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게 되고 거듭나게 된다.

 

d) 믿는 이들의 영적 젖이 됨

베드로 전서 2/2 새로 태어난 아기들로서 말씀의 순수한 젖을 사모하여 이 젖으로 자라가도록 하라.

우리가 최초로 구원받을 때 우리는 영적인 것들에 관한 충분히 강한 이해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성경의 어떤 부분은 우리의 영적 생활에서 우리를 양육하고 우리로 자라게 한다(벧전 2:2).

그러므로 새롭게 거듭난 믿는 이는 마치 새로 태어난 아기가 말씀의 흠 없는 젖을 사모하는 것처럼 성경의 말씀을
갈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영적 생명은 자라지 못할 것이고 그는 계속 그리스도 안의 어린아이인 자로 남아 있을 것이다.
(고전 3:1-2).

 

e) 믿는 이들의 생명의 양식이 됨

마태 4/4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바,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성경의 말씀은 또한 우리의 영적인 떡이다.(마 4:4)
우리의 신체적인 몸에 영양 공급이 필요하듯이 영적인 생활에도 영양공급이 필요하다.

우리의 영적인 영양 공급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얻을 수 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 있고 강건하기 위해서 우리는 빵만 의지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
곧 성경의 말씀을 먹고 살아야 한다
.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음식으로 취해서 그것을 먹어야 한다.(렘 15:16)

심지어 성경의 말씀을 우리의 음식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욥 23:12)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영적 생명이 자랄 수 없다.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역량을 발휘하여 해석하기 어려운 말씀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장성한 자와 같이 딱딱한 음식을 먹을 수 있어야 한다.(히 5:13-14)
이와 같지 않으면 우리의 영적 생활이 강건해질 수 없다.

 

f) 믿는 이들을 온전케 함

로마서 15/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것은 우리의 배움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곧 성경이 주는 인내와 위로로써
우리로 하여금 소망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라.

성경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인내와 안위와 소망을 줄 수 있다.(롬 15:4)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환난과 질병에 떨어졌을 때 그것을 견딜 수 없어서 슬픔을 느끼고 소망 없어 한다.

그러나 그들이 성경의 한 부분 혹은 한 문장을 읽을 때 말할 수 없는 위안을 받고 바라지 못한 소망을 획득한다.
성경은 또한 우리로 훈계를 받고, 깨어 있고, 이전의 범과를 다시 범치 않도록 경고하는 것과 같은 많은 것을
기록하고 있다.(고전 10:11).

이 때문에 우리가 거듭난 후 성경은 가르침과 책망과 교정과 의로 교육하기에 매우 유익하여 하나님의 사람들인
우리로 하여금 온전케 한다.(딤후 3:16-17).

 

 

9. 성경을 읽는 법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것의 본질은 거룩하고 영적이다.
우리는 반드시 우리 전존재의 각 부분으로 성경을 읽어야 한다.

a) 먼저 이해함으로 읽으라

이에 그들의 지각(知覺)을 여사 성경 기록들을 깨닫게 하시며 (킹제임스 흠정역 눅24:45)

Then opened he their understanding, that they might understand the scriptures,(KJV 눅24:45)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개역한글 눅24:45)

하나님이 성경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인 지각을 열어 주셔서 성경의 진리를 깨닫게 될 수 있다.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먼저 인간의 언어로 기록된 본문을 이해하고 그것의 의미를 알기 위해 우리의 생각의 이해를
사용한다.

 

b) 그런 다음 다시 지혜를 사용해 읽으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골 3:16)

“하나님 곧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온전히 알게 하시고”(엡 1:17)

이상의 두 구절은 우리가 성경 안에 있는 하나님에 의해 계시된 거룩한 것들에 관한 말씀을 이해하는 데 지혜를
사용할 필요가 있음을 의미한다.
에베소서 1장 17절은 또한 지혜가 우리의 영과 연결되었음을 보여 준다.

이 지혜는 우리의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기도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영 안에 있는 이러한 지혜는 우리의 생각에 있는 이해보다 더욱 깊다.
우리는 생각 안에 있는 이해를 사용하여 성경의 문자를 이해하고 영 안에 있는 지혜로 성경 안에 있는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c) 마지막에는 영으로 영접함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라. 성령 안에서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항상 기도하되 모든 성도를
위하여 모든 인내와 간구로 이 일에 주의를 기울이고 (엡6:18)

여기에는 영 안에서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라고 우리에게 알려 준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받아들일 때도 역시 우리의 영을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계시하고 있다.
의심할 바 없이 이것은 기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 읽기에 있어서 우리의 이해로써 본문의 의미를 알고 또한 우리의 지혜를 사용하여 본문의 진리를
깨달은 후, 우리는 우리 전존재의 가장 깊은 부분 곧 우리의 영 안으로 성경 안에 있는 진리를 받아들이기 위해
기도함으로 우리의 영을 사용해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본문을 이해하고 그 안에 있는 진리를 받아들인 후, 우리가 이해한 진리를 우리 영 안에서
흡수함으로 우리의 생명 공급과 영적인 체험의 기반이 되도록 우리가 이해하고 깨달은 것을 기도로 화하기 위해
우리의 영을 사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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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Morning Calm  |  글쓴이 : Morning Calm 원글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