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은 피천득의 수필작법에 대한 에세이이며, 이에 따른 수필이다. 이를 참고로 하여 자유제목의 수필을 창작하라.
삶의 흥을 돋구어 스스로 意味를 발견하는 作業 皮千得
나는 요즈음 통 글을 쓰지 않고 있다. 그런 나더러 '수필작법'을 쓰라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사양을 해도 집요하게 청을 하는 편집자에게 대접이 아닌 줄 알면서 아래의 졸수필(拙 隨筆) <시골 한약국>을 감상한 수필가 윤오영(尹五榮)씨의 글을 인용하는 것으로 문책(文責)을 면하고자 한다. 과람(過濫)할만큼 호평을 한 것이지만 편집자가 요구하는 수필 노트가 되려는지 모르겠다. 이 글의 실질적인 내용은 '양복 한 벌 운운(云云)' 이하가 된다. 그러나 시골 한약방이 머리에 떠오른 것이 출발점이다. 실질적인 내용을 먼저 쓰고 한약국을 뒤에 서술하면 그것은 비유가 된다. 그런 비유란 아무런 효과도 없다. 먼저 씀으로써 '흥'이 된다. 흥이란 정서다. 여기서 비로소 전편의 정서가 산다. 우리나라 고가(古歌)에 사모곡<思母曲>이 있다. 호미도 날이언마는 낫같이 들 리도 없다는 말로 시작된다. 이것이 사모곡의 빛나는 점이다.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버지를 호미에, 낫을 어머니에비유한 것으로 해석하는 까닭에 그 노래를 잡쳐 버린다.
학생 시절의 회상. 병이 나서 촌으로 휴양. 유하게 된 집 할아버지. 그의 권유로 진찰. 의원이 맥을 본다. 전신쇠약. 보약을 먹게 된다. 약재도 없고 약 살 돈도 없는 약국 (그래서 돈을 취해 주게된다.) 약장의 서랍이 많지 않다. 가난한 모습이다. 약 저울에 녹이 슬었다. 한층 강한 묘사로 가난한 모습을 더할 나위 없이 심각하게 표현했다. 달리 길게 쓰면 문맥이 혼미해지거나 시들어 버린다. 천장의 먼지 앉은 약봉지는 강한 묘사가 아니다. 아랫말과 잇기 위해서 좀 부드럽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문단을 바꾸어서 두 문단을 순하게 이어 갔다. <내마음이 그에게 끌렸던지>로 문맥 돌변을 피했다. 청양서 사오십 리나 되는 촌이었다는 것이 여기서 비로소 밝혀진다. 돈 없는 약국 주인과 같이 갔으니 자연 약재 살 돈을 취해 줄 수밖에 없다. 여기서 돈을 바꾸어 달랬다거나, 동정심을 발했다거나 등등의 사설이 끼면 문맥이 침체된다. 그래서 돈을 주었다고 쓰고 '취해주었다'고도 하지 아니했다. 다음은 병이 나서 휴양이 끝나고 돌아오면 된다. 그러나 여기서 낚시질 다니고 밤이면 곤히 잠들던 생활이 스침으로써 한약의 효과나 한의가 용했다던가 하는, 이 글과는 상관없는 데로 독자의 눈이 향할 것을 막고, 무드를 한층 곱게 할 수가 있었다. 만일 낚시질 다니는 강촌의 풍경을 삽입하면, 풍경의 묘사가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문맥은 흩어진다.
또 한가지 문제가 있다. 돈을 준 것은 물론 취해 준 것이다. 그런데 그 원인을 짓고 결과를 빠트리면 글이 이가 빠지고, 필요 없는 사건은 군더더기가 되나. 받았는지 받지 못했는지 지금은 생각나지 않는다는 말로 이 두 점을 넌지시 풀어 버렸다. 더욱이 '지금은'이란 석자를 잊지 않았다. 그러나 이야기가 길었음으로 다시 요약해서 이미지를 선명하게 하며, 문장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셰익스피어의 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등장이 이것이다. 비상조차도 없을 충청도 그 시골약국이란 말로 한층 도타워 졌다. 이 책들은...... 진피 후박 감초 박하 행인같은 것들이라는 데서 우리는 그 천장에 걸렸던 약봉지 밑의 글씨를 보는 것 같은 감각을 느낀다. 문장의 조응(照應)에서 오는 효과다. 이런 경우에는 약명을 한자로 쓰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그러나 작자는 글 전체의 조화를 위하여 한자로 안 쓴 것 같다. 이 값싼 약들이 우황 웅담들의 값진 약을 끌어낸다. 값싼 약으로 마무리짓지 않고 우황, 웅담....... 같은 약이 아쉬울 때면 그 시골 약국을 생각한다는 데까지 와서 끝냄으로써 문맥이 생동한다. 이상 더 쓰면 사족(蛇足)이다. 문맥에 흠잡을 데가 없는 작품이라 하겠다. 물론 작자가 일일이 인식하고 썼을 리는 없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런데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러면 작품이 독자에게 안겨 준 것은 무엇인가. 고요하고 따뜻한 정서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한줄기 아득하고 따뜻한 정서를 얼룩이 안 지게 끌고 나가는 것이 문맥이다. 이 글을 좋아하고 아니 하는 것은 읽는 이의 기호에 달린 문제다. 그 개성과 소재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문맥을 구김새 없이 살려 나가는 묘리(妙理)는 같다.
<代表作>
시골 한약국
나는 학생 시절에 병이 나서 충청도 어느 시골에 가서 몇 달 휴양을 하였다. 그때 내가 유하던 집 할아버지의 권고로 용하다는 한약국에 가서 진찰을 받고 약을 한 제 지어먹은 일이 있었다. 그 의원은 한참 내 맥을 짚어 보고서는 전신쇠약이니까 녹용과 삼을 넣은 보약을 먹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자기 약방에는 약재가 없고 약 살 돈도 당장 없다고 하였다. 사실 약방에는 서랍이 많지 않았고 서랍 하나에 걸려 있는 약 저울도 녹이 슬어 있었다. 약국 천장을 쳐다봐도 먼지 앉은 봉지가 십여 개쯤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어째서 내 마음이 그에게 끌렸던지 그 이튿날 나는 그 한의와 같이 4, 5십리나 되는 청양이라는 곳에 가서 내 돈으로 나 먹을 약재를 사고, 약국을 해 먹으려면 꼭 있어야 된다는 약재를 사도록 돈을 주었다.
약의 효험인지, 여름 시냇가에 날마다 낚시질을 다니고 밤이면 곤히 잠을 잔 덕택인지 나는 몸이 건강해져서 서울로 돌아왔다. 내가 돌려주었던 그 돈은 받았는지 받지 못하였는지 지금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나는 그후 셰익스피어의 극 <로미오와 줄리엣>속에서 로미오가 독약을 사는 약방이 나올 때 비상조차도 없을 충청도 그 시골 약국을 회상하였다. 양복 한 벌 변변한 것을 못해 입고 시들인 책들을 사변통에 다 잃어버리고 그후 5년간 애면글면 모은 나의 책은 지금 겨우 삼백권에 지나지 아니한다. 나는 이 책들을 내가 기른 꽃들을 만져 보듯이 어루만져 보기도 하고, 자라는 아이를 바라보듯이 대견스럽게 보기도 한다.
물론 내가 구해 놓은 이 책들은 예전 그 한방의사가 나한테서 돈을 취하여 사온 진피 후박 감초 박하 행인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우황, 웅담, 사향영사, 야명사같은 책자들이 필요할 때면, 나는 그 시골 약국을 생각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