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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금강하구사람 / 시인과 일기

金 敬 峯 2010. 4. 8. 21:07

시인과 일기

 

 

시인이 널린 세상이라 시에 대한 견해가 많기도 하다. 개중에는 시를 쓰기보다는 시를 읽기를 즐기는 시인도 있고, 시를 읽는 것보다 시평에 재미를 붙인 사람도 있다. 어쨌거나 어느 것 하나 시를 벗어나지 않은 걸 보면 시의 영역이 참 넓다. 그렇다고 보통 시를 쓰는 사람을 시인이라 부르는 것에서 시인의 칭호를 더 확대하는 건 무리다. 아무래도 시를 짓는 이보다 더 시를 사랑하고, 시가 오기를 열망하는 이는 없을 거로 여긴다.

 

블로그 친구 중에 ‘시를 쓰는 일이 마치 일기를 쓰는 일과 같다’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조금 다른 모양으로 쓴다느니, 생각 깊이를 더한다느니 하는 양념이 붙기는 하지만 시의 본질을 그대로 말한 것이다. 시는, 세계와 내가 만나며 빈번한 충돌로 탄생하지만 결국 그 소동이 끝나고서 편안한 상태를 일컫는다. 편안하다는 것은 정제된 나의 일상과 다름없는 것이다. 일기가 일상이라면 시도 일상이다. 다만, 일기로 일생을 다 적지 않는 것처럼 꼭 적어야 할 것만 알뜰하게 적는 것이 시다.

 

일기나 시나 거짓으로 적으면 본질이 망가진다. 세상 모든 문학 행위는 거짓이 없다. 소설에 장치한 픽션도 다 진실을 잘 보이려는 것이다. ‘시가 내게로 왔다. 이런저런 모양으로 왔다’라는 고백을 거짓으로 할 수 있는가. 일기처럼 오고 자연스럽게 받아 적는데, 그것을 작은 바구니에 정성스럽게 담아 선물하는 것이다. 입맛대로 골라 먹으면 되고 때로는 스스로 만족하여 가만히 보기 좋은 곳에 놓아두기도 한다. 시는 내게 온 것 중에서 진실한 것만 골라 적은 일기다. 일기를 쓰고 덮으려다가 돌아보고 다시 낱말 몇 개 덜고 세운 정결한 언어다.

 

 

출처 : 금강하구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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