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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금강하구사람 / 시인과 神

金 敬 峯 2010. 4. 8. 21:06

시인과 神

 

 

신을 만날 때 내가 무능력한 것을 깨달으면 잘 만난 것이다. 능력도 없는 나를 이렇게 저렇게 데리고 다니면서 보게 하고 말하게 하는 것을 고마워할 때 진짜로 신을 만난 것이다. 고마워하는 것은 감동과 다름 아니다. 여기저기서 내가 만나는 신에 대하여 쓰는 것이 시다.


시가 일그러지는 이유는 단 하나, 신에게서 받은 것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만들지 않고 거저 받은 줄을 모르는 것이다. 글 한줄 쓰는 일이 무슨 큰 능력인 줄 안다. 그것을 과시하려고 말장난이나 자기의 위업을 내세운다. 글과 아무 연관이 없는 것이 들어오면 글을 망친다. 서투른 언어로 자신을 드러내기에 앞서 내 앞에 놓인 것을 곱게 받아 살필 일이다.

 

만약 그것이 신의 선물이라면 나는 물론이고 자연과도 호흡을 함께한다. 어차피 한번 몸으로 들어갔다가 돌아 나오면 내 말투를 닮아 나온다. 내가 배운 언어로 다듬어지고 어쩌다 이게 아닌가 싶어 다른 말로 넣어보기도 한다. 이것을 표현이라고 하지만 표현조차도 초기에는 신의 영역이다. 시인이 하는 일은 단지 시의 얼굴이 일그러지지 않게 잘 다독거리면서 내가 쓰던 말에 실어 내는 것뿐이다. 천재가 아니고서는 꼭 거치는 ‘받아 적기’가 쓰기도 하고 달기도 하다. 물론 이것도 겸손하지 않으면 맛이고 뭐고 없겠지만.


시는 쓰는 것이 아니라 받아 적는다는 말이 옳다. 사람의 말이 섞이는 것은 단지 심부름꾼의 친절일 뿐이다. 배달사고가 나지 않으려면 시인이여, 신이 내게 올 자리를 비워두라. 시가 내게 들어와서 나갈 때 불순물을 묻히지 마라. 가격표도 없이, 설명도 없이 그냥 내라. 시가 왔다가 나가는 길을 깨끗하게 하라. 시의 길은 신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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