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마을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 도종환

金 敬 峯 2012. 11. 6. 21:25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 도종환  
      저녁숲에 내리는 황금빛 노을이기보다는
      구름 사이에 뜬 별이었음 좋겠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버드나무 실가지 가볍게 딛으며 오르는 만월이기보다는
      동짓달 스무 날 빈 논길을 쓰다듬는 달빛이었음 싶어.
      꽃분에 가꾼 국화의 우아함보다는 
      해가 뜨고 지는 일에 고개를 끄덕일 줄 아는 구절초이었음 해.
      내 사랑하는 당신이 꽃이라면 
      꽃 피우는 일이 곧 살아가는 일인
      콩꽃 팥꽃이었음 좋겠어.
      이 세상의 어느 한 계절 화사히 피었다
      시들면 자취 없는 사랑 말고
      저무는 들녘일수록 더욱 은은히 아름다운
      억새풀처럼 늙어갈 순 없을까
      바람 많은 가을 강가에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우리 서로 물이 되어 흐른다면
      바위를 깍거나 갯벌 허무는 밀물 썰물보다는
      물오리떼 쉬어가는 저녁 강물이었음 좋겠어
      이렇게 손을 잡고 한 세상을 흐르는 동안
      갈대가 하늘로 크고 먼바다에 이르는 강물이었음 좋겠어.
       
      	 	
      							
      				
옮긴글

'시 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 연인 / 황금찬  (0) 2014.02.22
하늘에 쓰네 / 고정희(高靜熙) 1948~1991  (0) 2013.07.21
8월의 시 / 오세영  (0) 2012.08.03
5월의 노래 / 황금찬  (0) 2012.05.09
이해인 / 어떤 보물  (0) 2012.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