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읽고 있는 시집에서, 돌아보지 말고 가라는 구절이 거듭 눈에 들어왔다. 돌연 내일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목적지는 가을이 가장 늦게까지 머물 것 같은 제주도였다. 제주에 비가 온다는 소식을 당일 아침에 알았다. 신고 가려던 깨끗한 운동화를 밀어두고 편하게 신는 신발을 신었다. 갑자기 비구름이 제주도를 벗어나는 일이 일어날 것도 같았다.
점심시간 무렵 제주 공항에 도착했다. 날씨는 흐렸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스쿠터를 대여하기로 했다. 이틀 동안의 짧은 여행이라 버스를 마냥 기다릴 수 없다는 핑계를 대고, 스쿠터로 제주 해안 도로를 달릴 셈이었다. 약 한 시간 동안 그 주위에서 운전 연습을 하고, 해안 도로에 나섰다. 가는 비가 한 두어 방울씩 떨어졌고, 주인아저씨는 우비를 챙겨주셨다.
비는 내렸다가 또 그쳤다. 이번이 다섯 번째인 제주도 여행이었다. 이전까지 관광버스에 앉아 돌아다니는 여행만 해서 그런지, 이번에는 제주도의 구석구석 제멋대로 다니리라 마음먹었다. 제주도는 동서로 약 73㎞, 남북으로 31㎞인 타원형 모양의 화산섬으로, 섬 중심부에 한라산이 우뚝 솟아 있다. 크고 작은 오름이 368개 있고, 약 160여 개의 용암동굴이 섬 전역에 흩어져 있다. 작은 섬에 이렇게 많은 오름과 동굴이 있는 것은 매우 드문 경우라고 한다. 2007년에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다. 속력을 늦추니 보이는 게 많았다. 억새밭과 푸른 바다, 방목된 소와 말이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애월 해안 도로가 포함된 약 40km를 달리기로 했다.
한참을 달려 협재 해변 인근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아직 비어 있는 침대가 많았다. 간단히 짐을 풀고 버스에 올랐다.
서귀포시 가장 남쪽에 이중섭 거리와 미술관이 있다. 화가 이중섭은 1951년 약 일 년 동안 제주로 피난 왔다. 고향도 아닌 제주에 그의 미술관과 거리가 설립된 것은 이중섭이 그 짧은 기간 머물면서 「서귀포의 환상」 등의 작품을 남겼기 때문이다. 이중섭 거리는 문화와 예술, 쇼핑의 거리다. 비가 조금씩 내리는 평일의 오후라 그런지 사람이 없었다. 빼꼼히 열린 문 속에서 주인은 말없이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하늘과 바닥, 양옆의 건물. 어디로 시선을 돌려도 이중섭 거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작은 가게와 개인 공방의 간판 하나하나마다 공통된 표식이 있다. ‘ㅈㅜㅇㅅㅓㅂ’. 화가 이중섭은 항상 자신의 그림에 풀어쓰기 서명을 남겼다. 이는 일제강점기 시대에 매우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서귀포시는 2012년 마을미술프로젝트 공모사업에 선정되었다. 그 이후로 이중섭 거리가 다양한 볼거리와 장식적인 거리로 꾸며졌다. 거리에는 서귀포문화예술디자인 시장과 서귀포 극장 등이 있다. 서귀포문화예술디자인 시장은 지난해부터 부스를 만들어 매주 주말마다 운영되고 있으며, 서귀포 극장은 약 20년 가까이 문을 닫고 있는 곳으로, 앞에 붙어 있는 포스터와 낡은 간판이 이 건물이 극장이었음을 알려준다. 개인적으로 이중섭 거리는 그의 예술 세계와 약간 어긋나 보였다. 이중섭 그림을 활용한 벽과 조형물을 서둘러 지나쳤다.
거리에서 골목으로 방향을 튼 것뿐인데 마음이 편해졌다. 이중섭미술관에 도착했다.
이중섭미술관은 2002년에 개관했다. 이곳에는 이중섭의 1950년대 중반 작품인 「파란 게와 어린이」를 포함하여 모두 14점이 전시되어 있다. 1층 상설전시실에 이중섭의 원화작품과 관련 자료 등을 전시하여 화가의 삶과 예술 세계를 조명하고, 2층 기획전시실에는 제주 거주 작가 작품 중심의 기획전시를 열고 있다. 3층 전망대에서는 이중섭의 소재가 되었던 섶섬과 문섬, 새섬 등을 볼 수 있는데, 비가 와 전망대에 오를 수 없었다. 이중섭의 유품은 발견된 것이 거의 없다. 그러나 2011년 이중섭의 부인 이남덕 여사가 그에게 사랑의 징표로 받았던 팔레트를 미술관에 기증했다.
미술관 내 사진 촬영은 할 수 없었다.
■왼쪽) <자화상>, 종이에 연필 그리고 색연필로 서명, 48.5x31cm, 1955년, 개인 소장
■오른쪽) <흰 소>, 합판에 유채, 30x41.7cm, 1954년경, 홍익대학교박물관 소장
이중섭은 1916년, 평안남도 평원군에서 태어났다. 사색을 많이 하는 내성적인 학생이었던 그는 학교 공부보다는 그림 공부에 매진하여 오산고등보통학교를 가게 됐다. 도화, 영어담당 교사로 온 임용련을 만나 화가로서의 꿈을 본격적으로 키웠다.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의 사립 제국미술대학에 입학, 그 후 일본 문화학원 미술과에 진학했다.
그는 23살의 나이로 동경 자유미술가협회 제2회 공모전에서 협회장상을 받고, 1943년 제7회 미술창작가협회전에 <망월>등의 그림을 출품하여 특별상인 태양상을 받았다. 이때 부상으로 준 것이 부인이 기증한 팔레트였다. 그 후 1945년, 어수선한 전시 중에 야마모토 마사코와 결혼하고, 그녀에게 한국 이름 ‘이남덕’을 붙여 주었다. 아들 둘을 낳아 단란한 가정을 이루며 약 8년을 원산과 부산, 제주에서 생활했지만, 1952년 생활고로 인해 아내와 아들은 일본으로 귀국했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술을 자주 찾던 이중섭은 1956년 40살의 젊은 나이로 극심한 영양실조와 급성 간염으로 사망했다. 사망 이후 무연고자로 취급되어 사흘간 영안실에 방치되었다가 병원을 찾아온 친구에 의해 사실 확인이 되었다. 1960년 최초의 유작전이 부산 로터리 다방에서 열리고, 1986년 서울 호암갤러리에서 30주기 회고전을 열었다.
이중섭은 ‘소 그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화가이다. 힘차고 대담한 터치와 탄력적이고 단순화된 형태, 선명한 원색이 두드러지는 그의 작품은 향토성이 강해 후학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오산학교 시절, 이중섭은 들판의 소를 관찰하다가 소도둑으로 몰린 적이 있고, 학교에서는 소와 입맞춤을 한 아이라고 소문나기도 했다.
■<서귀포의 환상>, 나무 판에 유채, 56x92cm, 1951, 호암미술관 소장
이중섭은 1951년 1월,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 서귀포에 안착했다. 그는 주민의 호의로 살 곳을 얻었고, 가족들과 함께 가난하지만 안정된 일상을 보냈다. 이때 그린 작품으로는 <서귀포의 환상>, <섶섬이 보이는 풍경>, <바다가 보이는 풍경> 등이 있다.
■<섶섬이 보이는 풍경>, 종이에 유채, 41x72cm, 1951, 개인 소장
“중섭 형의 그림을 보면 예술이라는 것은 타고난 것 없이는 하기 힘들다는 것이 절실히 느껴진다. 중섭 형은 참 용한 것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그러한 것을 생각해내고 또 그렇게 용한 표현을 하는지 그런 것이 정말 개성이요 민족 예술인 것 같다. 중섭 형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화가로 우리 화단에 일등으로 빛나는 존재이다.” – 화백 김환기
■왼쪽)<바다가 보이는 풍경>, 종이에 유채, 42x29cm, 1950년대
■오른쪽) <바다가 보이는 풍경>, 종이에 유채, 23x18cm, 1950년대
“중섭은 판잣집 골방에서 시루의 콩나물처럼 끼어 살면서도 그렸고, 부두에서 짐을 나르다 쉬는 참에도 그렸고, 다방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도 그렸고 대폿집 목로판에서도 그렸다. 캔버스나 스케치북이 없으니 연필이나 못으로 그렸다. 잘 곳과 먹을 것이 없어도 그렸고 외로워도 슬퍼도 그렸고 표랑전전하면서도 그저 그리고 또 그렸다.”– 시인 구상
1952년 부인과 아들이 일본으로 간 이후, 이중섭은 제주를 떠났다. 그는 친구들의 주선으로 부산에서 종군화가가 되었고, 이 무렵 은지화를 시작했다. 이중섭의 은지화에는 가족에 대한 정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은박지 특성상 작품은 매우 작지만, 당시 시대적 배경과 이중섭의 삶과 사상을 이해하기에 가장 적합한 작품 양식인 것이다.
■은박지 그림(은지화)
■왼쪽) <물고기와 아이들>, 9x15cm, 1950년경,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오른쪽) <가족>, 8.5x15cm, 1950년경,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은박지는 전쟁 중에 군인들에게 보급되던 미국 담배에서 나온 것이다. 일반 미술 재료를 구하기 힘들었던 이중섭은 궁여지책으로 은지를 재료로 삼았고, 독특한 재료였기에 특이한 효과를 낼 수 있었다. 송곳처럼 날카로운 것으로 은박지 위에 홈이 생기도록 드로잉하고, 그 위에 유화물감 등을 칠하고 마르기 전에 닦아내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되면 파인 선 부분에만 색이 입혀져 이중섭 고유의 은지화가 되었다. 그의 은지화는 한국 마애불의 선각화와 고려청자의 상감기법 등과 형식적인 유사성을 갖고 있다.
은지화에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그려져 있다. 바다와 아이들, 물고기, 게와 같은 소재들은 작은 화면 안에서 서로 뒤엉켜 있는데, 이는 서귀포에서의 생활을 그린 것이었다. 이중섭은 ‘서귀포에서 배가 고파 게를 많이 잡아 먹었는데, 그것이 미안하여 게를 그리게 되었다’고 했다.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게는 가족과의 행복했던 시간을 은유적으로 표상한 것이었다.
■왼쪽, 중간) 이중섭미술관 복도에 전시된 편지,
■오른쪽) 책 『이중섭 편지와 그림들 1916-1956』 중
상설전시관과 2층의 복도에는 이중섭과 그의 부인이 주고받은 편지가 전시되어 있다. 내용은 일본어로 쓰였지만 여백에 그려진 이중섭의 드로잉을 보면, 그가 얼마나 가족들을 그리워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특히 편지에는 이중섭의 애칭 ‘아고리(‘아고’는 일본어로 ‘턱’이라는 뜻으로, 턱이 길었던 이중섭을 표현한 이름)’와 이남덕 여사의 애칭 ‘아스파라거스군(아내 발가락이 아스파라거스와 닮아 붙여준 이름)’이 나와 있어 그 애틋함이 더욱 드러난다.
나만의 소중한 감격, 나만의 아스파라거스군은 아고리를 잊지나 않았는지요? 어디 물어보고 답장을 자세하게 써 보내 주시오. (중략) 아고리는 더욱 더 기운차게 열심히 제작을 계속하고 있소. 안심, 안심, 기뻐해 주시오. 자, 나만의 소중하고 소중하고 또 소중한, 한없이 착한 오직 유일한 나의 빛, 나의 별, 나의 태양 나의 애정의 모든 주인인 나만의 천사, 최애의 현처, 남덕군, 건강하게 기운을 내주오.
추신) 아스파라거스군이 춥지 않도록 두텁고 따뜻한 옷을 입혀주오. 그렇지 않으면 다음에 아고리가 화를 낼 거요. 화를 내면 무서워요. – 이중섭의 편지 중에서
■왼쪽) 이중섭 <황소> 인쇄_ 관람객들의 기념 촬영을 위해 만들었다
■중간) 유종욱, <황소인상>, 2008
■오른쪽) 기획전 전시 정경
2층에는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이중섭미술관은 올해로 6회째 레지던시 프로그램(화가∙작가∙음악가 등이 특정 기관 소속으로 일하는 전속기획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데, 그 입주작가들의 전시 ‘바람섬의 나날’이 진행 중이다. 참여 작가들은 각자가 느끼는 서귀포에 대한 정서를 표현했다.
■오른쪽 위) 올레: 길거리에서 제주 전통가옥의 마당으로 들어가는 골목길
■오른쪽 아래) 김범수, <이중섭의 꿈>, 2012_ 생전에 그토록 염원했으나 이루지 못한 이중섭의 꿈인 가족과의 단란한 삶을 그의 드로잉 속의 이미지를 활용하여 표현
미술관에서 나와 작가의 산책길을 걸었다. 약 5km의 산책길은 숲과 집, 바다, 길 등을 주제로 조성되었다. 산책길 초입에 이중섭 공원과 그의 거주지가 있다. 공원은 1951년 이중섭이 서귀포에 피난 왔을 당시의 모습과 그 이웃들의 삶의 흔적 등을 복원하고자 하였다.
■이중섭 거주지. 방 4.70㎡1.4평 / 부엌 6.39㎡ 1.9평
화가 이중섭과 그의 가족이 거주하였던 이곳은, 마을 반장 송태주와 김순복 부부가 방을 내주어 생활하게 된 곳이다. 이중섭 가족은 1.4평 정도의 작은 방에서 서로의 숨소리를 느끼며 반찬 없이 밥을 먹고, 고구마나 깅이(게)를 삶아 끼니를 때웠다. 그러나 가족이 함께 웃으며 지낼 수 있었던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현재 이곳에는 원주인이 살고 있으며, 사람이 와도 모른 체하며 자던 개도 그 가족 중 하나일 것이었다.
열려 있는 문 뒤로 이중섭의 방이 보인다. 괜히 서늘해서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 방 벽에는 피난 온 봄에 이중섭이 쓴 시, ‘소의 말’이 붙어 있다.
높고 뚜렷하고 / 참된 숨결 // 나려 나려 이제 여기에 / 고웁게 나려 // 두북두북 쌓이고 / 철철 넘치소서 // 삶은 외롭고 / 서글프고 그리운 것 // 아름답도다 여기에 / 맑게 두 눈 열고 // 가슴 환히 / 헤치다
-소의 말, 이중섭
■왼쪽) <그리운 제주도 풍경>, 35x24.5cm, 1954년경,
■오른쪽) 이중섭 거리 조형물. 물고기 잡는 소년
이중섭 거리를 떠나기 전, 하늘에서 물고기를 잡는 소년을 보았다. 그 편안하고 활력 넘치는 모습은 말년의 이중섭과 정반대였다. 이 아이의 표정은 이중섭이 느낀 그리움의 편린들 중 하나일 것이다.
나는 가난했어요 / 낡은 지도 한 장 들고 서귀포로 갑니다 / 마른 갯벌엔 눈 감은 게껍질들이 붙어 있어요 / 가는귀 먹은 게들이 남아서 부스럭거립니다 / 햇빛과 목마름으로 여기까지 버티어온 나는 / 바다를 앞에 놓고도 건너갈 수가 없어요 / 아내의 나라가 보이는 곳까지 가까스로 닿습니다 / 사랑한다는 말에 가까스로 닿습니다 / 나의 처소는 이끼 낀 흙담벽이 둘러쳐져 있어요 / 그리고 한 평 반의 바람 드는 방엔 닿을 수 없는 / 아내의 바다가 수심에 잠겨 출렁거려요 / 그리운 쪽빛 바다 서귀포
-그리운 서귀포, 노향림
어둑해지기 전에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비어있던 침대는 모두 찼다. 1층으로 내려가 사람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제주도 해안 도로를 자전거로 종주하려는 사람, 잠시 휴가를 내어서 혼자 떠나온 사람을 만났다. 성별과 나이가 제각각, 제주도에 온 이유도 제각각이었다. 그 사이에 이곳으로 떠나와서 돌아가지 않는 사람도 있다. 두 달째 제주도에 머물고 있다는 그는 여행자의 설렘과 정착민의 여유로움을 모두 갖고 있었다. 오랜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게스트하우스의 낯섦과 이튿날 일정에 대한 걱정으로 곧 2층으로 올랐다. 제주도로 이끈 시집을 잠시 펼쳤다. 그것은 정호승 시인의 『여행』이었다.
* 이중섭의 작품에 관심이 있다면, 책 『이중섭 편지와 그림들 1916-1956』을 읽는 것이 도움된다. 이중섭의 대표 작품 90여 점과, 아내와 이중섭이 서로 주고받은 편지, 아들에게 쓴 편지 등이 수록되어 있다.
*기사에 나온 이중섭 화가 작품의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_미술작품
옮긴글 영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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