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함께 하는 아침]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렸다는 소식 | |
2009년 2월 16일 / 삼성 | |
매화가 환하게 피어 있다. 뜰에 핀 매화 향기는 더없이 좋고, 매화가지에 앉은 한 쌍의 새는 우아하고 종일 다정하다. 하얗게 핀 매화꽃을 상상해 보라. 그리고 그 매화가지에 앉은 한 쌍의 작은 새를 상상해 보라. 새가 울 때마다 매화꽃은 피고 지리니. 시집 간 외동딸이 매화나무에 깃든 한 쌍의 새처럼 다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또한 매화꽃 많아서 열매 많이 맺히듯 자손이 대대로 번성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이 너무나도 애절하게 느껴진다.
나에게 온 두 개의 봄 풍경 때문에 추운 마음이 금세 푸근해졌다. 우리나라의 시 가운데서 신춘(新春)을 노래한 시는 아주 많다. 「목마와 숙녀」라는 시로 유명한 박인환 시인도 「봄은 왔노라」라는 시를 남겼다. 그는 “겨울의 괴로움에 살던 인생은 기다릴 수 있었다 / 마음이 아프고 세월은 가도 우리는 3월을 기다렸노라”라며 ‘세계가 꿈이 되고 꿈이 세계가 되는', “단조로운 소녀의 / 노래와도 같이 // 그립던 평화의 날과도 같이 // 인생의 새로운 봄은 왔노라”라고 환희에 차 노래했다. 매화를 생각하면, 신흠이라는 조선 중기의 문인도 떠오른다. 신흠은 “오동나무는 천 년을 늙어도 항상 아름다운 가락을 지니고, 매화는 일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한시를 남겼다. 매화의 고아한 기품을 잘 표현한 시라고 하겠다. 반면에 다산 정약용이 쓴 시에는 아버지의 사랑이 듬뿍 담겨 있다. 펄펄 나는 새야, 내 뜰의 매화나무에서 쉬렴
이 시는 다산이 직접 그린 ‘매화병제도(梅花屛題圖)' 속에 있는 시이다. 다산은 매화꽃이 핀 가지를 그렸고, 그 위에 한 쌍의 새를 앉혔고, 그 아래 이 시를 써 넣었다. 이 시는 세상에 태어나기까지 사연이 있다. 다산이 강진에 귀양 살고 있을 때 그의 아내는 시집오던 날 입었던 붉은색 활옷을 다산에게 부쳤다. 다산은 산문에서 이 활옷이 “붉은색은 이미 씻겨 나가고 노란색도 희미해져서 책 장정으로 삼기에 적당했다”라고 술회하고 있다. 그래서 다산은 그 옷감으로 공책을 만들어 자식을 훈계하는 말을 적어서 남긴다. 그것을 ‘하피첩'이라고 이름 지었다. 다산은 하피첩으로 사용하고도 남은 치맛감에 ‘매화병제도'를 그렸고, 그것을 시집간 외동딸에게 주었다. 그리하여 이 시에는 시집 간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애틋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더구나 다산은 아내 홍씨와 예순 해를 해로했는데, 아내가 시집오던 날 해 입었던 옷감에다 이 시와 그림을 그려 외동딸에게 준 것이었다. 이 시에는 매화가 환하게 피어 있다. 뜰에 핀 매화 향기는 더없이 좋고, 매화가지에 앉은 한 쌍의 새는 우아하고 종일 다정하다. 하얗게 핀 매화꽃을 상상해 보라. 그리고 그 매화가지에 앉은 한 쌍의 작은 새를 상상해 보라. 새가 울 때마다 매화꽃은 피고 지리니. 시집 간 외동딸이 매화나무에 깃든 한 쌍의 새처럼 다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또한 매화꽃 많아서 열매 많이 맺히듯 자손이 대대로 번성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이 너무나도 애절하게 느껴지는 시라고 하겠다. 다산은 일 연(聯)을 한 악장으로 보았다. “그 시작에는 피어나고 우거지고 곱고 어여뻐서 온갖 꽃이 향기를 뿜는다”라고 봄을 노래했다. 원래 다산의 집은 한 때 명례방에 있었다. 번화한 네거리가 가까워 바깥의 소란이 집마당까지 들려 왔다. 그래서 다산은 집에 꽃과 과실나무를 구해다 화분에 심었다. 왜석류 네 그루, 꽃석류 한 그루, 치자 두 그루, 동백 한 그루, 파초 한 그루, 매화 두 그루였다. 다산은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오가면서 피어 있는 꽃을 건드릴까 걱정해 서까래처럼 생긴 대나무로 울타리를 설치하기까지 했다. 꽃의 개화를 보되 숭앙하는 뜻을 갖고 완상(玩賞)했던 셈이다. 매화꽃의 개화를 시작으로 봄꽃이 피는 것을 우리도 이만치 떨어진 자리에서 바라볼 일이다. 이만치 떨어진 거리 때문에라도 벌써 매화꽃 향기는 우리에게 건너오고 있지 않은가.
퇴계 이황 또한 매화를 지극히 사랑했다. 매화에 관한 시를 모아 『매화시첩』을 펴냈다. 이 세상과 마지막 작별을 하면서 남긴 부탁도 “화분의 매화에 물을 주라”는 말이었다. 매화를 노래한 「도산월야영매(陶山月夜詠梅)」는 모두 여섯 수이다. 뜻이 깊고 고요한 두 수를 소개한다. 매화 핀 달밤에는 이 시들을 떠올려도 좋겠다. 우리의 마음에 한 그루의 매화나무와 매화를 노래한 이 시들이 함께 살게 하자. 매화는 우리에게 내려진 봄의 은상(恩賞) 아니겠는가. 뜰 가운데 거니는데 달은 날 따라오고 홀로 산창(山窓)에 기대니 밤 기운 차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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