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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예수님의 교육방법 (교사 헌신예배)

金 敬 峯 2010. 4. 1. 16:33

 

예수님의 교육방법

 잠 22:6                            한민족교회 교사헌신예배


얼마 전에 여러분은 TV에서 방영된 한 시사프로그램을 충해 너무나 충격적인 사건을 보았을 것입니다. 명문대에 다니는 한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무참히 살해하고 토막을 내어 버렸다는 내용입니다. 이 아들이 부모에게 갖고 있었던 감정은 적대감뿐이었습니다. 중산층 이상의 생활 환경을 가지고 있는 이 가정은 장성으로 진급하지 못하고 대령으로 예편하여 늘 불만에 가득차있고 현관에 신발 흐트러진 것 하나를 용서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엄격한 권위주의적 아버지와 자식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기 위해 무엇이든 1등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어머니의 서슬퍼런 닥달에 못이겨 큰 아들은 가출하여 왕래없이 살고, 둘째는 그 속에서 짓눌려 살았습니다. 외출 후 들어오는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가시돋친 말은 결국 이 아들로 하여금 엄청난 패륜의 주인공이 되게 했습니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에 끝없이 목말라하며 그 꿈을 아들이 이뤄주어야 한다고 강요하고 오직 자기 욕심을 위해 자기의 길만을 가르친 것입니다. 그 교육의 끝은 비극적 파국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집이 기독교 가정이었다는 것입니다. 벽에 십자가가 걸려있고 책상에는 성경책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일기장에는 서로를 중오하는 마음으로 가득차 있었고 쓰여진 기도문조차도 배우자를 사탄이라고 비난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가족은 어느 누구할 것 없이 인생을 값지고 풍요롭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삶에서 무엇이 정말로 중요한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들 속에 기독교적 모양은 있었지만 진정한 주님의 형상이 없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아이들에게 세상이 가르쳐 주지 않는 인생의 참 길을 가르쳐야 합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어야 합니다. 주님은 세상이 주는 것은 다시 목마르게 할 뿐이라고 했습니다.

교사 여러분! 여러분의 아이들에게 예수의 생명을 불어 넣어주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고 가르치지 말고 진정한 복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가르치십시오.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임을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성공을 가르치지 말고 그것을 위한 땀의 가치를 가르쳐야합니다. 성경을 달달 외우게 하는 것 보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모방할까 고민하게 가르치십시오. 예수의 삶과 인격을 닮아 가면서 진정한 삶의 기쁨을 얻게되고, 그 삶이 예수의 생명에 접붙여질 때 그 인생은 값지고 복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준다 해도 예수의 생명을 심어주지 않으면, 예수의 삶을 가르치지 않으면 그 아이는 세상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길만한 큰 믿음을 심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예수의 삶을 보여주고 예수의 생명을 아이들에게 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교육방법은 무엇이었습니까?

1) 예수님의 방법은 모범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이스라엘 왕국의 왕으로 등극하시면 서로들 높은 자리에 앉겠다고 싸웠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은 그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교육방법입니다. 말도 중요하지만 몸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어린이들은 오감으로 느끼는 데 매우 민감합니다. 보이는 대로 행하고, 듣는 대로 말하고, 느낌대로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나 교사의 언어와 행동은 어린이에게서 즉시 반사됩니다. 자식에게서 잘못된 것이 발견된다면 자신을 돌이켜 보십시오. 반드시 거기에 무언가 문제가 있음을 알게될 것입니다. 부모가 상스런 말을 하면서 아이에게는 좋은 말을 쓰라고 하면 아이들이 고쳐집니까? 부모가 아이들 앞에서 날마다 싸우면서 형제간에 사이좋게 지내라고 한다면 그걸 듣겠습니까? 우리는 고려장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입니다. 자식은 부모를 따라 합니다. 제자는 선생을 모방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모범, 삶의 모범을 통해 진짜교육을 하시기 바랍니다.

교사가 늘 시간에 늦게와 뒷자리에 앉아 그래도 미안한 마음은 있어 고개를 푹 숙이고 하품이나 해대면서 아이들에게 일찍 나와 기도하라고 하면 아이들이 그 말을 듣습니까? 교회교육의 성공은 말에 있지 않고 행함과 진실함에 있습니다. 교사가 얼마나 몸으로 모범을 보여주며 얼마나 진실하게 아이들을 대하느냐에 따라 그 아이의 장래가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교사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그가 얼마나 주님을 닮으려 분투하느냐에 따라 판가름 납니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저는 초두에 교사는 지지대를 세우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지지대가 올곧게 서있지 않으면 그 나무는 잘 자랄 수 없습니다. 작은 비바람에도 쓰러집니다.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사는 부지런히 자신의 신앙인격과 교육적 소양과 삶의 태도를 점검해서 갈고 닦아 아이들의 믿음의 지지대를 바르게 세워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어머니가 대충대충 되는대로 세탁하지 않은 옷을 입히고, 설익은 밥을 주고, 정성없는 음식을 주지 않는 것처럼, 정말로 내가 맡은 아이들이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임을 안다면 교사는 전심을 다해 교안을 준비하고 그 아이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 사랑을 주지 않겠습니까?

성경은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모범을 보여주라는 말씀입니다.

교사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과 삶의 모습이 여러분의 학생들에게 어떻게 비쳐지고 있습니까?

가장 효율적인 교육은 가르치는데 있지 않고 보여주는데 있습니다.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도 나를 본받는자 되라"고 자신있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본받은 것처럼 여러분의 모습으로 예수님을 보여주기 위해 힘쓰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속에 있는 예수님을 만나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들의 삶이 바뀔 것입니다. 그들의 목표가 바뀔 것입니다. 그들의 미래가 열릴 것입니다.

2) 쉽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들에 핀 꽃과, 하늘을 나는 참새와, 밭에 뿌려진 씨앗과 빚을 진 사람과 집 떠난 아들 같은 친근한 삶의 이야기에서 시작됩니다. 때로는 비유로 때로는 상징으로 그러나 결코 어렵지 않게, 모든 사람이, 어린아이 조차 능히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쳤습니다.

가끔 교사들의 기도를 듣다보면 저 자신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온갖 현학적 말을 늘어놓는 것을 봅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시고, 무한히 자비로우시며, 무소부재하신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로 시작되는 이런 기도를 드릴때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여러분! 쉬운 말로, 아이들의 말로 기도하세요. 진실한 기도는 입술의 말에 있지 않고 마음에 있습니다.

공과공부도, 설교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입맛에 맞지 않으면 토해내게 됩니다. 아이들의 생각을 넘지 않고 아이들의 말로 가르치는 교사가 훌륭한 교사입니다.

3) 아이를 아이답게 여기는 것입니다.

어느 날 주님께서 들에 앉아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귀기울여 듣는 엄숙한 시간에 꼬마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난리입니다. 예수님 옷자락을 잡아당기고 늘어진 옷 속으로 숨어듭니다. 재잘대고 깔깔대고, 울고불고 난리입니다. 열불이 난 제자들이 부모들을 비난하고 아이들을 꾸짖었습니다. 그때 주님이 뭐라 말씀하셨습니까? "놔둬라, 이런 애들이 천국에 간다."

주님께서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 까요? 형을 때리고 물고 늘어지고 소리지르고 형이 가진 건 다 차지하려 떼쓰는 제 둘째를 봐서는 말도 않됩니다.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아이들이 천당 갈만큼 죄가 없고 천사같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주님의 의도는 다른데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꾸짖어 쫓아버리는 그 아이를 무릎에 안고 하신 이 말씀에는 "아이를 아이답게 놔두라"는 뜻이 있습니다. 3,40분 아니 한시간, 두시간을 아이들이 어떻게 한곳에 집중합니까? 절대로 못합니다. 아이들이 뛰는 건 당연합니다. 어른들이 앉아 듣는 것이 당연하듯 아이들이 뛰는 것도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아이를 아이답게" 한다는 것은 아이를 완전한 하나님의 한 형상, 한 인격으로 대우하라는 말입니다. 고대에는 아니 중세에 이르기까지도 사람들은 아이들이 아직 완전한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는 가부장의 소유물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아이를 매질하고 심지어는 형벌을 가하여 죽일 수도 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심하게도 현대에도 은연중 우리 어른들에겐 이런 생각이 남아 있습니다. 어른처럼 행동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강요합니다. 어른의 뜻대로만 하게 합니다. 조금이라도 거스르면 매질이 날라갑니다.

아이를 아이답게 보아야 한 완전한 인격으로 대할 수 있습니다. 고귀한 하나님의 성품을 담은 존재로 그 존엄성을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꾸만 아이를 어른되게 하려는 제자들을 꾸짖고 주님은 아이를 아이로 놔두라 하셨습니다.

교사 여러분, 부모 여러분! 교육의 실패는 성급함과 과욕에서 초래됩니다. 장난치며 사회적 관계를 배우고, 뛰어 놀며 몸의 자람을 겪고, 들풀을 매만지며 자연의 소중함을 배우게 해야할 나이에 유치원으로 학원으로 떼밀지 마세요. 심지어 조기 유학까지 보내어 너무 일찍 가정 밖으로 내모는 것을 보면 "참 큰일이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진정한 교육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지성과 감성과 의지의 전인적 교육이 깨지는 현실입니다. 감성 교육없이, 자신을 희생하고 남을 배려할 수 있는 근원인 의지의 교육없이 얻은 지성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우리 삶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아이를 아이답게 하는 교육, 기다려주고, 스스로 한걸음씩 나아가게 하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교사 여러분! 교회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구절 달달 외우게 한다고 아이들의 심장에 예수의 사랑이 새겨지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끝없이 내몰리는 여러분의 아이들을 위해 여러분이 할 일은 시간을 주는 일입니다. 여유를 주시기 바랍니다. 공과공부 한시간 못하더라도 아이들과 한번 뒹굴어 보고 쭈쭈바도 사주면서 하나님이 주신 대자연에서 풀한포기 자라나는 이유를 설명해 주세요. 거기에 깃든 하나님의 사랑을 만져보고 느끼고 체험케 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예수의 삶을 가르쳐 예수처럼 살게 하는 곳입니다. 학교의 교사가 삶의 지혜와 지식을 가르치고 의사가 육신의 생명을 치료한다면 주일학교 교사는 영적인 생명을 돌보고 자라나게 합니다.

카터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마치고 고향의 주일학교 교사로 다시 되돌아갔다는 이야기는 그가 주일학교 교사의 직임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가를 생각게 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고귀한 직분을 여러분에게 맡기셨습니다. 사명감과 자부심(pride)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에 대한 헌신은 곧 하나님을 향한 헌신입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주일학교 주보에 "우리는 주님의 어린이 작은 예수님입니다."라는 타이틀을 붙여 놓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린이는 작은 예수님입니다. 교사는 어린이를 대할 때 예수님을 대하는 것처럼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책임감도 사랑도, 소망도 갖게되는 것입니다.

페스탈로찌는 아이들을 만나면 모자를 벗고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의 가슴속에는 아이들의 위대한 미래가 담겨있었던 것입니다. 헝가리 속담에 '아이들은 당신의 제2인생이다' 라는 말이 있답니다. 여러분! 아이들의 꿈을 여러분 가슴속에 심으시기 바랍니다. 한국교회와 이 나라를 살릴 위대한 사람이 여러분들의 자녀, 제자들입니다.

4) 주님은 사람에게 관심이 있었습니다.

교사 여러분, 여러분은 정말로 예수님을 사랑합니까? 그러면 아이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십시오. 사랑의 채근을 하십시오. 내가 맡은 아이들이 어디에 사는지, 가정은 어떤지, 무슨 꿈을 가지고 있는지....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수첩에 적어 놓고, 그 아이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신 것같이 여러분의 사랑을 아이들에게 쏟아 부으십시오.

성경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끝없는 관심의 기록입니다. 우리가 어떤 상태이고, 왜 그렇게 되었는지, 장차 어찌될 것인지, 구원의 방법이 무엇인지, 장차의 삶이 어떻게 될 것인지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사가 성경을 가르친다는 것은 바로 이것, 하나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얼마나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신지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이들의 가슴에 심어 주면 이 아이는 늙어서도 주님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의 기쁨을 알게될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가 될 것입니다.

2세기 안디옥교회의 위대한 감독이며 순교자였던 이그나티우스는 막10:13-16에서 주님께서 안고 축복한 그 어린이였다고 합니다. 주님의 관심이 그를 위대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든 것입니다. 여러분이 안고 축복하는 아이들은 주님께서도 축복하십니다. 여러분이 관심을 가지고 눈물로 기도하며 지도하는 아이들은 하나님께서 들어 쓰십니다.

여러분의 삶과 신앙의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예수님을 만나게 하십시오. 그들의 심령 속에 하나님의 손길이 닿아 있음을 믿게 하십시오. 주님의 사랑이 여러분의 가슴에 있음을 보게 하십시오. 여러분의 샘에서 주님의 사랑을 퍼가게 하십시오.

교사 여러분! 여러분의 헌신의 나무에서 예수의 생명을 따가게 하십시오. 이것을 위해 거룩한 산제물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 hgmja
글쓴이 : 나그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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