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마을

아득하면 되리라/ 박재삼

金 敬 峯 2010. 11. 28. 23:07

 






아득하면 되리라/ 박재삼

 
해와 달, 별까지의
거리 말인가
어쩌겠나 그냥 그 아득하면 되리라
 
사랑하는
사람
나의 거리도
자로 재지 못할 바엔
이 또한 아득하면 되리라
 
이것들이 다시
냉수사발 안에 떠서
어른어른 비쳐오는
이상을 나는 볼 수가 없어라
 
그리고 나는 이 냉수를
시방 갈증 때문에
마실 밖에는 다른 작정은 없어라



인간이 지니는 심리적 공간(life space)에 대해 연구한 독일의 심리학자 Kurt Lewin은 인간이 느끼는 심리적 거리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군요. 어떤 대상이 아무리 곁에 가까이 있어도 그 대상에 대한 아무런 관심과 흥미를 느끼지 않는 다면, 현실에서의 실제 거리와는 무관하게 하늘에 떠있는 별과 달의 거리만큼 멀다는 것입니다. “지척이 천리”인 거지요.
 
그러나
물리적인 거리가 “해와 달, 별까지의 거리”만큼 멀어도 사랑하다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느끼는 거리는 “자로 잴 수없는” 거리인 것이지요. 왜냐구요? 사랑하는 그대가 내 가슴 속에, 심장과 함께 뛰고 있기 때문이지요. 때로는 사랑의 감정이 쓰나미처럼 몰아닥쳐 숨조차 쉴 수 없는 심장의 통증 때문에 그 자리에 주저앉아 숨을 헐떡여 본 사람은 알 수 있지요. 사랑하는 사람이 내 온 몸 안에서 숨쉬고, 혈관을 따라 돌며 나와 그가 하나인 듯 느껴지지 않던가요.
 
사랑하는 그대에게 가까이갈 수 없어 “울음이 타는 가을 강”가에서 앓고 또 앓으며 아득하던 날들. 오랜
시간이 흐르고 이제는 잊혀 진 듯 일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폭음을 한 어느 날 심한 갈증으로 어둠속에서 눈을 뜨고 머리맡에 놓여있는 냉수를 들이킬려고 하니 잊은 줄 알았던 그대가 자리끼 속에서 웃고 있네요.
 
흐르는 눈물 때문일까요? 아니면 냉수
사발을 든 손이 떨려서 그런 걸 까요? 자리끼 속에서 웃고 있는 그대를 미쳐 자세히 들여다보지도 못하는 이 마음을 감추려, 갈증 때문이라며 시방 벌컥벌컥 마시려는 이것은 냉수일까요? 사랑하는 그대일까요?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신구대학교수 dsseo@shing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