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대피소의 양보 우동 10그릇, 50명이 서로 "먼저 드시죠” 뭍으로 밀려 올라온 배들 12일 일본 미야기현의 항구도시 게센누마시. 쓰나미에 떠밀려온 대형 선박들이 물이 빠져나간 뒤 건물 틈에 갇힌 채 오도가도 못하고 있다. 대지진 여파로 쓰나미가 덮친 게센누마시는 11일 밤 어선용 연료탱크가 넘어지며 불붙은 기름이 바닷물을 타고 시가지로 번져 도시 대부분이 전소됐다. [게센누마 AP=연합뉴스] # “오사키니(お先に·먼저 드시죠)”, “아닙니다. 전 아직 괜찮습니다.” 규모 9.0의 대강진과 10m가 넘는 쓰나미가 동일본을 덮친 뒤인 11일 오후 6시, 아키타(秋田)현 아키타시의 그랑티아 아키타 호텔. 정전으로 암흑으로 변한 호텔 로비에선 기이한 장면이 연출됐다. 호텔 측이 “전기가 들어올 때까지 숙박객을 받을 수 없다”고 안내하자 로비에 몰려 있던 숙박 예약객 50여 명은 조용히 줄을 서기 시작했다. 누가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노약자들이 앞에 세워졌다. 암흑 속에 일렬의 줄이 생겼다. 순서를 다투는 모습은 일절 없었다. 잠시 후 호텔 측이 “정전으로 저녁을 제공할 수 없다”며 긴급용으로 우동 10그릇을 가져왔을 때다. 우동그릇을 향해 달려들기는커녕 너나 할 것 없이 다른 고객의 허기를 걱정하며 뒤로 뒤로 우동을 돌리는 ‘양보의 릴레이’가 이어졌다. 피해가 가장 컸던 미야기(宮城)·이와테(巖手)현을 비롯, 일본 전역에서 주인 없는 상점에서 약탈 행위가 있었다는 뉴스는 아직 단 한 건도 없다. # 도호쿠 미야기현 북동부에 위치한 미나미산리쿠(南三陸) 연안 지역. 마을 대부분이 사라지고 화재로 검게 탄 숲의 흔적만 남아 있다. 쓰나미에 육지로 밀려온 선박은 선미가 하늘을 향한 채 거꾸로 땅에 박혀 있다. 이번 지진의 최대 피해지역인 이곳에선 ‘실종자 1만 명’ 소문까지 돈다. 그러나 고성이나 원성은 들리지 않는다. 피난소에 모인 100여 명의 주민들은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나지막한 목소리로 “빨리 복구가 되길 바랄 뿐”이라면서 “내일”을 말한다. 누구 탓도 하지 않는다. 모자라는 물과 담요를 나눠 쓰며 서로를 위로하는 감동적 장면들이 전파를 타고 있다. 일본적십자사 조직추진부 시로타(白田) 과장은 13일 “개인과 기업들로부터 성금과 구호물자가 쇄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를 향해 늘 으르렁거리던 야당 의원들도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나라 구하기에 발벗고 나섰다. 위기 앞에 손잡는 공동체 의식은 일본 사회의 저력이다. # 한국에서 재해 보도를 할 때 희생자를 취재하는 건 보통이다. 시신이 안치된 빈소와 병원의 모습이 시시각각 비춰진다. 그러나 일본 대지진 보도에서 일본 언론은 달랐다. 쓰나미로 가옥과 차량이 쓸려 내려가는 장면이 TV에 자주 비쳐지지만 어느 채널에서도 쓰나미에 휩쓸리는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죽은 이도 이 세상에 남는다”는 일본인의 특유한 사생(死生)관 때문이지만 울부짖거나 흐느끼는 모습도 좀처럼 화면에서 보기 힘들다. TV아사히의 한 관계자는 “재해 예방을 위한 목적 외에는 일반 시민에게 큰 충격을 주는 화면은 최대한 억제한다는 게 재해 보도의 암묵적인 룰”이라고 말했다. 11일 지진이 발생한 뒤 쓰나미 경계보가 해제된 13일 새벽까지 모든 TV방송 진행자는 헬멧을 쓰고 진행했다. 이처럼 지진 규모나 피해 규모와 달리 일본은 무섭도록 냉정하고 침착하다. 이유가 있었다. 예를 들어 도쿄의 부도심인 신주쿠에 위치한 요쓰야(四谷) 사거리에 있는 소방서. 12층 건물의 10층 언저리 외벽에는 눈에 띄는 선이 그어져 있다. 이 선은 지상으로부터 높이 30m를 알리는 표시다. 그 옆에는 “이 높이는 바로 1993년 홋카이도(北海道) 남서부 지진으로 오쿠시리(<5965>尻)섬을 덮친 쓰나미의 높이”란 설명이 붙어 있다. 쓰나미란 언제 어느 때나 자신에게 닥칠 수 있는 문제란 걸 인식시키고 평상의 준비가 필수적이란 걸 알리기 위해서다. 일본인들은 꾸준하고 일관된 재해 대처 교육을 유치원 때부터 받는다. 책상 옆 고리에는 늘 재해에 대비한 머리에 뒤집어쓰는 방재 두건이 걸려 있다. 지진이 발생하면 ‘방재 두건 착용→책상 밑 대피→운동장 대피→질서 확보’까지 눈 감고도 할 정도다. 철저한 재해 예방 교육은 초등학교 입학 후 첫 수업에서 배우는 “메이와쿠 가케루나(남에게 폐를 끼치지 마라)”란 일본 고유의 정신 가치와 함께 대형 재해에 침착히 대응하게 하는 비결이다. 여기에는 자신에게 다가온 처지를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일본인의 특성도 작용한다. 재해를 당한 일본인들이 크게 흐느끼거나 울부짖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도 “내가 그런 행동을 하면 나보다 더 큰 피해를 당한 이들에게 폐가 된다”는 극도의 배려정신 때문이다. 재해 현장에서 본 일본의 모습. 그건 “일본은 있다”였다. 김현기 특파원 ◆메이와쿠(迷惑)=‘남에게 끼치는 폐’를 뜻하는 일본말. 일본의 가정·학교 교육과 사회 윤리의 핵심이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마라’는 것이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호칭 |
[동일본 대지진] 일본은 있다 … 대참사 앞에서 배려의 ‘메이와쿠문화’ … 세계가 놀랐다중앙일보 원문 기사전송 2011-03-14 00:50 최종수정 2011-03-14 21: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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