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내 증조모는 독실한 불자이셨다. 천관사에서 백일기도를 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나의 할아버지이시다. 증조모는 아들을 위해 모든 부처님께 시주를 했다.
증조할머니의 부처님은 마을 사람들과 문밖에 온 거지들이었다. 아예 거지 대접용 개다리소반과 밥그릇 숟가락 젓가락들을 따로 마련해놓고 사용하게 했다.
돌아가실 때 당신의 손자며느리에게 “나 죽으면 울지 마라, 나는 벌써 극락 세상에 가 있을 것인께. 울고 싶으면 ‘관세음보살’만 염송해라”하고 당부하셨다. 아마 그 증조모의 원력으로 내가 불자가 되었는지 모른다.
천관사에서 백일기도 하여
할아버지를 낳은 증조모는
모든 부처님께 시주했다
홀연히 들려오는 목탁소리로 인해 잠을 깼다. 심장 모양의 황갈색 나무통(목탁)에 뚫려 있는 작은 구멍 속의 어둠을 울려 나오는 소리. 찌는 듯 무더운 여름 한낮, 논에 멸구를 잡고 들어온 나는 큰방 툇마루에서 동생과 나란히 누워 낮잠을 자고 있었다. 나와 함께 일을 한 어머니는 안방에 누워 자고, 아버지는 사랑방에 누워 잤다. 스물한 살 때였다.
스님은 여자의 목소리가 연상될 만큼 가느다라면서 청아하고 향 맑은 목청으로 염불을 하고 있었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고음으로 연주하는 클라리넷 소리 같은 염불소리가 내 가슴을 울렸다. 몸을 일으키고 염불하는 스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밀짚모자를 쓴 채 훌쭉한 회색 바랑을 짊어진 앳된 유백색 얼굴의 스님은, 꿈꾸는 듯한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하면서 목탁을 두들기며 염불을 하고 있었다. 그가 응시하는 허공을 나도 바라보았다. 그 허공이 목탁 소리 같은 울림이 되어 내 가슴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어머니가 눈을 뜨지 않은 채 깊이 잠긴 목소리로 동생을 향해 말했다. “찻독그릇에서 쌀 한 됫박만 떠다 드려라.” 동생이 몸을 일으켰다. 나는 동생의 손을 잡았다. 동생이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나는 동생에게 도리질을 했다.
스님이 염불을 마치고 몸을 돌려 사립 밖으로 걸어 나갔다.
어머니가 꾸짖었다. “얼른 시주하라니까 뭣하고 있냐!” 나는 동생의 등을 떠밀었다. 동생은 마루로 달려가서 바가지에 쌀을 떠가지고 나왔고, 나는 “얼른 달려가서 드려라”하고 재촉했다.
팬티만 입고 윗도리를 벗은 동생은 시주 바가지를 들고 골목길로 달려 나갔다. 잠시 뒤, 동생이 시주를 그대로 들고 들어오면서 고개를 갸웃하고 말했다. “그 스님 어디로 가버렸는지 안 보여요.”
내가 말했다. “골목길로 죽 내려가 봐라. 어느 집에서 염불을 하고 있을 것이니까.” 동생은 런닝셔츠를 걸쳐 입고, 시주 바가지를 들고 달려 나갔다. 한 참 뒤에, 가지고 간 시주를 그대로 들고 돌아온 동생이 말했다. “아랫골목 더듬어서 사장까지 달려 갔는디, 그 스님 벌써 노두머리 쪽으로 가고 있었어요. 우리 집에서만 염불을 하고는 다른 집은 들어가 보지도 않고 총총 가버린 것이어요.”
그해 늦은 가을 어느 날, 관산읍까지 30리 길을 걸어간 나는 용시동 뒷산 기슭의 굽이도는 가파른 자드락길을 올라갔다. 천관사로 가는 길이었다.
지난 여름에 내 집을 찾아와, 청아하고 향 맑은 염불소리를 들려준 그 앳된 스님이 천관사에 뿌리를 두고 있을 듯 싶었다. 자드락길 가장자리에는 마른 회백색의 억새풀 숲이 무성했다. 겨우 내내 하얗게 바래진 억새꽃송이들이 한 많은 혼령처럼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달려온 북서풍 한 자락씩을 움켜쥐고 춤을 추면서 ‘후리휘히 후리휘히…’하고 소리쳐 노래하고 있었다.
증조할머니의 그 부처님은 마을사람들과 문밖 거지들
소설 ‘아제아제~’ 주제는 천관사 ‘바람’이 가르쳐 준 것
천관사 마당에 발을 들여놓았다. 자그마한 전각 하나가 허허 벌판 동북쪽에서 서남쪽을 향해 볼썽사납게 주저앉아 있었다. 그 앞으로는 까만 구들장과 타지다가 만 기둥들이 자빠져 있었다. 전쟁 때에 불탄 것을 치우지 않고 있었다.
전각 문지방 위에 걸려 있는 ‘대웅전’이란 현판이, 고양이 머리에 씌워 놓은 탕건 같았다. 찬바람이 매섭게 휘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안쪽에 체구 자그마한 금빛 불상이 눈을 반쯤 감고 앉아 있었다. 불상 주위에 음음한 보랏빛이 번지고 있었다. 억새들의 사각거리는 소리가 전각 안을 맴돌았다. 불상이 쓸쓸해보였다.
그 전각 맞은편에 회갈색의 요사채가 있었다. 동남쪽 갓방의 댓돌 위에는 허름한 흰 운동화 한 켤레가 놓여 있는데, 그 옆방의 댓돌에는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았다.
“실례합니다.” 모퉁이 방에서 잿빛의 솜두루마기와 통바지를 입은 머리칼 반백의 늙수그레한 여자가 나왔다. 스님을 뵙고 싶다고 말하자, 그녀는 나의 위아래를 살피면서, 스님이 출타했노라고 말했다.
지난 여름의 앳된 스님을 머리에 그리며, 스님 나이가 몇 살쯤 되느냐고 내가 묻자, 그녀는 내 검정 핫바지 차림새와 덥수룩하게 긴 머리를 다시 뜯어보고 나서 말했다.
“세속 나이로 환갑이 다 돼 가요.”
나는 다시 제쳐 물었다.
“혹시 여기에, 스무 살 쯤 된 스님이 또 한 분 계십니까?”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댓돌에 신이 놓여 있지 않은 서북쪽 갓방에다 희망을 걸고, “방 한 칸을 얻어 공부하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하고 말했다. 만일 방 한 칸이 비어 있다고 한다면, 봇짐 싸 짊어지고 와서 묵으며 부지런히 책을 읽고 시와 소설을 쓰고 싶었다.
여자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이 방은 스님이 쓰시고, 저 방은 공부하는 학생이 쓰는데…그 학생은 시방 집에 다니러 갔어요.”
나는 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불에 탄 흔적들을 다시 둘러보았다. 여자가 방 안으로 들어간 다음, 나는 한동안 대웅전을 등진 채 쓰러진 기둥과 바람벽들 앞에 서 있다가 몸을 돌렸다. 자드락길로 나서려 하는 내 발길 앞에서 마른 낙엽들이 들쥐떼처럼 달려갔다. 비탈진 길을 내려오는 내 가슴은 서북풍에 춤추는 억새들의 혼령 같은 흰 꽃들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그 앳된 스님은 어느 절에 있을까. 그 스님은 사람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 스님의 혼령이 억새꽃으로 변하여 지금 나에게 서걱서걱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다. 푸른 하늘에 떠가는 구름 한 점을 쳐다보면서 그 말을 해독했다.
‘너도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어 살아버려라.’
서라벌 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들어갔는데, 거기 나보다 한 살 위인 스님이 있었다. 법명이 도안이었다. 자취를 하던 나는 돈암동 적조암에 뿌리를 둔 도안스님에게 가서 밥을 얻어먹기도 하고 잠을 자기도 했다. 그 스님의 삶을 이해하려고 경전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 인연으로 말미암아, 작가가 된 다음 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썼다. 이 소설의 주제는 천관사에서 만난 바람이 가르쳐 준 것이었다. 그 도안스님은 미국 로스안젤리스에서 ‘관음사’를 열고 중생을 제도하시다가 얼마 전에 열반하셨고 나는 낙향하여 해산토굴에 몸을 담았다.
늙어 낙향했다. 지난 이른 봄에 장흥 천관사 주지 지행스님이 찾아와서 “선생님 제 토굴에서 봄을 잡수시지 않으실랍니까?”하고 나를 꼬였다. 경관이 수려하고 장엄한 천관산 천왕봉을 배경으로, 대웅전을 복원했다면서, 봄의 산나물 밥상을 전문으로 차리는 보살이 점심 준비를 할 거라고. 그리하여 천관사에 가서 봄을 먹고, 시 한 편을 썼다.
천관사에 가서 봄을 먹었다
보랏빛 오랑캐 꽃을 먹고
분홍빛 꽃잔디 꽃을 먹고
황금색 배추꽃을 먹었다.
질경이도 두릅도 먹고 칡 순도 먹었다.
꾀꼬리 울음소리 휘파람새의 울음소리
비둘기 소리 장끼 소리도 먹었다.
삼층 석탑도 먹고, 범종도 먹고,
대웅전 안의
부처님도 관세음보살님도 먹었다.
나는 거대한 한 송이 꽃이 되어
가슴 두근거리며
해우소에 가서 가랑이를 벌리고
봄의 교향시를 휘갈겼다.
■ 한승원은…
1939년 전남 장흥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학을 거쳐 1968년 단편 <목선>으로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등단했다. 조선대 초빙교수 등을 역임했고 <불의 딸> <아제아제 바라아제> <해산 가는 길> <해변의 길손> <물보라> 등 주옥같은 작품을 냈다.
특히 ‘불교’와 ‘바다’에 관한 작품이 많은 것에 대해 한승원은 “바다가 현실적인 바다라면 불교는 화엄의 바다”라며 “우리들이 나오고 또 돌아가야 할 시원(始原)”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역사소설 <다산>은 <흑산도 가는 길> <초의> <추사> 등 근작 역사소설 등을 통해 다산의 주변인물들을 다뤘던 작가가 오랜 연구와 집필 끝에 그 중심에 있는 다산 정약용을 정면으로 다룬 명저다.
한국소설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이상문화상 김동리문학상 미국 기리야마 환태평양도서상 등 수상경력도 화려하다. 현재 고향인 장흥에 자신이 호를 따 ‘해산토굴(海山土窟)’이라 불리는 토굴에서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불교신문 2731호/ 6월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