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등산

만리장성의 동쪽과 서쪽 끝

金 敬 峯 2012. 5. 27. 23:41
 
만리장성의 동.서.끝.

옮긴 글  부평 시니어 기자단

 

< 만리장성의 끝.jpg>

요즘 이 사진이 '만리장성의 끝'이라는 제목으로 돌고 있습니다.

성벽이라는 것은 지상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육지를 기준으로 볼 때 바다에 닿은 부분을 '끝'으로 보기 쉽습니다.

만리장성은 동서로 길게 이어진 장성을 이야기 하는 것이기 때문에

동쪽을 '끝'이라고 하면 서쪽을 '시작'이라고 불러야하겠지요.

뭐 그냥 동쪽 끝, 서쪽 끝이라고 해도 되겠고요.



이 사진이 '만리장성의 끝'이라는 제목으로 도는 것은 이렇게 생각해볼만한데...

사진 아래에는 꼭 '산해관'이라는 설명이 붙곤 합니다.

'산해관(山海關)'은 이름부터가 '관'문인데, 딱 보시기에도 저긴 관문이 아니죠?

저긴 그냥 벽일 뿐;

◈§ 100여년 전의 중국모습 §◈


< 천하제일관 >

보통 산해관이라고 하면 보통 이 곳을 일컫습니다.

산해관은 명나라시대의 매우 중요한 동북방어기점으로, 후금(청)의 공격을 막아낸 거점으로 유명합니다.

산해관이라는 것은 이 '문'자체를 말하는 것은 아니고,

이 문을 중심으로 한 이 일대전체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지요.

좁게 보면 이 관문.

넓게 보면 이 관문을 중심으로 한 주변일대의 모든 장벽과 요새를 아우르는 개념입니다.



사진 속 건물이 꽤나 낡아보이기는 하는데요..

위 성문(동문)자체도 '고작 저거?'라고 할게 아닙니다.

위 사진은 광장에서 바라본 모습이죠.

성문 앞에는 옹성이 둘러쳐있으며,

그 옹성바깥에는 커다란 해자가 있고

해자를 건너는 다리를 통해야 통행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해자와 해자를 건너는 다리(그것도 도개교였다나요?;) 에 접근하려면

외성을 통과해야합니다.

외성주변에는 또 해자가...

이렇게 단단한 방벽을 갖추고 있으니 외적이 통과하기는 굉장히 어려운 노릇이죠.

그리고 성만 있는게 아니고 수많은 군사들이 주둔하는 곳이었습니다.


여기를 두고 '산해관'이라고 설명하는데...

위 위성사진에는 해자는 나와도 바다로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죠.

그럼 여기는 어딘가...

붉게 표시한 부분이 사진속에 보이는 그 장소입니다.


여기는 '노룡두'라는 곳으로

'老龍頭' 즉, 늙은 용의 머리라는 곳입니다.

길고 긴 성벽을 용의 몸체에 비유한다면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온 이곳을 용의 머리에 비유한 셈이죠.


그러니까 '노룡두'라는 별도의 이름이 있는 곳입니다.



산해관 관문이 있는 지점으로부터 남동쪽 직선거리로 6km 정도 떨어져 있기도 하고요.

* 직선으로 연결되지 않은 것은 지형에 대한 고려가 있다고밖에 할 수 없겠죠.


그런데 '산해관'이라는 설명이 영 틀린 것은 아닙니다.

광의의 산해관에 포함되는 장소니까요.

표지에도 '산해관경구- 노룡두'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산해관의 일부인 셈이니까요.

그래도 산해관을 대표한 관문은 아니므로
'산해관'을 포함하여 말하거나 따로 '노룡두'라고 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1. 노룡두

2. 산해관 노룡두

이 정도로요.

노룡두라는 설명없이 해당장소를 두고 '산해관'이라고 하는 것은 적절한 지칭이 아닙니다.


각산산성 - 노룡두까지 이어지는 장성의 거점요새 전체 = 산해관

이렇게 '산(山)'과 '바다(海)'사이에 있는 동서로 통하는 지형이라서
저 일대에 '산해관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입니다.

명나라이전에는 '유관', '투관', '임려관' 등의 이름으로 불리긴 했지만요.



* 노룡두에 있는 별도의 요새는 '영해성'이라는 이름이 있기도 합니다.

< 가욕관 >

산해관이 만리장성 동쪽의 끝이라면 이 쪽이 서쪽의 끝입니다.


사막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산해관처럼 바다같은 곳에서 끊기지는 않습니다.

저기서 끝납니다.

꼭대기가 돈대가 하나 있는데, 저기가 끝입니다.

왼쪽에 계곡따라 내려오는 길이 나있죠.

저 꼭대기가 만리장성의 서쪽(좌표상) 끝 입니다.

해당 돈대를 끝으로 성벽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습니다.


여기는 가욕관의 남쪽 끝

그런데 정작 이쪽을 만리장성의 서쪽 끝(시작)이라고 한다네요.

사진 오른쪽 상단에 보이는 벽과 돈대가 절벽을 맞이해 끝난다는 것이죠.

그 돈대를 두고 '장성 제일돈(제1돈)'이라고 이름붙여 놓았습니다.

가욕관은 '서-> 동'의 관문이기 때문에

진입로를 남북으로 가로질러 막는 형태입니다.
(가도 중앙에 관문이 있음.)


근데 여기까진 명대의 만리장성 개념에 기초한 값이고요.


진, 한대의 만리장성에 기초하게 되면 만리장성의 시작, 끝이 또 달라집니다.

< 옥문관 >

영문자료에서는 jade gate 라고 합니다.

요 옥문관은 한대의 것으로

성벽이 돌이나 벽돌이 아닌 흙으로된 토축성입니다.

여기를 만리장성의 서쪽 끝이라고 할 수 도 있는 것이죠.



애초에

< 누르면 커짐. from 위키백과 >

시대별로 위치에 차이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국경의 변화도 있으니까요.

영역이 겹치는 경우에는 업데이트해서 덮어쓰기했을테니 옛 흔적은 사라지고

가장 최근의 것만 남아야하는게 정상일테니..

옥문관쪽처럼 겹치지 않는 경우에나

당시의 흔적이 오늘날까지도 남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2009년에 중국 정부가 야심차게 새로이 발표했다는 '만리장성'의 동쪽 끝.

'호산장성'이 있습니다.

* 국내에서는 이를두고 고구려대의 박작성을 1990년부터 마개조하여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관광안내도에 따르면 윗쪽(남쪽)이 북한이고, 가운데에 흐르는 강은 압록강입니다.

오른쪽에 있는 돈대가 새로이 지정된 만리장성의 '끝' 이자 '시작점'이겠지요.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것은 끝(시작)은 산해관(발해만)이 아니라 호산장성(압록강) 이라는 이야기.

중국의 위키백과인 '바이두'에서도 산해관이 1990년 이전에는 만리장성의 시작점으로 인식되다가

고고학자들에 의해 호산장성이 발굴(?)되어 만리장성의 시작점이 바뀌었다고 설명하고 있죠.

< 산해관(샨하이)-가욕관(자위) >

이것은 위키백과에 올려져 있는 이미지인데요.

이게 현재 남아있는 '만리장성'이라고 불리는 그 명대의 만리장성을 나타낸 그림입니다.

(...최소한 1990년 이전에는 이렇게 보았다는 이야기)


발굴(?)했으면 발굴현장을 위에 나온 '옥문관'주변의 '한장성유적지'

처럼 철장을 둘러치고 보호하면 충분할걸...

현대인이 '만리장성'이라고 볼만한 번듯한 벽돌장성으로 지어놨습니다.

발굴해야할 정도의 흔적이 아주 대단하게 변모한 것이죠.

위 사진에 나오는 문루가 있는 곳이 상단의 주차장쪽에서 바라본 방향입니다.

문루 옆으로 단절된 부분부터 남쪽 돈대에서 끝(시작?)이 납니다.

위 안내도와 비교하여 볼 수 도 있겠네요.




어쨌든 뭐...'1990년 이전에는 만리장성의 시작점이 산해관이었던 것이고,

그 이후에 호산장성으로 바뀐 것이라는 것'은 사실인 것입니다.

나중에 북한이 중국에 흡수되는 일이 발생하게 되면,

아마 장성의 길이는 더 길어진다고 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고요.

(하지만 그 때는 조선이 버티고 있어서 그럴 일은 거의 없을일이긴합니다만..)

< 천하제일관 >

산해관 본성의 동문(진동문) 성루에는 '천하제일관'이라는 편액이 붙어 있습니다.

이 것은 만리장성의 '1st Gate'라는 의미와

'천하에서 제일가는 힘을 갖춘 관문'이라는 의미가 혼재된 것일겁니다.

옛부터 중국인들의 인식에서도 '제1관'이라는 인식이 있었고,

산해관의 동쪽을 가리켜 '관동', '관외' 라 인식하는 등 굉장히 중요한 랜드마크였던 것이죠.

이를 똑같이 산해관을 장성의 시작점으로 인식한게 명대부터라고 할 수 있다고 봐도...

호산성이 1469년에 지은거라고 하니까..

그렇다면 당시 명나라 사람들은

그 때 자기들이 지어놓고도 정작 '장성'이라고는 인식하지는 않았다는 이야기 -_-;

그러고나서 수백년이 지난 이제와서 '시작점이 아니었다'......이 뭐;




당연한(?) 이야기지만

세계유산을 등재한 유네스코에서는

아직(?) 만리장성의 시작을 '산해관' 으로 보고 있습니다.

(끝은 가욕관)

 

 




**<오늘도 즐거운 마음으로 힘차게 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