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만큼 공부에 대한 생각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학자도 드물다. 그가 유학의 종장으로 불리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논평이나 비판 같은 개별 사안에 집중한 데 비해, 그는 집을 짓고 길을 닦는 기초공사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성학집요』는 『대학』을 모델로 삼아 군주의 공부론을, 『격몽요결』은 『소학』을 모델로 삼아 젊은이의 공부론을 상세히 다룬 책이다. 태어나서 늙어 죽을 때까지 공부에 매진할 것을 이 ‘학구파' 지성은 사람들에게 요구했다.
1단계 | 먼저 해야 할 것과 나중에 해야 할 것
율곡 공부론의 토대를 이루는 것은 ‘선후본말론(先後本末論)'이다. 공부에는 선후, 즉 먼저 해야 할 것과 나중에 해야 할 것이 있다. 또한 만물에는 근본(根本)과 말단(末端)이 있다. 이 둘을 구별해 낼 줄 알아야 공부가 시작될 수 있다. 선후본말론의 바탕에서 율곡은 자신의 몸을 갈고 닦는 수기(修己)를 공부의 근본으로 삼았다. 하지만 말단이라 해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고 기본이 되어야 그 다음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견 익숙해 보이지만 오늘날 요구되는 ‘리더의 자질'과 매우 흡사하다.
수많은 프로젝트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선후와 본말을 가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신문 기사의 헤드카피와 기업의 사훈(社訓)도 선후와 본말의 원칙에 의거해 뽑혀 나오는 것이다. 기업 경영에서도 본과 말은 결코 바뀌는 일이 없다. 기업의 본질은 수익을 내는 것이다. 워런 버핏의 제 1의 투자 원칙은 “돈을 잃지 않는다”이다. 그럼 제 2원칙은 무엇인가. “1원칙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백 가지를 잘해도 한 가지를 잘못해서 그르친다면 바로 이 한 가지가 선이고 본인 것이다.
2단계 | 욕망을 억압하지 않고 다스리는 법
그 다음 단계는 ‘사욕(私慾)'을 다스리는 방법이다. 율곡은 인간의 기질적인 문제를 공부의 한 문턱을 넘어서는 중요한 부분으로 보았다. 사욕과 인욕(人慾)의 정체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가 유학의 공부론이 제기하는 핵심적인 질문이라 할 수 있는데, 율곡은 극기복례(克己復禮)를 통해 그 해답을 주고 있다.
“대개 마음의 온전한 덕(德)은 천리(天理)가 아닌 것이 없지만, 또한 인욕에 의해 무너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인(仁)을 행하는 자는 반드시 사욕을 이겨서 예(禮)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일이 천리에 맞고 본심의 덕이 다시 나에게서 온전하게 갖춰집니다.”
‘극기'란 자기의 욕망을 극복하는 것이다. 사욕의 구체적 내용은 치우친 성질, 이목구비 등과 같은 감각기관의 욕망, 남과 나 사이에서 시기하고 이기려는 마음이다. 율곡은 욕망을 무조건 억누르라고 한 것이 아니다. 무질서한 욕망에 질서를 부여해서 다스리라고 했다. 이는 노자(老子)의 가르침과도 통한다. 노자는 “훌륭한 상인은 물건을 깊숙이 숨겨 두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군자는 아름다운 덕을 지니고 있지만 모양새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인다고 하오”라는 말을 남겼다. 물건을 깊숙이 감춘다는 것은 자신의 욕망이나 야망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그것을 성취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3단계 | 신민(新民)이 되어라
욕망이 무엇인가를 파악하고 다스릴 수 있을 때 그 다음 단계로 오는 것이 ‘신민(新民)'이다.
“신(新)이란 옛것을 고침을 말한다. 이미 그 명덕(明德)을 밝혔으면 또 마땅히 미루어 남에게 미치게 해서 그로 하여금 또한 구습(舊習)의 나쁜 점을 버리게 하는 것을 말한다.”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면 익숙한 습관과 통념, 이런저런 욕망과 계획으로 마음이 가득 차 있다. 사람들로 하여금 이것을 버리게 해서 본래의 선한 마음으로 되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신민이다. 이것 또한 본격적인 공부 이전에 반드시 선행해야 한다. 그 이유는 그 다음 단계의 공부가 ‘궁리(窮理)'와 ‘함양(涵養)'이기 때문이다. 이 둘은 모두 내면을 ‘채우는' 공부이기 때문에 반드시 그 전에 그릇이 깨끗하게 비워져 있어야 한다.
율곡은 궁리의 내용을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규범을 익히는 궁리이고 이것은 오늘날로 따지면 윤리나 철학공부다. 또 하나는 동·식물 등 구체적인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는 것으로 역시 오늘날의 자연과학적 공부를 의미한다.
4단계 | 사물을 완벽하게 아는 공부-격물치지
율곡이 말하는 궁리의 핵심은 독서를 통해 격물치지(格物致知)에 이르는 길이다. 실제 사물을 연구하여 지식을 완벽하게 한다는 뜻으로 『대학』에 나오는 말이다. 특히 독서를 통한 격물의 방법을 통해 획득되는 앎(知)의 단계를 세 단계로 구분하고 있는데, 하수는 성현의 글을 읽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보통은 성현의 글을 읽고 깊이 생각하면서 행함으로 옮기지 못하는 경지이고, 상수는 이치를 이론적으로 깊이 알 뿐만 아니라 행함으로 연결시켜 지와 행의 합일을 유지하는 경지를 의미한다.
이론은 ‘경험'이라는 조미료가 없으면 결코 맛을 내지 못한다. 실제 상황에 적용해서 효과를 보는 이론만이 내면에 쌓여 나간다. 아무리 많이 읽고 똑똑해도 축적되는 것이 없다면 결국 ‘입'만 살아서 삶 자체가 방만해진다. 리더십의 핵심도 여기에 있다. 알고도 실천하지 않아, 그런 과정을 통해 얻어진 ‘경험치'가 없으면 실패를 피해갈 수 없다.
이와 관련해 수학(數學) 공부와 의학(醫學) 공부를 비교해보자. 수학 공부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평소의 수리 감각을 훈련시켜 더욱 숙련된 감각을 만드는 과정이다. 논리의 징검다리를 잘 따라가면 정답에 도달하며, 논리에 결함이 없는데 오답이 나오기는 어렵다. 혹 자력으로 답을 구하지 못할 경우, 해설을 보며 충분히 궁리하면 연산의 매 단계를 이해할 수 있다.
반면 의학 공부는 의대생들이 건강에 대해 가지고 있는 평소의 감각에 기초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존 감각을 깨뜨리고, 건강에 대한 새로운 감각과 지식을 한꺼번에 습득하는 것이 의과대학 공부다. 그럴싸한 논리도 의사 국가고시에서는 언제든지 오답이 될 수 있다. 의학 지식은 그것을 환자에게 적용했을 때 잘못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순수한 논리로만 구축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즉 율곡이 말하는 궁리는 수학공부와 의학공부를 병행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의사가 환자에게 얼마나 큰 신뢰를 심어 주는가. 리더십과 관련해서 우리가 유념할 부분이다.
5단계 | 함양·수렴·거경, 마음공부의 완성
율곡은 공부의 길을 “한 알의 환약이나 한 첩의 가루약으로 일조일석(一朝一夕) 사이의 효험으로 성급하게 정상인으로 회복될 수 없다고 괴이하게 여겨서야 되겠는가?”라며 도달하기 쉽지 않음을 말했다.
궁리를 통해 지식을 완벽하게 하는 것으로 공부의 모든 과정을 마쳤다고 생각해서는 오산이다. 궁리하는 중간 중간에 ‘함양(涵養)'과 ‘수렴(收斂)'이라는 마음의 단련과정을 계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함양과 수렴은 어떻게 보면 서로 반대되는 듯하면서 서로 보완되는 공부법이다.
“미발(未發)일 때는 마음이 고요하여 털끝만한 사려도 없습니다. 다만 고요하여 지각이 어둡지 않으며 텅 비고 조용하여 아무런 조짐도 없는 듯하지만 만상이 이미 빽빽하게 갖추어져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 지점은 극히 이해하기 어렵지만 단지 이 마음을 경(敬)으로 지키고 함양함이 오래 쌓이면 저절로 힘을 얻게 됩니다. 이른바 경으로 함양한다는 것은 다른 방법이 아니라 다만 고요하고 또 고요하여 염려가 일어나지 않게 하되 지각이 또렷또렷하게 깨어 있어(惺惺) 조금도 혼매하지 않게 할 뿐입니다.”
새벽에 일어났을 때 유난히 정신이 맑을 날이 있다. 잡다한 세상의 일은 멀리 물러나고 나의 자아만 깨끗하게 살아서 움직이는 때를 누구든 경험해보았을 것이다. ‘미발(未發)'은 대강 그런 의미이다. 그러나 이것은 마음이 텅 빈 것이 아니라 오히려 꽉 차 있는 것이다. 그 에너지를 깊숙하게 호흡하고 유지하는 것, 이것이 함양공부다. 즉, 눈이 맑아지는 공부다.
‘수렴'은 몸가짐을 수렴하는 것, 언어를 수렴하는 것, 마음을 수렴하는 것으로 나뉘며 혼자만의 방 안에서가 아니라 복잡한 세상 한복판에서 자신이 했던 말과 행동을 되돌아보는 일종의 성찰을 말한다. 율곡은 맹자를 인용해 “구슬이 이지러지고 흠이 난 것은 갈고 닦아서 반듯하게 할 수 있지만 말은 한 번 잘못하면 건질 수 없고 나를 위해 혀를 붙잡아 줄 사람도 없다”며 행동의 신중함을 요구한다.
율곡은 이 함양과 성찰을 경(敬)으로 통합한다. 이것은 마음공부의 마지막 단계다. 아래에 율곡의 말을 직접 인용함으로써 율곡의 공부론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고자 한다.
“거경은 고요함과 움직임을 통관하는 것이다. 고요히 있을 때는 잡된 생각을 일으키지 않은 채로 맑고 텅 비어 적연하되 깨어서 어둡지 않고, 움직일 때는 일에 임해서 한 가지에만 마음과 힘을 모으고 두 갈래 세 갈래 흩어져 조금도 잘못이 없어야 한다. 몸가짐은 반드시 정제하고 엄숙해야 하고 마음가짐은 반드시 경계하고 삼가고 두려워해야 한다. 이것이 거경의 요체이다.”
- 강성민 / <2천년의 강의> 저자. 교수신문 편집국장을 지냈으며, <인물과 사상>에 우리 시대의 주목받는 저술가들의 책을 분석·비평하는 ‘탈(脫) 아카데미 저자열전'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