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독일에서 45년 동안 현직 교사로 근무한 스테판 선생님에게 들어보는
독일교육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45년 동안 김나지움(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라틴어와 스포츠, 지리를 강의 했고, 정년퇴직을 한 후 지금까지 예전에 근무하던
학교에서 시간제 강사로 라틴어 수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스테판 선생님에 관해서는 ‘교사경력 45년, 노선생님이 본 독일교육’이라는 글에서 자세히 소개했습니다.
독일교사들의 교장에 대한 생각
일전에 ‘독일 교장선생님은 ‘땜빵용’ 교사?’라는 포스트를 올린 적이 있다. 이 글은 순전히 외국인 학부모의 시각에 감지된 표면적인 독일 교장선생님의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독일교사들은 과연 교장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사실은 무척 궁금했다. 우리나라처럼 교장이라는 직위가 교사로서의 삶에 가장 큰 영광이고 성공한 모습일까? 오늘 스테판 선생님과의 인터뷰에서는 그동안 추측만 하고 있던 독일 교장선생님의 실제적인 교직사회에서의 위상과 일반 교사들의 생각에 대해 물어보았다.
스테판 선생님의 학교이야기를 듣다보면 그가 학생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고, 학교의 발전을 위해서도 관심이 지대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곤 했다. 그런데 교장이 못되고 정년퇴직을 한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 생겼다. 실력이 없어서? 혹은 운이 없어서? 이러저러한 생각을 하면서 훌륭한 선생님이 반드시 훌륭한 관료가 되는 것은 아니란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부분에 대해 정작 당사자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독일에는 네 단계의 교사 직위체계가 있다. 우선 평교사 단계인 스튜디엔라트(Studienrat)와 부장교사 정도의 위치로 보이는 오버스튜디엔라트(Oberstudienrat)가 있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이 단계에서 정년을 맞이한다고 한다. 그 다음이 우리나라의 교감 정도의 위치로 보이는 스튜디엔디렉토어(Studiendirektor)가 있고 다음 단계가 오버스튜디엔디렉토어(Oberstudiendirektor), 즉 교장이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이 나라는 일반 행정직 공무원들과 교사의 직급체계가 동일하다고 한다.
명예욕 없는 사람에게 교장은 매력 없는 자리
그가 정년퇴직 후 계속해서 시간강사로 근무하고 있는 김나지움은 현재 75명의 교사가 있는데 이 중 스튜디엔디렉토어, 즉 교감 정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6명이니 대략 그 비율을 알 수 있다.
스테판 선생님은 지난 1973년 36세의 나이에 당시로는 가장 어린 교감이 되었다고 하니 실력과 성실성을 이미 일찌감치 인정받았던 것 같다. 그러나 그는 별다른 변화 없이 이 슈튜디엔디렉토어로 65세에 정년퇴직했다. 빠른 승진으로 전도유망했던 교사가 30년 동안이나 교장이 못되고 정년을 맞은 것이다.
왠지 그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있을 것 같아 ‘아쉬웠던 적은 없었나? 교장이 되기 위해 노력해 본 일은 없는가?’라고 질문을 하니, 그는 약간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독일에서 교장을 원하는 교사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했다.
“내가 만일 교장이 되고 싶었다면 그동안 수도 없이 기회가 있었지요. 자리가 공석이면 누구나 응모할 수 있고 나는 항상 인사고과가 좋았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일이 없어 지원을 하지 않았습니다. 명예욕이 없는 사람에게 교장이라는 자리는 그리 매력적인 위치가 아닙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함께 일했던 대부분의 동료들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그 뿐 아니라 대부분의 교사들이 스튜디엔디렉토어, 즉 교감까지는 어떻게 해서든 승진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명예도 아니고 교장으로 승진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단지 돈 때문이다. 바로 아래 단계의 오버스튜디엔라트보다 월평균 400유로(약 70만 원 정도)의 월급이 차이난다고 하니 독일식 임금수준에서 이는 적지 않은 금액이다. 그 것 이외에 다른 이유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독일 교사들에게 교장이 얼마나 인기가 없는지는 공석인 교장을 선출할 때의 상황을 보면 잘 알 수 있다고 예를 들어주었다. 어떤 학교 든 교장 자리가 공석이 되면 모든 스튜디엔디렉토어들이 추천 없이 스스로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같은 학교가 아니라도 가능하기 때문에 자격여건을 갖춘 사람은 부지기수다. 그러나 정작 지원자는 한두 명일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가 45년 교사생활을 하는 동안 3명을 넘는 경우를 본 일이 없다고 하니 가히 그 관심도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또한 경쟁할 필요도 없는 단일 후보일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출세와 명예보다 개인적 행복을 추구하는 직업의식
그렇다면 교장이 되면 분명 더 많은 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는데 왜 대부분의 교사들이 사양하는 것일까. 스테판 선생님은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하며 독일인들이 인생을 살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대해 들려주었다.
독일 사람들은 1등으로 수영하는 것 보다 함께 수영하는 것을 더 가치 있게 생각하고 있고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고 한다. 말은 쉽지만 과연 말처럼 그렇게 쉬울까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명예나 출세보다는 개인의 생활을, 현실적인 행복을 중시하는 이들의 삶의 방식을 보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교장은 명예 때문에 혹은 돈 때문에 선택하기에는 그 보다 더 중요한 것들을 버려야 하는 어려운 자리입니다. 첫째는 전체 학교를 통솔해야 하는 부담감에서 오는 스트레스지요. 돈으로 살 수 없는 건강을 담보해야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과중한 업무입니다. 보통 일반 교사들은 1시 30분이나 2시 정도면 퇴근할 수 있지만 교장은 한 사람의 교사라도 수업이 있을 경우는 학교를 지켜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네, 다섯 시 이전 퇴근은 꿈도 꾸지 못합니다. 오후의 이 서너 시간은 운동이나 기타 취미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중요한 시간대입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한 가지를 포기해야만 하지요. 세 번째는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와 관계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교사들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맞아서 이 일을 선택했는데 교장이 된다면 아무리 계속 수업을 한다지만 가르치는 시간 보다는 학교행정에 매달려야 할 일이 더 많아집니다. 그렇게 되면 학교를 직장으로 선택한 이유와는 다른 상황이 전개된다는 것이지요.”
지극히 현실적이면서 합당한 이유이기는 하지만 현실은 다른 것이 또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니던가. 좀 더 나은 생활을 위해 돈을 중시하면서도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을 잃는다면 돈도 마다하는, 인간이면 빠지기 쉬운 출세와 명예라는 함정이 더 이상 함정이 아닌 독일인의 직업의식이 색다르게 다가온다. 간혹 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우리와는 자세가 많이 다르다는 인상을 받기는 했지만 ‘인기 없는 교장’ 이야기를 들으니 이들이 인생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출처 : | 독일교육 이야기 | 글쓴이 : 무터킨더 원글보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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