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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sdom 그린블랫 하버드대 교수

金 敬 峯 2014. 2. 22. 22:51

스티브 그린블랫(Greenblatt) 하버드대 영문과 교수는 자전거를 손으로 끌고 헬멧까지 쓴 채로 자신의 연구실로 들어왔다. 자전거로 출퇴근한다고 했다. 71세의 나이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단단해 보이는 몸매의 비결 중 하나일 것이다.

그가 쓴 책 '1417년, 근대의 탄생(The swerve: How the world became modern)'은 2012년 논픽션 부문 퓰리처상을 받았고, 지난해 조선일보가 올해의 책 10권 중 하나로 선정했다. 그는 셰익스피어 연구의 권위자이자 '신역사주의'라는 문학 사조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이 책은 '암흑의 시대'라는 중세에 르네상스라는 '일탈(swerve)'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는지를, 어느 광적인 책 수집가(책에서는 '책 사냥꾼'으로 표현한다)의 일화를 통해 생생하게 전한다. 포조 브라촐리니라는 교황청 사무국 간부는 잠시 교황청 일자리를 잃었을 때 고대의 문헌들을 찾아 책 사냥을 떠난다.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선 그런 책 사냥이 유행이었다.

포조는 독일의 한 수도원에서 우연히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라는 장시(長詩)를 발견한다. 1000년 전에 쓰인 이 시는 당시로선 가장 위험한 사상들이 숨어 있었다. '우주는 원자들의 우연한 충돌로 탄생했으며, 창조자란 없다. 사후 세계도 없다. 따라서 인생은 현생의 행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 쾌락의 증진과 고통의 경감이 인생의 최고 목표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이 같은 사상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정립한 에피쿠로스주의(쾌락주의의 일종)의 핵심 사상인데, 루크레티우스라는 시인이 그 정수를 시로 엮었던 것이다. 이 시는 몇 권의 필사본으로 9세기 무렵까지 전해지다가 홀연 사라졌는데, 500년 뒤 포조가 그중 하나를 기적처럼 발견한 것이다. 이 필사본은 곧바로 유럽 각지에서 널리 읽혔고, 르네상스 운동의 기폭제가 된다.

―포조는 기존 체제의 정점인 교황청 간부로 일했다. 그런 그가 이단의 사상을 담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책을 찾아다녔다. 그런 체제의 포용성이 르네상스를 낳은 토대가 아니었을까?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개방성이 르네상스의 토대가 됐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포조가 살았던 세상이 요즘처럼 혁명적인 아이디어에 개방적인 것은 결코 아니었다(종교 재판을 상기해 보라·편집자 주). 내가 책에 쓰려고 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그런 장벽이 쳐진 상태에서 어떻게 변화가 일어날 수 있었느냐이다. 포조는 시대 상황에 회의적이고 냉소적이었지만, 혁명적이라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그러나 그는 다른 방식으로 삶을 생각하는 방법이 있다는 걸 이해했다. 그는 성공한 관료였지만(그는 훗날 피렌체의 총리가 된다), 관료에만 머물지는 않았다."

―포조에게 호기심이 발동한 건가.

“인간은 누구나 호기심이 있다. 어린이를 보라. 심지어 원숭이나 고양이조차 호기심이 있다. 살아 있다는 기제의 일부는 새로운 것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문화라는 것은 흔히 현상을 유지하고 다른 방식으로 날아오르는 것을 억제하려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이집트 문화는 몇백 년 동안 변화가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당시에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호기심은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당시에도 호기심은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이념과 종교적인 믿음 구조가 너무 엄격했기에 간헐적인 폭발 또한 매우 드물었다. 르네상스 시대는 달랐는데, 일정한 안정성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사상을 껴안으려는 시도가 일어났다. 그러나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너무 앞서 나간 사람들은 심각한 문제에 빠졌다. 감옥에 갇히거나 화형을 당했다. 모든 사람이 변화를 환영한 것은 아니었다.”

진정한 쾌락은 절제를 요구한다

―루크레티우스의 시를 통해 널리 알려진 에피쿠로스주의는 과도한 욕망 추구를 경계했다는 점에서 금욕주의적인 측면이 있다(이 점에서 쾌락주의 즉 hedonism과 구분된다). 에피쿠로스가 말한 진정한 쾌락은 무엇이었나?

“에피쿠로스주의는 절제를 중요시한다. 좋은 음식을 먹거나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지만, 너무 많이 먹거나 마시면 즐겁지 않은 결과가 초래된다. 다시 말해 쾌락을 지속시키는 열쇠인 마음의 평화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부작용을 피하기 위해 쾌락을 절제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더 높은 차원의 즐거움을 누리면서 장기적 비용을 줄이는 방법이다. 에피쿠로스주의는 광적인 과잉 없이 조용한 기쁨, 안분지족하는 것을 추구한다. 더 좋은 옷을 입어야만, 더 가져야만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역사 속의 진짜 에피쿠로스는 아테네에 있는 외딴 정원에서 치즈, 빵, 물로 식사를 해결하고, 지식인들과 토론을 하면서 조용한 삶을 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 의미에선 당신이 말한 것처럼 금욕주의적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에피쿠로스주의는 금욕주의와는 다르다. 그들은 좋은 음식이나 섹스를 누리려 하는 것이 사악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과하면 좋지 않다고 했을 뿐이다.”

이처럼 에피쿠로스주의가 말하는 쾌락이 대중이 말하는 쾌락과 거리가 멀고, 어떤 의미에서 건전한데도 왜 에피쿠로스주의는 두 번이나 죽는 운명에 처해야 했을까(한 번은 중세 암흑기에 1000년 가까이 잊혔던 것, 다른 한 번은 포조가 루크레티우스의 책을 재발견한 100년 뒤 종교회의에서 금서로 지정된 일).

그린블랫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그 이유는 “아무리 쾌락이 가장 절제되고 사려 깊은 언어로 정의되었다고 하더라도 삶의 궁극적 목적이 쾌락이라는 주장은 충격을 던져주었기 때문”이다. 쾌락이 최고의 선이라고? 신과 조상에 대한 경배는 어쩌고? 나아가 국가에 대한 봉사는? 결국 에피쿠로스주의는 반대자들에게 “난교와 주지육림을 부추긴다”고 ‘억울하게’ 매도당한다.

―에피쿠로스주의는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한다. 죽음은 모든 것의 소멸을 의미하므로 더 이상 쾌락도 고통도 두려워할 것도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진정 위안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이 에피쿠로스주의의 가장 취약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죽음 이후의 소멸이 오히려 우리가 기뻐해야 할 뉴스라고 말하는 것 말이다. 사실 에피쿠로스주의가 태동할 때부터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건 어려웠다. 특히 사후 세계가 어떻게 될지 불안해하는 문화에선 그랬다. 나 스스로도 납득이 안 되는 부분이 있는데, 에피쿠로스주의는 사후엔 존재 자체가 없어지기 때문에 남겨둔 가족을 보고 싶으면 어떻게 할까 하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남은 가족의 감정은 어떻게 되나? 에피쿠로스주의는 죽은 사람에 대한 산 사람의 감정 문제는 다루지 않는다. 기독교인은 기도를 함으로써 산 사람이 죽은 사람과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은 판타지라고 생각하지만, 강력한 판타지이다.”

―교수님은 스스로 에피쿠로스주의자라고 생각하나?

“글쎄, 어떤 면에서는 그렇고, 어떤 면에서는 그렇지 않다. 내가 인생에서 할 수 있는 것 중 최선이 나와 내 주변 이들의 행복을 최대화하는 것이라는 것을 믿는 것과, 어딘가 내가 살 다른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는 점에서는 그렇다. 그러나 에피쿠로스주의자들이 ‘특정한 인물에 대해 집중되는 사랑의 감정을 줄이라’고 충고한 대목에는 동의할 수 없다. 나는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하며, 그런 집중된 감정을 줄일 생각이 없다.”

르네상스의 숨은 주인공들

―그리스·로마 문화의 자취는 이탈리아 곳곳에 있었다. 콜로세움이며, 코가 잘려나간 채 길가에 버려진 대리석 신상이며…. 그런데 어떻게 사람들은 1000년 동안이나(르네상스 이전까지) 옛 시대의 철학을 외면하고 살 수 있었을까? 시오노 나나미의 말처럼 보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건가?

“그들이 옛 문화를 못 보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단지 그것을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재활용했다(이를테면 로마시대 궁전을 떠받치던 대리석이 개인 주택을 짓는 데 마구잡이로 사용됐다). 그들에겐 오늘날의 미국처럼 과거에 대한 경의가 없었다. 과거에 대한 경의는 14세기 초에 시작됐으며, 포조가 한 예이다. 몇몇 사람이 현재보다 더 소중한 과거가 있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물론 너무 과거에 집착하는 것은 억제를 부른다. 하지만 과거를 지워버리는 것은 현재 우리가 가진 것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을 파괴하는 것이다.”

―현대의 기업과 국가는 르네상스와 피렌체를 창의성의 모범으로 받아들여 모방하려 한다. 현대의 조직은 르네상스와 피렌체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나?

“첫째, 경쟁은 좋다는 것이다. 그 시기의 이탈리아는 경쟁이 치열했다. 경제적으로는 금융업이든 직물 무역업이든 독점이 존재하지 않았다. 예술 분야도 마찬가지였다(예를 들어 시뇨리아 정부 대회의장을 장식하기 위해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가 경쟁했다). 둘째, 경영 체제와 문화 체제 사이에 매우 강한 관계가 있었다. 당시 사회 지배층은 예술에 관심이 매우 많았다. 그래서 예술, 건축, 문학, 경영, 정치 사이에 흥미로운 조화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시너지가 났다.”

―르네상스가 꽃필 수 있었던 것은 학문과 예술을 후원한 메디치 가문 등 집권층의 역할이 컸던 것 아닌가?

“그런 가문은 어떤 것은 가능하게 한 반면, 어떤 것에는 문을 닫아버렸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경쟁적 후원 문화가 르네상스에 기여한 것은 틀림없다. 메디치와 다른 가문들, 그리고 교황은 예술가와 지식인들의 후원자였고, 그 반대급부로 역동성(vitality)이란 이름의 수혜를 누렸다. 행복한 동거 기간이었던 셈이다. 나는 예전에 버클리대학교에서 오랫동안 가르쳤다. 미국 최고 공립대학의 하나인 이 대학은 과거 캘리포니아 사람들이 투자한 산물이다. 그들은 아주 오래전 이 대학에 막대한 세수를 투자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다음 몇십 년 동안 예술과 과학, 경제, 농업 등에서 괄목할 만한 혁신이라는 과실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20년 동안 경제가 안 좋아지면서 사람들이 이러한 투자의 가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왜 내가 낸 세금을 나처럼 셰익스피어를 가르치는 사람에게 주는가’라고. 15세기 이탈리아에서도 ‘내 세금을 왜 미켈란젤로에게 써야 하느냐’고 물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혁신을 가능케 하는 더 큰 시스템의 한 부분이다. 그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 투자라고 생각한다.”

―교수님 책엔 ‘신들이 존재하기를 멈추고 아직 예수가 오지 않았던 그때 인류 역사상 유일한 순간, 인간이 올곧게 홀로 섰던 시대가 있었다’는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말이 인용돼 있다. 21세기 현재는 인간이 올곧게 홀로 선 시대라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지금 상당히 이상한 시점에 와있다. 적어도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종교는 원래 가르치던 것들의 힘을 많이 잃었다. 천당, 지옥, 연옥 같은 복잡한 개념을 믿는 사람은 예전처럼 많지 않다. 그 자리를 이제는 과학이 자리 잡았다. 인간과 침팬지가 DNA의 98%를 공유하고, 인간이 영장류로부터 진화했다는 것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러나 이것이 무슨 의미를 갖느냐는 확실치 않다. 예전에 아담과 이브 이야기는 율법을 어기면 벌을 받는다는 것을 가르쳤는데, 지금의 시스템은 인생에 대해 무엇을 가르치는지 아직 확실치 않다. 100년 후에는 대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는 구체제가 무너지고 신체제의 의미를 아직 모르는 독특한 시점에 와 있다.”

※ 무인도에책3권가져간다면… 셰익스피어전부·몽테뉴수상록·노턴영문학

독일의 한 수도원에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라는 가장 반기독교적인 책의 사본 한권이 흘러든 것은 우연이었다. 그리고 9세기의 어느 날 그 사본을 한 수도사가 베끼기 시작한 것도 정말 우연이었다. (당시 수도원에선 고문헌의 필사가 수행의 하나로 행해졌다) 수많은 아이러니와 우연의 연속 끝에 고대 사상의 정수가 살아나 근대성의 기초를 구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수도원을 방문한 적이 있나?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의 수도원들을 방문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독일이었다. 독일 중세를 연구하는 친구가 독일에서 아주 오래된 수도원 중 하나에 데려갔는데, 과거 그곳의 삶이 어떠했는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의 한 문학평론가가 교수님의 책을 '누구보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 쓴,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바친 헌사'라고 표현했다. 교수님에게 책이란 무엇인가?

"책의 마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어떤 사람이 책을 통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한 부분을 뭔가에 집어넣고 후세에 전하고 싶어 한다. 호머든, 루크레티우스든, 셰익스피어든 말이다. 자식을 통해서도 할 수 있지만, 자식은 쉽게 부모와는 다른 길을 갈 수 있다. 나는 사랑하는 세 아이가 있지만,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살 것이고, 나라는 존재와는 아주 멀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은 작가가 형형하게 살아서 존재한다.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력한 것이다."

―무인도에 가져갈 책을 세 권 꼽는다면.

"셰익스피어의 모든 책, 몽테뉴의 수상록, 그리고 내가 편집자로 참여한 노턴 영문학 선집. 세 권보다 훨씬 많네(웃음)."

―'사물의 본성에 대하여'란 시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Death is nothing to us)."

질문을 끝낸 기자는 갖고 간 그의 책 한국어 번역본에 사인을 부탁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관심을 가져주어 감사합니다. 그리고 충만한 에피쿠로스적 삶을 살기를 기원합니다.

☞ Wisdom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오랜 경험에서 묻어나는 지혜입니다. ‘위즈덤(Wisdom)’ 코너는 위클리비즈가 그동안 만나 온 경영·경제 구루 외에 인문학·예술·종교 등 각 분야에서 한 획을 그은 현인(賢人)들을 만나 그들의 지혜를 독자 여러분에게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보스턴= 이지훈 위클리비즈 에디터 Copyrights ⓒ 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