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들 / 김수영 길들 / 김수영 떠나는 것들은 커브를 그린다 보내는 것들도 커브를 그린다 사라질 때까지 돌아다보며 간다 그 사이가 길이다 얼어붙은 하얀 해의 한가운데로 날아갈 이유는 없겠지만, 이 봉우리에서 저 봉우리까지 그 빛나는 사이로 가기 위해 벼랑에서 몸을 던지는 새처럼 내 희망의 한가운데는 텅 .. 시 마을 2008.11.24
안부 / 이정하 안부 / 이정하 보고싶은 당신 오늘 아침엔 안개가 끼었네요. 그곳은 어떤지요? 햇살이 드세질수록 안개는 자취를 감추고 말겠지만 내 가슴에 그물망처럼 쳐져 있는 당신은 당신을 향한 내 그리움은 좀체 걷혀지질 않네요. 여전히 사랑하는 당신 온종일 당신 생각 속에 있다 보니 어느덧 또 하루 해가 .. 시 마을 2008.10.14
단풍드는 날 / 도종환 단풍드는 날 / 도종환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 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 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 시 마을 2008.10.08
참회 / 김남조 김남조「참회」(낭송 김남조) 참회 김남조 사랑한 일만 빼곤 나머지 모든 일이 내 잘못이라고 진작에 고백했으니 이대로 판결해 다오 그 사랑 나를 떠났으니 사랑에게도 분명 잘못하였음이라고 준열히 판결해 다오 겨우내 돌 위에서 울음 울 것 세 번째 이와 같이 판결해 다오 눈물 먹고 잿빛 이끼 청.. 시 마을 2008.09.24
돌아보면 인생은 겨우 한나절 돌아보면 인생은 겨우 한나절 어릴 때부터 누군가를 막연하게 기다렸어요. 서산머리 지는 해 바라보면 까닭없이 가슴만 미어졌어요. 돌아보면 인생은 겨우 한나절... 아침에 복사꽃 눈부시던 사랑도 저녁에 놀빛으로 저물어 간다고 어릴 때부터 예감이 먼저 와서 가르쳐 주었어요. 이제야 마음을 다 .. 시 마을 2008.09.19
피아노 / 전봉건 피아노 전봉건 피아노에 앉은 여자의 두 손에서는 끊임없이 열 마리씩 스무 마리씩 신선한 물고기가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쏟아진다. 나는 바다로 가서 가장 신나게 시퍼런 파도의 칼날 하나를 집어 들었다. 출처 : 카페 > 열 린 바 다 시 마을 2008.09.18
눈 뜬 장님 / 최영철 눈뜬 장님 최영철 이 밤, 가만히 아내의 안경을 끼어봅니다 눈뜬 장님이 됩니다 그랬나 봅니다, 詩만 바라보는 꿈만 꾸는 눈으로 사는 그런 남편이 놓친 주위를 살피고 현실을 챙겼나봅니다 술픔은 커녕, 우울 한 줄 읽지 못하는 돋보기 너머 흔들리는 괜스레 흔들리는 잠든 아내 얼굴을 보면서 투박한.. 시 마을 2008.09.18
그리운 등불 하나/ 이 해인 그리운 등불 하나/ 이 해인 내가슴 깊은 곳에 그리운 등불 하나 켜 놓겠습니다. 사랑하는 그대 언제든지 내가 그립걸랑 그 등불 향해 오십시오. 오늘처럼 하늘빛 따라 슬픔이 몰려오는 날 그대 내게로 오십시오. 나 그대 위해 기쁨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삶에 지쳐 어깨가 무겁게 느껴지는 날 그대 내게.. 시 마을 2008.09.15
걸레질 하는 여자 / 김기택 걸레질하는 여자 / 김기택 걸레질을 하려면 무릎을 끓어야 한다. 허리와 머리를 깊이 숙여야 한다. 엉덩이를 들어야 한다. 무릎걸음으로 공손하게 걸어야 한다. 큰절 올리는 마음으로 아기 몸이 때를 벗기는 마음으로 닦지 않으면 방과 마루는 좀처럼 맑아지지 않는다. 어디든 떠돌아다니고 기웃거리.. 시 마을 2008.09.15
백치 애인 / 신달자 백치애인 / 신달자 나에게는 백치애인이 있다 그 바보됨됨이가 얼마나 나를 슬프게 하는지 모른다 내가 얼마나 저를 사랑하는지 모른다 별볼일 없이 정말이지 우연히 저를 만날까봐서 길거리의 한 모퉁이를 지켜 서서 있는지를 그는 모른다 제 단골다방에서 다방 문이 열릴때마다 불길같은 애수의 눈.. 시 마을 2008.09.15